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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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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사익에게 답함(答吳士益 丁丑)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8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8.TXT.0012
오사익에게 답함
답장을 받아보고 늦더위에 부친의 병환이 오래도록 낫질 않는 것을 근심하여 심지어 몸에 죄악이 쌓여 신명에게 죄를 얻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우러러 염려를 하면서 이어 마음속에 감탄하는 바가 있었습니다. 옛날 자하(子夏)는 이치에 어긋나는 참변주 53)을 당하였으나 오히려 스스로 죄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형은 나이 많은 노인의 일반적인 병도 우려하여 이런 말을 하기까지 하였으니, 효도하고 사랑하는 간절함을 우러러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을 반성하고 학문을 돈독히 하는 뜻도 옛사람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화락하고 평이한 군자는 신이 돕는 바이다."주 54)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로써 형은 효성이 몸에 쌓여 있으니 신명의 도움을 받아서 부친의 병환이 빨리 회복되는 날이 있을 것을 알겠습니다. 미리 크게 축하를 드립니다. 인하여 생각건대, 효도는 백행의 근본이니 이를 미루어 나가면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없는데, 하물며 스승과 부친은 그 은혜가 똑같으니 더욱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부친에 대해서는 생전에 불러들이지 않았는데 이른 것이 있자 오히려 자기 죄라고 자책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사가 돌아가신 뒤에 큰 무함을 받아서 도의를 상실하였는데도 내가 그것을 변론하지 않고 도리어 도왔으니, 이는 손상이 없어서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어찌 깊이 생각하고 분명하게 헤아려 되돌아서 보아야 할 곳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어찌 더욱 치밀하게 자신을 반성하고 학문을 돈독히 해야 할 곳이 아니겠습니까? 사랑이 깊어서 못할 말이 없었습니다만, 오히려 그 망령됨을 용서하고 한 번 생각해 보지 않겠습니까?
"이미 10년 전에 의론한 것도 아니고 또 이전의 편지에서 말한 것이 아니며 별도로 하나의 의론을 만든 것이다."고 의론한 것은, 내가 웃지 않더라도 형이 또한 스스로 그 구차함을 웃을 것입니다. 이런 구차한 여러 설에 대해 하나하나 변론하여 바로잡고자 한다면, 비록 형의 큰 아량으로도 듣는 것을 기뻐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에 모조리 치워두고 다만 형이 받은 병통 중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곳을 취하여 단칼로 둘로 쪼개듯 하여 형이 맹렬히 반성하여 홀연히 깨닫기를 바랍니다. 여기에서도 효과가 없다면 아무리 많이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내가 우선 그만두겠습니다. 보내온 편지 중에 "생각할 만한 하나의 단서"와 "의리가 무궁하다"는 것은 결국 무슨 생각이며 결국 무슨 의리입니까? 어찌 이른바 '대신 인가받았다.[代認]'라는 한 가지 일이 아니겠습니까? 대저 '대신 인가받았다.'라고 한 것은 원래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대신했다는 것은 끝내 누구를 대신했다는 것입니까? 선사를 대신했다는 것입니까? 자손을 대신했다는 것입니까? 문인을 대신했다는 것입니까? 선사의 '인가받지 말라.'는 유서주 55)에 이미 '다른 날[異時]'라고 하였으니, 이는 죽은 뒤를 말한 것입니다. 선사가 스스로 인가받은 것도 아닌데 오히려 "스스로 욕되게 한다.