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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7년 한상기(韓尙箕) 백패(白牌)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교령류-백패
· 내용분류 정치/행정-과거-백패
· 작성주체 발급자 : 영조(英祖) / 수취자 : 한상기(韓尙箕)
· 작성시기 乾隆十二年二月▣十一日 (1747)
·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종로구
· 형태사항 크기 : 95.5 X 45.5 / 인장 : 1개(적색, 정방형)
· 소장처 현소장처 :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 원소장처 :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 참고문헌
  •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 · 연결자료
  • 1747년 한상기(韓尙箕) 백패(白牌)
  • 1788년 한상기(韓尙箕) 추증교지(追贈敎旨)
  • 정의

    1747년(영조 23) 2월에 왕이 진사시(進士試) 합격한 한상기(韓尙箕)에게 내려 준 합격증서.

    해제
    1747년(영조 23) 2월에 진사시(進士試) 합격자였던 한상기(韓尙箕)에게 왕이 내려 준 합격증서이다. 한상기한양오(韓養吾)의 손자였다. 한상기의 등위는 3등 41번째, 즉 100명 가운데 중간 정도의 석차로 합격의 영예를 누린 것이다.
    조선시대 생원이나 진사의 위상은 사실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았다. 조선시대 과거제도가 존속한 1393년(태조 2)부터 1894년(고종 31)까지의 502년 동안 배출된 생원과 진사는 모두 46,000명이었다. 1년에 불과 100명이 채 되지 못하였던 셈이다. 그만큼 생원이나 진사의 칭호를 얻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어느 한 집안에서, 그것도 한양오한상기처럼 할아버지와 손자가 같이 진사시에 합격하였다는 점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규격 96*46㎝)
    원문텍스트
    敎旨
    幼學韓尙箕進士三等第四十一人
    入格者
    乾隆十二年二月▣十一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