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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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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사익에게 보냄(與吳士益 丙子)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8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8.TXT.0008
오사익에게 보냄
한갓 붓과 혀를 낭비할 뿐이라는 형의 편지를 받은 뒤부터 저는 감히 다시 이전 일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현광(玄狂 전일중(田鎰中)이 형과 나누었던 말을 들었는데, 현광이 형과 내가 편지를 멈춘 연고를 물었더니 형이 제 편지 중에서 '극언운운(極言云云)' 하는 내용을 가지고 말을 해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현광이 그 본문을 찾아서 그 상하의 대거(對擧)한 내용을 상세히 말하였는데, 애당초 오진영을 압박하기 위하여 말한 것은 아님을 형이 들어서 알고 있다고 하였다 했습니다. 대저 '극언' 두 글자는 원래 오진영의 편지에 있는 것에 의거하여 설명한 것입니다. '극언'의 귀속처가 이와 같을 따름이고, 오진영이 마음을 먹고 이처럼 극언을 했다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책자에 쓰여 있는 것이니, 제가 아무리 교묘하게 말을 놀리고 설을 꾸며서 오진영이 한 것처럼 만들어 형을 속인다고 하더라도 가능하겠습니까? 형이 이미 현광의 설을 들어 알고 있다면 저는 형에게 무죄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다행입니다. 그리고 형은 또 현광의 편지가 있기 전에는 살피지 못한 것이 있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또한 현광의 다행이 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현광은 모두 변고가 다 있는 사람을 어찌 면할 수 있겠습니까? 또 조경헌(趙景憲)의 편지에 "천하가 모두 변하는 날이다."라는 것에 대해 현광은 '모두 변한다.'는 것과 '곧바로 오랑캐가 된다'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하였고 형도 그렇다고 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와 같다면 소견이 모두 똑같아서 지난날의 허다한 사설(辭說)을 일소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의 다행은, 형의 큰 다행이 될 뿐만 아니라 오늘과 훗날을 통틀어 모두에게 커다란 다행이니, 어찌 제가 다시 한 마디 말을 하여 서로 축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로 인해 다른 사람의 문자를 볼 때 큰 안목과 큰 가슴으로 정밀하게 살피고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면 영서연설(郢書燕說)주 30)를 초래하여 우리들에게 큰 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혹자는 이처럼 터럭 같은 견해와 사소한 문자는 설령 피차간에 완전히 명료하지 못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어찌 반드시 부지런히 변론을 일삼아 번거로움을 꺼리지 않는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유자(儒者)가 반드시 변론을 하고자 하는 것은 천리의 먼 것에 있지 않고 단지 터럭 끝 사이에 있으며, 거대한 일에 있지 않고 단지 근사한 글이나 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미약할 때 방지하고 점점 자라는 것을 두절하는 것은 여기에 있고 저기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이미 터럭 같다고 하고 사소하다고 하면서 여기에도 도리어 명료할 수 없는데, 오히려 어찌 천리 멀리서 머리를 돌리고 천자의 지위도 헌신짝 버리듯 하는 일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천하의 이치는 원래 크고 작음, 멀고 가까움의 구별이 없으니, 모두 안배를 하지 않더라도 천연적으로 그렇게 있는 것입니다. 만약 여기에서 공공의 도리를 구하여 보지 않는다면 다시 어느 곳에서 착수를 하겠습니까? 또한 마땅히 가깝고 미세한 것이라고 해서 어지럽고 거친 대로 방치하여 마침내 천리의 오류를 불러와 스스로 마음을 어지럽히는 데에 빠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는 형처럼 고명하면 마땅히 통달하지 아니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종종 저의 언어와 문자에 대해서 그렇게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사람이 자신을 알지 못함이 고금의 공통된 근심입니다. 그러나 저는 사실 스스로 돌아볼 때 졸렬하고 나약하여 사람들이 쳐다보고서 배울 사람이 못 되며, 성질 또한 편협하여 사람을 받아들일 큰 아량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번번이 말을 하게 되면 그 말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도 않고 사람들이 저를 보기를 마치 썩은 풀처럼 여깁니다. 예부터 사람이 미천하면 말이 가볍다는 설이 있게 된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가지고 그 말까지 폐하지 않는 것이 바로 현명한 사람의 일입니다. 그러나 형은 지금 대체적 견해가 저하고 거의 모두 서로 합치하니, 일시의 어긋남을 또한 어찌 해될 것이 있겠습니까? 다만 내 마음의 광명에 조금의 가리는 것이 없는 것이 귀중합니다.
