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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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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사익에게 답함(答吳士益 戊寅)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8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8.TXT.0015
오사익에게 답함
지난번에 사원(祠院)에서 제사 때에 생것을 올리는 것과 익힌 것을 올리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합당하냐고 물었습니다. 일찍이 〈교특생(郊特牲)〉을 상고해 보니, "교제(郊祭)에는 피[血]를 올리고 대향(大饗)에는 생고기[腥]를 올리고 삼헌(三獻)의 제사에는 데친 고기[爓]를 올리고 일헌(一獻)의 제사에는 익은 고기[熟]를 올린다. 지극히 경건한 제사는 진미를 올리지 않고 기취(氣臭)를 귀하게 여긴다."주 65)라고 하였습니다. 그 주(註)에, 장락 진씨(長樂陳氏)는 "예에서는 완전히 천연적인 것이 가장 후중하고, 천연에 가까운 것이 다음으로 후중하며, 인위에 가까운 것이 약간 박하고. 완전히 인위적인 것은 가장 박하다. 피는 완전히 천연적인 것이고, 생고기는 천연에 가까운 것이며, 데친 고기는 인위에 가까운 것이고, 익힌 고기는 완전히 인위적인 것이다. 교제와 대향은 항상 삼헌의 의례보다 중시되는데, 어찌 '지극히 경건한 제사에는 진미를 올리지 않고 냄새를 귀하게 여긴다.'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고, 엄릉 방씨(嚴陵方氏)는 "일헌의 제사에 익힌 고기를 올리는 것은 진미를 올리는 것이다. 진미 자체가 공경스럽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피·생고기·데친고기의 지극함만은 못할 따름이다. 경문에 '피, 생고기, 데친 고기를 올리는 제사는 그 기운을 사용한다.'고 하였다. 냄새는 기운에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기취(氣臭)'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악기(樂記)〉에는 "희생을 익히고 삶아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두루 통하는 예가 아니다"주 66)고 하였습니다. 그 주에 "희생을 익히고 삶아서 바치는 것은 고대에 피와 생고기로 제사하는 것이 예의 본래 취지를 얻은 것만 못하기 때문에 '두루 통하는 예가 아니다.'라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에 대부분 피와 생고기를 사용하는 것은 대체로 그것의 생기(生氣)를 빌리고자 해서이다."고 하였고, 또 "귀신에게 생물을 사용하여 제사하는 것은 모두 이 생기를 빌려서 영험함을 삼은 것이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여러 설들을 참고해서 헤아려 보면 그 유래를 알 수 있습니다. 대개 〈악기〉에 대한 주자의 설은 제사의 대·중·소를 나누지 않고 말한 것이니, 이는 자손이 부조(父祖)를 제사 지낼 때에도 생고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특생〉에서는 교제, 대향, 삼헌, 일헌을 나누고 그것에 대해 피, 생고기, 데친 고기, 익힌 고기로 올리는 것을 정하여 각각 그 용도가 있게 한 다음, "지극히 경건한 제사에는 진미를 올리지 않고 기취를 귀중하게 여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대제(大祭)와 중제(中祭)에 있어서도 더욱 피와 생고기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릇 사원의 제사는 성묘(聖廟)의 다음이니, 제사 중에서도 지극히 경건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악기〉에 대한 주자의 설에 의거하여 정리와 경건을 아울러 표하는 조상의 제사에도 오히려 생고기를 쓸 수 있습니다. 하물며 전적으로 경건을 위주로 하는 선현의 제사에는 〈교특생〉과 주설(註說)의 뜻을 의거하여 생고기를 쓸 수 없겠습니까? 혈기가 대대로 전해지는 조상의 제사에서도 오히려 다른 혈육의 기운을 빌려 영험을 삼는다고 말할 수 있는데, 하물며 외신(外神)의 제사에 혈육의 기운을 쓰지 않고서 영험을 불러올 수 있겠습니까? 생각건대, 예로부터 사원의 제사에 생고기를 올리는 것은 이러한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 이미 사우를 건립하였으니, 제물을 올릴 때에는 마땅히 생고기를 올려야 하고 익힌 고기를 올려서는 안 됩니다.
