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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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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사익에게 답함(答吳士益 戊寅)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8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8.TXT.0014
오사익에게 답함
이달 초에 고창(高敞), 무장(茂長) 등지로 조문을 갔다가 10여 일 만에 돌아왔더니, 보내주신 편지가 먼지가 덮인 책상에 놓여 있었습니다. 손을 바삐 놀려 열어서 읽어 보니, 바로 3년 동안 끝나지 않은 안건이 하루아침에 정해지고, 여러 차례의 편지로도 해결되지 않았던 의혹이 한 마디로 결정되었습니다. 일이 중대하여 그대로 그만둘 수 없던 것이 오늘 이후로는 같은 의견으로 귀결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얼마나 기쁩니까. 아, 이 기쁨은 공적인 것이기도 하고 사적이기도 한 만큼 이러한 때의 이러한 기쁨은 선사의 영령께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또 형을 알기 전이었기 때문에 마음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어서 감히 억지로 따르지 못한 것이지 애초에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의심이 풀려 형을 따르게 되었으니 형을 아는 것이 틀림없이 더욱 견고해져서 10년 전에 논정했을 때와 같을 뿐만이 아닙니다. 가부를 살피지 않고도 한결같이 견해가 같은 것을 보게 된 만큼 그 기쁨이 오히려 다시 더해졌습니다. 이것은 대개 형의 본 바탕이 매우 높아서 범공(范公)의 이른바 "그 중하게 여긴 것이 여기에 있다."라는 것주 62)과 퇴계(退溪)의 이른바 "뜻이 도를 밝히는 데 있어 사사로운 뜻이 없다."주 63)라고 한 것과 같은 태도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제가 그 사이에서 힘을 쓴 것은 아니고 바로 벗 사이에 강마(講磨)한 힘은 속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보잘 것 없는 편지를 보냈는데 훌륭한 편지로 답장해주신주 64) 성대한 은혜를 감히 감당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는데 너그럽고 부드럽게 잡아주시면서 연연해 한 바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병에 따라 약을 주신 것이라서 마음속으로 감격하고 있으니 어찌 입으로만 감사드릴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제가 선사의 무함을 변론하는데 힘을 쓴 것에 대해 "그의 공격에 보복하고 자신을 위해 도모하는 마음에서 나왔다."고 하고, 마침내 "한 번 주먹으로 치고 한 번 발로 차다가 죽게 되더라도 저버리지 않겠다는 마음은 절대 사군자의 도는 아니다."라고 경계하였습니다. 아! 저의 병통을 깊이 아시는 안목으로 오히려 저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우옹(尤翁)이 박화숙(朴和叔)에 대해서, 선사가 신앙여(申仰汝)에 대해서 매번 '스스로 편의(便宜)를 차지하고 사설(邪說)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책망했습니다. 내가 만약 자신을 위해 도모하는 마음에서 나왔다면 어찌 일찍 박화숙과 신앙여가 스스로 편의를 차지한 태도를 배우지 않고 애써 이렇게 하면서 생사를 돌아보지 않았겠습니까. 다만 스승이 있다는 것만 알고 내 몸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선사와 직접 관계되지 않고 내 몸과 관계된 것은 일체 일삼지 않았습니다. 비록 차마 똑바로 볼 수 없었던 김세기(金世基)의 흉악한 무함에 대해서도 저는 함재장(涵齋丈)이 사람을 시켜 통문을 돌려 대변(對辨)하도록 한 가르침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형이 근래에 알고 있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제가 주먹질하고 발길질하며 저버리지 않으려 한다고 하십니까?
주석 62)범공(范公)의……것
범공(范公)은 범조우(范祖禹)를 가리킨다. 주희가 범조우에 대해 논한 내용 가운데 "일이 일어난 당시에 판별하지 못하고 몇 해 뒤에야 밝혔으니, 이는 강단이 부족하여 정이(程頤)와 소동파(蘇東坡) 양쪽 모두를 따르려는 사심을 면치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중하게 여긴 것이 여기에 있었기 때문에 마침내 의리의 공변됨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不能辨之於當時, 而發之於數年之後, 此則剛强不足, 不免乎兩徇之私者. 而其所重在此, 故卒不能其義理之公也]"라고 한 내용이 있는데 이것을 인용한 것이다. 《朱子大全(주자대전)》 권35 〈답여백공(答呂伯恭)〉
주석 63)뜻이……없다
이황의 〈답기명언(答奇明彦)〉에 "뜻이 도를 밝히는 데 있어 피차에 사사로운 의도가 없다면 반드시 하나로 일치할 날이 있는 것이니(志在明道, 而兩無私意者, 必有同歸之日.)"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 부분을 원용한 것으로 보인다. 《퇴계집(退溪集)》 〈답기명언(答奇明彦)〉
주석 64)보잘 것……답장해주신
원문은 '得瓜報琚'이다. 《시경(詩經)》 〈목과(木瓜)〉에 "나에게 목과를 주거늘 경거로써 갚는다.[投我以木瓜 報之以瓊琚]"는 내용이 있는데, 여기에서 '경거(瓊琚)'는 상대방의 시문을 뜻하고 '목과(木瓜)'는 자신의 시문을 뜻한다.
答吳士益 戊寅
月初出吊於高、茂等地,凡旬有餘日而返,則惠疎留在塵案。忙手開讀,乃三年未了之案,一朝而定; 累書未解之惑,一言而決。事係重大而不容但己者,今焉而後同歸一轍,何幸如之! 何喜如之! 噫,此喜者爲公乎? 爲私乎? 此時此喜,先師之靈亦應喜之。抑以知兄之前,有所疑於心,而不敢强焉而從之,初非有他意也,則今之疑鮮而見從也,知之必益堅固,不但如十年前論定時而己。視不相可否而一例同見者,其喜反復勝焉。此蓋兄本質懇高,范公所謂"所重在此"、退溪所謂"志在明道而無私意"之致。然非區區有力於其間,乃謂朋友講磨之力不可誣也。 旣是愧不敢當承得瓜報琚之盛惠,見規以寬裕和平,無所係緣,此眞對病之藥石,中心感之,何用口謝? 但以弟之力於辨誣,爲報彼之攻擊而出於爲身謀之心,卒戒以一拳一踢抵死不負之心,殊非士君子之道。噫! 以兄深知弟病之眼,尙淺知弟心者,何也? 尢翁之於朴和叔,先師之於申仰汝,每以"自占便宜不攻邪說"見責。我若出於爲身謀之心,何不早學朴、申之自占便宜,苦苦爲此而不顧死生耶? 惟其但知有師而不知有身,故凡不直係先師而關於吾身者,一切無事。雖以世基凶誣不忍正視者,不從涵丈令人發通對辨之喩。此兄近日所知,何以謂拳踢不負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