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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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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사익에게 보냄(與吳士益 辛巳)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8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8.TXT.0020
오사익에게 보냄
형은 혹 근래에 음성의 오진영이 선사의 신도비(神道碑) 비문을 지었다는 말을 들었습니까? 유숙(柳塾)의 객이었던 자가 그 글을 보고서 제가 알고 있던 사람에게 말하기를, "글 가운데 가평(嘉平)의 김평묵(金平黙)을 배척하고 선사(先師 임헌회)의 무함을 변론한 것으로 간옹(艮翁)의 대사(大事)로 삼았다."라고 하였는데, 참으로 그렇습니까? 그러나 선사의 비문을 지으면서 스승의 무함을 변론하는 것으로 대사를 삼지 않는다면 이는 대우(大禹)의 비문을 지으면서 치수(治水)를 대사로 삼지 않는 것과 같고, 또 맹자의 비문을 지으면서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물리친 것을 대사로 삼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니, 옳겠습니까? 오진영의 글에서 서술한 내용은 또한 그 자체로 맞는 말입니다. 【연전에 제가 형에게 보낸 편지에 "선사가 스승의 무함을 변론한 것은 평생의 대사였다."고 하였는데, 형은 그렇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지금 오진영의 글로 살펴보면 또한 형이 생각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미 선사가 스승의 무함을 변론한 것이 대사임을 알았으면서 마침내 스스로 자기의 선사를 무함하여 인가를 내어 원고를 출간하는 것과 관련하여 심지어 "인가를 금한 유서(遺書)는 위조이다."라고 하기까지 하여 대죄(大罪)에 빠진 것은 깨닫지 못하였고, 다시 [완산 검찰]에 고소하는 재앙을 일으켜 선사의 무함을 변론하는 것을 대사로 여기는 동문을 일망타진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마음이고 무슨 견해란 말입니까. 너무도 괴이한 일입니다. 주자는 왕안석(王安石)의 일을 논하여 말하기를 "세상에는 자연히 바꾸지 못할 공론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주 86) 전재(全齋 임헌회)와 구산(臼山 전우)은 똑같은 현인이고, 가평의 제문과 음성의 편지는 똑같은 무함이고, 벗을 해치고 선사를 무함한 것은 동일한 죄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하늘이 그의 붓으로 그의 무함한 죄를 밝혀서 그로 하여금 스스로 공론을 만들게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그렇지만 지금은 우선 그 글에 나아가 말할 따름입니다. 옛날 임동만(任動萬 임진재任震宰))이 신모(申某)의 행장(行狀)을 이용해서 전옹(全翁 임헌회)의 시호(諡號)를 얻고자 도모하였는데, 선사가 그것을 금하고 말하기를 "차라리 시호가 없는 것이 나으니, 신모의 행장은 쓸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주 87) 나는 오늘날의 일에 대해 또한 감히 말하기를 "차라리 신도비가 없는 것이 나으니, 오진영의 글은 쓸 수가 없다."라고 하겠습니다. 아, 사인(士仁)의 의리에 대한 몽매함은 동만(動萬)보다 지나치고, 나의 사람됨 또한 선사가 아니니, 금하고자 해도 그 방도가 없으니 어찌하겠습니까.
주석 86)주자는……하였습니다
주자가 1199년 8월 하순에 진사석(陳師錫)이 남긴 서첩과 진관(陳瓘)이 올린 표문을 소재로 삼아 왕안석의 학술 경향을 비판한 것인데,《주자대전(朱子大全)》권70〈독양진변의유묵(讀兩陳諫議遺墨)〉에 보인다. 이것과 관련한 김택술의 의론은 《후창집(後滄集)》 권7 〈여조자정(與趙子貞) 병자(丙子)〉에 보인다.
주석 87)옛날……하였습니다
《간재집(艮齋集)前編)》 권2 〈여임경유(與任景孺)〉에 보인다.
與吳士益 辛巳
兄或近聞陰震之撰先師神道碑乎? 有客於柳塾者見其文,而言於弟之所知曰"篇中以斥嘉金而辨師誣,爲艮翁大事"云,未知信然? 然作先師碑而不以辨師誣爲大事,則是猶作大禹碑而不以治水爲大事,作孟子碑而不以闢楊墨爲大事,其可乎? 震文所叙,亦自得之。【年前弟與兄書,謂"先師辨誣爲平生大事",則兄不以爲然。今以震文觀之,亦可見兄之不思也。】但旣知先師辨師誣之爲大事,而乃自誣己師,以出認刊稿,至謂"禁認遺書爲僞造",而不覺陷於大罪,更起訴禍,網打辨師誣爲大事之同門人者。此何心何見? 絶可怪也。朱子論王安石事,而曰: "天下有自然不易之公論。" 蓋全齋、臼山同一賢也,嘉誄、陰書同一誣也,害友、陷師同一罪也,則無乃天以渠筆明渠誣罪,使之自作公論也歟? 雖然今且就其文言之爾。昔任動萬之欲用申某狀而圖得全翁謚也。先師禁之曰: "寧可無謚號,申狀不可用。" 弟於今日事,亦敢曰: "寧可無神碑,震文不可用。" 噫! 士仁之昧義過於動萬,弟之爲人又非先師,則禁之而無其道,奈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