[自辱]"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글이란 마음이 보존되어 있는 것이고, 마음은 몸을 주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글이 제재를 받고 조사를 당하는 것은 곧 몸이 욕됨을 당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 글과 이 때로 한다면, 자손이 인가를 받았더라도 이는 선사의 스스로 욕되게 한다는 것이고, 문인이 인가를 받았더라도 이는 선사의 스스로 욕되게 한다는 것이며, 출판업자가 인가를 받았더라도 이는 선사의 스스로 욕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대신 인가받은 것은 자손과 문인이 인가받은 것과 무슨 구별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선사의 주된 뜻입니다. 말하자면 청원한 자가 어떠한 사람이던 막론하고, 이 글과 이 때로 청원한다면 선사의 스스로 욕되게 한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대신 인가받는 것도 어찌 선사가 손상되는 것이 없다고 보아 하고자 한 것이 될 수 있겠습니까? 형이 또한 생각해보면 이것은 그렇지 않겠습니까? 대저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라."주 56)고 하는 것은 군자가 인을 행하는 마음입니다. 병암(炳庵 김준영(金駿榮))은 선사의 마음을 전한 수제자입니다. 선사의 인은 결코 이와 같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선사가 《병암집》을 대신 인가받도록 허락했다는 것은 과연 조금이라도 이치에 맞는 것이겠습니까? 그런데 다시 제자로 인하여 선사를 언급하여 심지어 《병암집》을 대신 인가받도록 허락한 것은 대고(大稿 간재집)에 대한 '불언지교(不言之敎)'이다고 말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형이 속임을 당한 것도 이미 매우 가소롭지만, 저 무함한 자의 죄는 이루 다 죄줄 수가 있겠습니까? 통탄스럽고 통탄스럽습니다.
"10년이 지난 뒤에 심술을 폭로하고 죄목을 낱낱이 따지는 것은 보루를 맞대고 서로 싸우는 것 같음이 있다."고 한 경계는, 뜻은 고맙지만 저를 안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무함과 욕됨이 극에 달하여 차마 똑바로 볼 수 없었던 김세기(金世基)의 흉악한 글에 대해서도 함재장(涵齋丈)이 자제와 문하생으로 하여금 통문을 돌려 대변(對辨)하게 한 일을 힘껏 저지하였습니다. 제가 비록 보잘것없지만 어찌 저들 무리와 보루를 맞대고 서로 싸울 자이겠습니까? 다만 형이 이미 오진영이 김세기에게 답한 편지를 보고서도 오히려 사람을 밀치고 시세를 추종하는 그의 심술을 미워하지 않은 것은, 자신은 죄에서 빠져나오고 선사에게 죄를 떠넘기는 그의 심술이 처벌해야 하는 것인 줄을 결단코 모른 것이었기 때문에 인하여 그가 그동안 행했던 마음의 죄가 모두 이 편지와 같았음을 말했던 것입니다. 대체로 모두 선사와 관계된 것이고 원고 일과 관련이 된 것으로 스스로 과오를 저지른 것과 원고 일 전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면, 어찌 10 여년이 지난 뒤에 폭로하여 낱낱이 따지는 것을 했겠습니까? 이미 선사의 무함을 변론하는 것으로 주를 삼았으니, 어쩔 수 없이 모두 원고의 일과 관련된 죄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파리장서의 일은 그 앞에 있었으니 반드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다만 근래에 의발을 전수받았다는 설을 변론하여 격파함으로 인하여 비로소 이것에 대해 언급했던 것이니, 이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입니다. 대저 형은 제가 그를 공격하는 것이 너무 지나치다고 여겼기 때문에 말하는 것과 일삼은 것을 모두 너무 심하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인교(認敎)'가 선사를 무함한 것임을 알았다면 변론을 하지 않을 수 없고, 변론을 하면 분명하게 변론하지 않을 수 없으며, 분명하지 않으면 끝까지 그만둘 수 없는 것이 성인의 가르침이고 학자가 힘써야 할 것으로서 애당초 지나친 것이 아님을 자못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 형은 선사의 마음에 대해서도 오히려 알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어찌 감히 저를 아는 것을 바라겠습니까? 