매번 변론에 소홀하고 배척에 느린 자를 보면 마땅히 변론하고 마땅히 배척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소홀하고 느린 것은 소홀하고 느린 부정한 마음이 그 당연한 것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편이함을 차지하고 기쁘게 하는 것을 도모하며 들추어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등 여러 가지 안배가 있게 되니, 더욱 말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마침내 대부분 명교(名敎)의 죄인이 되니, 허다한 안배에 끝내 하나라도 실질적 효과는 얻지 못하고 이리 저리 계산만 할 뿐입니다. 오직 곧바로 실천하는 자만이 살아서는 부끄러움이 없고 죽어서는 유감이 없습니다.
예부터 간사한 무리는 일찍이 스스로 간사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를 따르는 사람에 대해서 일찍이 보호하지 않음이 없으면서 또한 그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심한 경우에는 추종자를 이용하여 그 간사함을 이루고 도리어 잔인하게 죽이는 것을 차마 실행하기도 하였는데, 조조(曹操)가 잠자는 사이에 좌우에 있는 사람을 죽이고, 사마소(司馬昭)가 일이 끝난 뒤에 성제(成濟)를 죽인 일주 31) 등이 이런 경우입니다. 간사함의 가증스럽고 두려움이 또한 이와 같은데, 이 어찌 천리의 어긋남이 있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터럭 끝 사이에서 이미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군자가 독실하게 논하고 구차하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이었으니, 어찌 포용하고 충후함이 오늘날의 군자보다 못해서 그렇게 했겠습니까? 단술을 마련해 놓지 않은 날에 이미 목에 칼을 씌우고 저자에서 도리를 돌리는 변괴를 보았던 것입니다.주 32) 아, 기미에 밝은 것이 어찌 다른 기술이 있겠습니까? 다만 털끝 같은 조짐을 잘 살피는 것이 있을 따름입니다.
언어문자의 실수는 비록 대략 고칠 수 있으면 고치면 그만이다. 그렇지 않으면 천하 후세 사람을 다 죽이게 되는 재앙이【전인(前人)이 "학술로 천하후세 사람을 모두 죽이지 말라."는 말이 있었다.】 일찍이 여기에 기초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양주(楊朱), 묵적(墨翟), 육구연(陸九淵), 왕수인(王守仁)는 어찌 모두 수(數)가 있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언어문자의 잘못으로 마침내 사문(斯文)과 세상을 함께 할 수 없는 원수가 되었습니다. 형이 이런 곳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못한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자세히 살피는 공부를 더욱 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형이 감히 자평하여 강학(講學)에 막히는 곳이 없고 사통팔달한 것이 원재(遠齋 이희진(李喜璡)이 성리학의 견해에 대하여 말한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까? 비록 선사의 밝은 식견과 풍부함으로도 매번 불초한 문인들에게 하문하신 일이 많았습니다. 형이 이와 같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고 도리어 의견을 주고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 있었으니, 이는 참으로 의아스럽습니다. 한 번 말하여 가르쳐 주기 바랍니다.
사마광(司馬光)이 위(魏)나라를 황제로 칭한 것은 본디 구사(舊史)를 따라 그대로 보존한 것에 불과했을 뿐인데, 주자는 "그 세상에 살았다면 반드시 조조(曹操)를 섬겼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주 33) 이것은 또한 언어문자의 잘못이 아니고 단지 한 때 살피지 못한 소치일 뿐이었지만 마침내 만세토록 고칠 수 없는 죄인이 되었습니다. 이 억울함을 어느 곳에 호소해야 하겠습니까? 형은 장차 주자가 너무 심했다고 여기지는 않겠습니까?