음성 사람의 일은, 형의 편지에 "'선사를 무함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예전 견해를 도로 지키겠다."고 하였으니, 이미 죄명을 완전히 정한 것입니다. 저는 이로부터 그를 대처하는 것이 일체 이를 준거로 삼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가만히 살펴보면, 오히려 겉으로는 끊어졌으나 안으로는 이어진 뜻이 있으며 못을 부러뜨리고 쇠를 자르는 것처럼 철저하게 단절하는 기상은 부족합니다. 언행일치의 뜻으로 볼 때에 어떠합니까? 후인들의 비평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가 선사의 원고를 고친 것에 대해 형은 처음에는 깊이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올 여름에 제가 용동본(龍洞本)과 진주본(晉州本) 두 본을 대조해 보인 뒤에 깊이 믿고서 그에게 질문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동짓날에는 또 그가 선사의 원고에 많이 손을 댄 것에 대해 새벽에 일어나서 서로 말을 나눌 때 깊이 개탄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변론하여 배척하는 하나의 글도 없습니다. 가령 이 일이 동문 중의 다른 사람에게 있었다면 형 또한 계속 침묵하였겠습니까?
제 자식 형태(炯泰)가 전주(全州)에서 돌아와 고하기를, "전일순(田鎰純)에게 들었는데, '문정공(文貞公 김육(金堉)) 유허비(遺墟碑)의 전면을 다시 새겨야 한다고 대인(大人)께서 주장했다는 설이 고동시(高東是)의 입에서 나왔고 권순명(權純命)의 말이 있었다.' 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듣고서 "이제 또 하나의 죄안(罪案)이 생겼지만 놔두고 다시 말하지 않겠다. 다만 헛소문이 크게 일어나 어찌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가."라고 하였습니다. 대체로 저는 음성의 무함을 실컷 받았고 김세기(金世基)의 글에 이르러서는 극에 달하였습니다. 오늘의 일도 알 만하니, 단지 조용히 받아들일 뿐입니다. 다만 형이 제가 당한 곤욕을 알았으면 하기 때문에 유허비와 일과 관련된 저의 글과 김윤삼(金允三)이 고동시(高東是)에게 보낸 편지를 보내 드리니, 한 번 보시길 바랍니다.

김윤삼 속식(金允三 鋉植)이 고동시(高東是)에게 보낸 편지 무인년(1938) 10월
운운. 다만 한 마디 우러러 묻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선조 문정공의 유허비에 대해 전면을 갈고 다시 새기자는 말이 저의 친족 종현(鍾賢 김택술)에게서 나왔다고 무함하는 설이 사방으로 전파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이에 그 소문의 출처를 물었더니, 내가 그대에게 전했고 그대가 사우(士友)에게 전했다고 하였습니다. 저가 그대와 만난 것이 작년 4월이었고 이후 서로 얼굴도 보지 않았으며, 더구나 일도 사실이 아니니 더욱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당초 전면을 갈아서 다시 새기자는 의론이 한편에서 나왔으나, 저의 친족 종현이 불가함을 힘껏 주장하여 심지어 조상을 폄하하고 스승을 높인다는 배척을 받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이 생긴 뒤에 또 복구하는 한 가지 일로 종중(宗中)에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사실이 위와 같음은 우리 친족 전부가 모두 알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그대에게 말하지 않은 것을 그대가 나에게 들었다고 하면 사람을 무함한 죄가 어느 곳에 떨어지겠습니까? 시비가 달린 일이라 입을 다물 수 없어서 이에 편지를 보내니 즉시 회답해 주시길 바랍니다.
주석 65)교제(郊祭)에는……여긴다
《예기(禮記)》 〈교특생(郊特牲)〉에, "대로에는 번과 영이 1취이고, 선로에는 3취이며, 차로에는 5취이다. 교제에는 희생의 피(血]를 바치고, 대향에는 생고기(腥]를 바치며, 삼헌(三獻)의 제사에는 데친 고기(爓]를 바치고, 일헌(一獻)의 제상는 익힌 고기(孰]를 바친다. 지극히 공경한 제사에는 진미를 올리지 않고 냄새를 귀하게 여긴다.[大路繁纓一就, 先路三就, 次路五就. 郊血, 大饗腥, 三獻爓, 一獻孰, 至敬不饗味而貴氣臭也]"라고 하였다.
