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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6년 김세풍(金世豊) 준호구(准戶口)
1876년 김세풍(金世豊) 준호구(准戶口)
-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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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형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내용분류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자 : 고산현감(高山縣監) / 수취자 : 김세풍(金世豊) · 작성시기 光緖二年月日 (1876) · 작성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 형태사항 크기 : 40 X 52 / 서명 : 行縣監[着押] / 인장 : 1개(적색, 정방형), 周挾 字改印 · 소장처 현소장처 : 전주역사박물관 / 원소장처 : 고산 신평 경주김씨가 · 참고문헌 -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 문현주, 『조선시대 호구단자의 작성에 관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석사학위논문, 2008.
· 연결자료 - 1819년 김인집(金仁集) 준호구(准戶口)
- 1840년 김관억(金寬億) 준호구(准戶口)
- 1861년 김세풍(金世豊) 준호구(准戶口)
- 1876년 김세풍(金世豊) 준호구(准戶口)
- 1879년 김세풍(金世豊) 준호구(准戶口)
- 1882년 김세풍(金世豊) 준호구(准戶口)
-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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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고종 13)에 전라도(全羅道) 고산현(高山縣) 현내면(縣內面) 신평리(新坪里) 제2통 제3호에 사는 당시 64세인 유학 김세풍(金世豊)이 고산현에서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이때 그는 처 동래정씨(東萊鄭氏, 47세), 아들 부부 및 손자 등과 함께 살고 있었다. 당시 아들의 이름은 상필(商弼, 26세)인데 이때 이름을 상현(商炫)으로 개명하였으며, 며느리는 전주최씨(全州崔氏,30세)이고, 손자는 대근(大根,11세)이다. 도망간 노비가 1명이 있었다. 한편 관련된 문서에 의하면 김세풍의 초명(初名)은 김관억(金寬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관억이 28세 때 작성한 호구단자에 따르면 당시 그는 전주부 봉상면 사거리에 살고 있었으며, 다섯 살 아래의 처 만경두씨(萬頃杜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그는 전주부에서 고산현으로 이거하였으며, 아내가 사망하였거나 이혼한 뒤에 재혼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호주가 살았던 고산현 현내면 신평리는 현재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