문성보(文聖甫)는 "'불언지교(不言之敎)'는 [석농(石農)이] 마땅히 쓰지 않아야 했는데 썼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끝까지 규명하지 않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땅히 해야 하는가,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단지 편지에 썼느냐 쓰지 않았느냐의 사이에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 쓴 것은 마땅하지 않은 것이고, 만약 쓰지 않았다면 마땅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애당초 '불언지교'가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니, 그 말은 쓴 것과 무슨 구별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반드시 저들 무리들이 서로 전하는 이야깃거리이니, 근심스러운 것이 또 한 층 더 깊어진 것입니다.
저는 근래에 자못 일이 많다고 느껴집니다. 글을 씀에 있어서 친분이 조금 소원하면 마땅히 써야 될 글도 문득 손놀림이 더디게 되는데, 이것은 일의 형세 때문이지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음에 비추어보아도 부끄러울 게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곧 많은 일에 마음이 치우쳐서 일을 행함에 손이 더디게 된 것이지, 어찌 많은 일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것에 더딜 이치가 있겠습니까? 도간(陶侃)은 집 바깥의 수천수만의 일이 어찌 우리들이 근래 작은 일에 분망함과 같았겠습니까? 그러나 반드시 원근의 편지에 손수 답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주 34) 우리들이 일을 행함에 합당하지 못하고 공평하지 못하면서 스스로 마음에 부끄럼이 없다고 하면서 점점 더욱 추락하여 더는 깨닫지를 못하고 또 다른 사람의 말도 듣지 않으려는 것도 대부분 이런 부류입니다. 이는 마땅히 맹렬하고 활발하게 그 덕을 새롭게 하기를 도모하여 그만두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른 사람의 언어문자의 잘못에 대해 본래의 정신과 면목을 구하지 않고 단지 좋게 보게 하려고만 하는데, 이것은 큰 악에 빠지는 근본이고 공평하지 않고 인자하지 않은 것이 이것보다 심한 것이 없습니다. 무엇 말인가 하면, 한 사람의 견해로 천하후세를 다 가리고자 하여, 마치 졸졸 흐르는 샘물과 조금씩 타기 시작한 불꽃을 막지도 않고 끄지도 않아서 결국 언덕을 태우고 강물로 흐르게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이로 인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좋게 보게 하는 것'을 말할 것 같으면, 묵씨(墨氏)의 겸애(兼愛)와 양씨(楊氏)의 위아(爲我)와 불씨(佛氏)의 견성(見性)과 육씨(陸氏)의 돈오(頓悟)와 왕씨(王氏)의 양지(良知) 같은 것이 없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거의 병폐가 없는 것 같은데 예부터 성현들이 모두 좋게 보지 않게 한 것은 무엇 때이겠습니까? '좋게 보게 한다.'는 말을 제창하는 자에 대해, 나는 그 뜻이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아, 마침내 또한 그 가련함을 볼 따름입니다.
좋게 보게 하는 것은 일찍이 또한 나쁘게 보지 않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언어문자 사이에서 여러 번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받았는데, 심지어 무얼 하지 않는 것을 가지고 드러내놓고 배척한 자도 있었고, 또한 몰래 비방하면서 서로 문답을 끊은 자도 있었습니다. 이는 모두 한쪽 사람의 문자를 좋게 보게 하려는 것입니다. 대개 좋게 보게 하려는 마음은 바로 나쁘게 보게 하려는 마음입니다. 일관된 형세는 반드시 목적하는 바가 있을 것이나, 다만 좋고 나쁨을 베푸는 것에 피차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주석 30)영성연설(郢書燕說)