주석 66)희생을……아니다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왕자가 공덕을 이루면 음악을 만들고, 다스림이 안정되면 예를 제정한다.……방패나 도끼를 들고 추는 춤은 제대로 갖춰진 이 아니며, 희생을 익히고 삻아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두루 통하는 예가 아니다.[王者功成作樂, 治定制禮 ……干戚之舞, 非備樂也; 孰亨而祀, 非達禮也]"라고 하였다.
答吳士益 戊寅
向詢祠院之享生薦、熟薦之孰爲得當。竊嘗考之《郊特牲》曰: "郊血,大饗腥,三獻爓,一獻熟,至敬不饗味而貴氣臭也。" 注,長樂陳氏曰: "禮以全於天者爲尢厚,近於天者爲次厚,近於人者爲差薄,全於人者爲尢薄。血者全於天者也,腥者近於天者也,爓者近於人者也,熟者全於人者也。郊與大饗,常重於三獻之禮,豈非'至敬不饗味而貴氣臭'哉?" 嚴陵方氏曰: "一獻熟則饗味矣。味非不敬也,特不若血腥爓之至爾。經曰: '血腥爓祭, 用氣也。' 以臭生於氣,故此曰'氣臭'。"《樂記》曰: "熟烹而祀,非達禮也。" 注,"熟烹而薦,不如古者血腥之祭爲得禮意,故云'非達禮也'。" 朱子曰: "祭神多用血肉者,蓋要得籍他之生氣。" 又曰: "大抵鬼神用生物祭者,皆是假此生氣爲靈。" 以此諸說,參互商度,則可以知所從矣。蓋《樂記》朱子說,則不分祭之大、中、小而言,是子孫之祭父祖者,亦可用生腥矣。《郊特牲》則分郊、大饗、三獻、一獻,而定血、腥、爓、熟,各有其用,而"至敬不饗味而貴氣臭"。是凡於大、中之祭,尢不可不用血、腥也。夫祠院之享,是聖廟之次,而非祭之當至敬者乎? 據《樂記》朱子說,而祖先之享兼用情敬者,猶可用生腥。况於先賢之祭專於主敬者,可不據《郊特牲》及註說之意而用生腥乎? 於祖先血氣世傳之祭,猶可謂籍他血肉之氣爲靈,况於外神之祭,可不尙血肉之氣而致其靈乎? 竊意從昔院享之用生薦,出於此義也。今旣立祠,則其薦當以生而不以熟矣
陰人事,兄書謂"還守'不可不謂誣師'之舊見",則旣完定罪名矣。吾知其從此所以處彼者,當一切準此。但竊覸猶有藕斷絲連之意,欠斬釘截鉄之象,其於言行一致之義何如也? 莫無有後人之評議否?
彼之改稿,兄初不深信。及至今夏,弟爲之將龍、晉二本對照,然後深信之,有質彼之書去。南至日又以彼於師稿多所犯手,深致慨歎於晨起相語之時矣。然而尙無一文之辨斥,未知假使此事在同門中他人,兄亦一向含嘿否?
家兒炯泰自全州歸告曰: "聞於田鎰純,則文貞公遺墟碑前面改刻,大人主張之說,出於高東是之口而有權純命之言云云。" 吾聞之曰: "今又生一罪案,置不復言。然訛言孔將,胡至於此!" 蓋吾飽受陰誣,至有世基文而極焉。今日之事,亦可知矣,只得靜而受之。然但欲兄知我所遭,故鄙文之關於碑事者及金允三與高東是書呈去,幸一覽也。

金允三鋉植與高東是書附 戊寅十一月
云云。第有一言仰質者。卽聞鄙先祖文貞公遺墟碑,磨面改刻,出於鄙族鍾賢之誣說,傳播四方。問其言根,則鄙傳於貴,貴傳於士友云。鄙與貴相見,己在去年四月,此後未曾相面,况事非其實者乎? 當初磨面改刻之議,出自一邊,而鄙族鍾賢力主不可,至被貶祖尊師之斥。事出之後,又以復舊一事致書宗中。事實如右,鄙全族之所共知者。鄙所不言於貴者,貴聞於鄙云,則誣人之罪落在何處? 事係是非,不容含默,故玆專書,仰卽賜回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