그럼에도 부지런하여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옛 친구의 정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형은 "천하의 의리가 무궁하다."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사람이 이치를 봄이 극처에 이르지 않았을 때로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미 극처에 이르렀다면 다시 무궁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 때에 다시 극처를 찾는다면 어쩔 수 없이 반대로 퇴보하여 좌우로 넘어지고 쓰러져서 끝내 구덩이로 떨어짐을 면하지 못합니다. "청원하여 간행·반포하는 것은 결단코 스스로 욕되게 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은 선사의 견해가 이미 의리의 극처에 이르러서 마치 해가 중천에 떠있는 것처럼 천하에 밝게 게시한 것입니다. 그런데 훗날의 사람은 마침내 다시 의리가 무궁하다고 말하고 근거도 없는 대인설(代認說)을 다시 찾아내서 선사가 이치를 본 극처로 만들고, "결단코 스스로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라고 한 말씀을 도리어 도가 이루지지 않았을 때의 소견으로 만들어 아무렇지도 않게 천 길의 구덩이로 빠뜨렸습니다. 어찌 괴이하지 않겠으며, 어찌 통탄스럽지 않겠습니까. 연전에 서명옥(徐明玉)이 말하기를 "선사가 분명히 인가를 받을 뜻이 있었는데 우리 선생이 원고를 인가받는 것을 금지한 것 같다고 말한다면 이는 보잘것없는 작은 절개이니 어찌 군자의 대도가 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유경조(柳景肇)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로 꺾어버리고 그 입을 다물도록 하였습니다. 지금은 지난번에 꺾어버린 자가 반대로 꺾임을 받은 자의 무덤이 되어 버렸습니다. 형은 이 일을 듣고 또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석 53)자하(子夏)는……말하였습니다
이치에 어긋나는 참변은, 아들이 아비보다 먼저 죽는 슬픔을 말한다. 자하가 그 아들을 잃고 시력을 잃자, 증자(曾子)가 조문할 때에 말하기를 "내 들으니, 붕우가 시력을 잃으면 그를 위해 곡한다."라고 하고는 증자가 곡을 하자, 자하도 곡하면서 말하기를 "하늘이여! 나는 죄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禮記(예기)》〈단궁(檀弓〉
주석 54)화락하고……바이다
《시경(詩經)》 〈한록(旱麓)〉에 "화락하고 평이한 군자는 신이 돕는 바이다.[豈弟君子, 神所勞矣]"라고 하였다.
주석 55)선사의……유서
간재는 자손 및 제군에 고하는 글에서 "다른 날 시변이 조금 안정되기 전에 만약 저쪽에 청원하여 발간 배포할 계획을 하는 것은 결단코 스스로 욕되게 하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비록 혹 강권하더라도 너희는 아비와 할애비의 마지막 명을 맹세코 지켜서 조심하여 애써 따르지 말라.[異時時變稍定之前, 若請願於彼, 以爲刊布之計, 決是自辱. 諸人雖或強之, 汝等誓守父祖末命, 愼勿勉從也]"라고 하였다. 《간재집(艮齋集)後編》 권5 〈고제자손겸시제군(告諸子孫兼示諸君)〉
주석 56)자기가……말라
중궁(仲弓)이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도 베풀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라고 하였다. 《논어(論語)》 〈안연(顔淵)〉
答吳士益 丁丑
卽拜惠覆,恭審老炎以大碩人患節彌留爲憂,至謂積惡在躬,獲罪神明致然,旣爲仰慮, 繼有所感歎于中者。昔子夏氏遭逆理之慘變,而猶自謂無罪。今吾兄憂隆老之例祟而至有此言,非惟仰見孝愛之切至,其反躬篤學之意,亦可謂過於古人矣。詩云: "愷悌君子,神所勞矣。" 吾以是知兄積孝在躬,獲助神明,而堂憂遄復之有日也。預爲獻賀萬萬。因念孝爲行源,推此而無所不達,而况師親一也。親有生前莫致而至者,猶自訟己罪,師受身後大誣,滅喪道義,而我不辨之,反涉助之,則此可無傷而不爲罪乎? 此豈非深念明商却顧回見處乎? 亦豈非反躬篤學加密處乎? 愛之之深,言無所不至,倘蒙恕其妄,而試思之否?
