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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4년 나경헌(羅景憲) 등 입후명문(立後明文)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증빙류-입안
· 내용분류
· 작성주체 발급자 : 나경록(羅景祿) / 수취자 : 나경헌(羅景憲)
· 작성시기
· 작성지역
· 형태사항 크기 : 75.4 X 62.3 / 서명 : 羅景祿<着名>, 羅燦佐<着名>, 羅忠佐<着名>, 羅得器<着名>, 羅得絢<着名>, 李啓全<着名>, 崔鳴翊<着名>
· 소장처 현소장처 : (재)한국학호남진흥원 / 원소장처 : 광주 민종기
정의

1764년에 나경록 등 5명이 나경헌에게 발급한 입후명문

해제
1764년에 나경록 등 5명이 나경헌에게 발급한 입후명문이다. 명문을 작성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재종형 경헌씨가 연로하고 병들었으나 자녀가 없어 홀로 외로이 지내는데, 사람 일이라는 것이 아침저녁의 일도 알기 어려우니 양자를 들여 대를 잇는 것이 급하다고 하면서 사촌형 나경유의 둘째 아들 원좌(元佐)를 양자로 들인다고 하였다. 또 원좌는 부모가 모두 사망하여 후견인이 없으니 문중에서 모여 입후의 뜻을 세우고 재종형 나경덕이 차문장(次門長)으로써 참여하여 명문을 작성한다고 하였다.
명문은 주로 매매 등의 거래 내역을 작성하여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발급한 조선시대의 계약서를 말하지만, 반드시 매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양자입적(養子入籍)이나 재산의 기증과 같은 사안으로 작성한 명문도 존재했다. 이 경우 문서에 적힌 내용이 틀림없음을 밝히기 위해 작성하였다. 위 명문의 말미에 따르면 '이 명문을 가지고 다시 관에 호소하여 사출(斜出) 받으라.'는 문구가 있는데, 조선시대에 양자를 들일 경우 관청에 그 사실을 알리고 관의 공증을 거친 입안(立案)이라는 문서를 발급받아야 했다. 아마도 이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한다.
원문텍스트
乾隆二十九年甲申正月日 門長再從兄景憲氏前明文
右明文爲再從兄景憲氏亦 年老抱病 嫡妾俱無子女窮獨 人事
朝暮難知 則立後嗣續 情禮所急 以其四寸兄景維氏之第二子
元佐 使之立後 而元佐之父母俱沒 旣無與受 則自門中義立 亦
有其例 玆以一門齊會義立 而再從弟景祿亦參居次門長之地
故一從門義 以元佐許養成文 以爲轉訴斜出事
同姓六寸弟 羅景祿[着名]
同姓九寸侄 羅燦佐[着名]
同姓十一寸侄 前郡守 羅忠佐[着名]
同姓十二寸孫 羅得器[着名]
同姓八寸孫 羅得絢[着名]
筆 幼學 李啓全[着名]
證 幼學 崔鳴翊[着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