所論"旣非十年前論,又非前書中說,而別爲一論",不待我笑而兄亦自笑其苟且矣。凡此苟且諸說,欲一一辨正,則雖以兄之宏度,似不喜聞,故一幷閣置,只就兄所受病擺脫不得處,一刀兩劈,以冀兄之猛省頓悟。於此而無效,則雖多,亦奚以爲? 我且已之。 蓋來喩"可思之一端"及"義理無窮",竟是何思,竟是何義? 豈非所謂代認一事乎? 夫"代認"之云,元不成說,所謂代者,竟是代誰? 代先師乎? 代子孫乎? 代門人乎? 先師於勿認之遺書,旣云"異時",則是以身後言者也。非當身之自認,而猶云"自辱"者,何也? 文者,心之所存; 心者,身之所主,故文之受制見勘,卽無異於身之見辱也。以此文以此時,則子孫認之也,是先師自辱; 門人認之也,是先師自辱; 業者認之也,是先師自辱。代認之與子孫、門人之認,何所別乎? 是則先師主意,謂勿論請願者爲如何人,以此文以此時而請願,則爲先師之自辱也。是則代認亦豈得爲先師之視爲無傷而所欲者乎? 兄且思之,此不然否? 夫"己所不欲,勿施於人",君子爲仁之心也。炳庵,先師傳心之首弟也,先師之仁,決不如是也。是則先師許代認於《炳集》之云,果得爲一分近理者乎? 而復謂之因弟而言師,至云炳庵代認之許是大稿不言之敎。兄之見欺,已甚可笑,而彼誣者之罪,可勝誅哉? 痛矣痛矣。
"十數年後,暴揚心術,歷數罪目,有若對壘相薄"之戒,意則可感,知我則未也。夫以金世基之凶文,極其誣辱,不忍正視者,吾乃力止涵齋丈令子弟、門生發通對辨之擧。吾雖劣劣,豈與彼輩對壘相薄者哉? 但以兄旣見吳答金書,而猶不惡其擠人趨勢之心術,則是幷不知其脫罪嫁師之心術爲可誅,故因之以言其前後所爲之心之罪皆有如此書者。蓋皆關於先師,涉於稿事,非自作過惡及在稿事前者也,何以爲暴揚歷數於十數年後哉? 夫旣以辨誣爲主,則不得不幷言關於稿事之罪。惟巴書事在其前,似不必言,而近因辨破傳鉢之說而始及於此,此不得己也。大抵兄認我爲攻彼太過,故見得言言事事皆爲已甚。然殊不知旣知認敎之爲誣師則不得不辨,辨之則不得不明辨之,而不明則終不得而措之者,是爲聖人所訓、學者所勉而初不爲過也。
噫! 兄於先師之心,尙有不知者,則豈敢以知我望之? 所以眷眷而不舍者,故舊之情然爾。
兄言天下之義理無窮,此以人之見理未到極處時言。若旣到極處,則更不當言無窮。於此時而更尋極處,則不得不反作退步,左顚右倒,究不免墮坑落塹矣。"請願刊布,決是自辱",先師之見,已到義理極處,而昭揭天下,如日中天。後之人乃復言義理無窮,而更尋無據之代認說,作先師見理極處,以"決是自辱",反作道未及成時所見,而不恤陷之於千仞坑塹,豈不怪哉? 豈不痛哉? 年前徐明玉言: "先師明有認意,而曰吾先生若禁認稿,則是區區之小節,烏得爲君子之大道哉?" 被柳景肇大言折之於衆中而噤其口矣。今也則向之折之者,反爲被折者之墓也。兄聞此事,又以爲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