원래의 뜻을 잘못 이해하여 와전(訛傳)하는 것을 가리킨다. 옛날 중국의 영(郢) 지방 사람으로 연(燕)나라 상국(相國)에게 편지를 쓴 자가 있었는데, 등불이 어둡자 옆 사람에게 촛불을 들라고 말하고는 자기도 모르게 편지에 '촛불을 들라'고 써 버렸다. 그런데 연나라 재상이 그 편지를 받아 보고는 기뻐하기를, "촛불을 들라는 것은 현자를 천거하여 쓰라는 말일 것이다." 하고는 곧 임금에게 아뢰어 그대로 실천하니, 연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나라가 잘 다스려진 것은 좋았으나 원래 편지에서 뜻한 바는 아니었던 것이다.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좌상(外儲說左上)〉
주석 31)사마소(司馬昭)가……일
위(魏)나라 말 사마소가 황위를 찬탈할 마음을 품자 위제(魏帝)가 토벌하려 하였다. 이때 사마소의 부하인 가충(賈充)이 맞아 싸웠는데 그의 설득에 따라 태자사인인 성제(成濟)가 위제(魏帝)를 칼로 찔러 죽였다. 대역무도했다는 죄명으로 사마소가 도리어 성제 일족을 주살했다. 《삼국지(三國志)》 권4 〈위서(魏書)〉
주석 32)단술을……것입니다
신공(申公)과 백생(白生)과 목생(穆生)이 동시에 전한(前漢)의 초 원왕(楚元王)을 섬겼는데, 목생이 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원왕이 알고는 주연을 베풀 때마다 그를 위해 항상 감주[醴]를 내놓았다. 그런데 뒤에 원왕의 손자인 왕무(王戊)가 사위(嗣位)하여 주연을 베풀 적에 어느 날 깜박 잊고서 감주를 한번 내놓지 않자, 목생이 "이제 떠나가야겠다. 감주를 내놓지 않은 것은 왕의 뜻이 태만해진 것이니, 떠나지 않는다면 초나라 사람들이 장차 내 목에 칼을 씌워 저잣거리에서 조리를 돌릴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서(漢書)》 권36 〈초원왕전(楚元王傳)〉
주석 33)사마광이……말했습니다
《삼국지(三國志)》는 진(晉)나라 학자 진수(陳壽, 233~297)가 편찬한 역사서로 위서(魏書) 30권, 촉서(蜀書) 15권, 오서(吳書) 20권, 합계 65권으로 되어 있다. 위나라를 정통 왕조로 보고 위서에만〈제기(帝紀)〉를 세우고, 촉서와 오서는〈열전(列傳)〉의 체재를 취했으므로 후세에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통감(通鑑)》은 북송(北宋)의 사마광(司馬光)이 저술한 《자치통감(資治通鑑)》의 약칭으로 총 2백 94권의 편년체 역사서이다. 사마광 또한 《자치통감》을 편찬하면서 위나라를 삼국 시대의 정통으로 삼았다. 나중에 주희(朱熹)는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편찬하면서 삼국 시대의 정통을 촉한(蜀漢)으로 바꾸는 등 춘추필법(春秋筆法)에 따라 의리와 명분에 입각하여 역사를 재편성하였다.
주석 34)도간(陶侃)은……없었습니다
《소학(小學)》 〈선행(善行)〉에 진(晉)나라 도간은 "바깥의 일이 수없이 많았지만 누락한 것이 없었으며, 원근의 편지에 손수 써서 회답하지 않음이 없었다[閫外多事, 千緖萬端, 罔有遺漏, 遠近書疏, 莫不手答]"라고 하였다.
與吳士益 丙子
自得兄徒費筆舌之喩,弟不敢復以前事提起。今聞玄狂與兄酬酢語,玄狂問所以兄我停書之故,兄以弟書中有以極言云云者爲言。玄狂覓其本文而詳說其上下對擧說話,而初非勒吳而出者,兄謂知聽云云。夫'極言'二字,元是依吳書中所有而爲說明,其極言所歸,如此云耳,非謂吳有心如此極言者也。寫在冊子上者,弟雖巧爲游辭飾說,如吳之所爲以欺兄,其可得乎? 兄旣知聽玄狂說,則弟得無罪於兄矣,此已萬幸。而兄又言玄狂書前有未察者云,此又爲玄狂之幸也。若非然者,玄狂豈得免無變不有之人乎? 又言趙景憲書"是天下皆變之日",玄狂謂皆變卽夷之有異,兄亦謂然。如此則可謂所見盡同,而一洗往日許多辭說矣。卽此一幸,非但爲兄之大幸,乃公共今與後之甚幸,安得不使弟復發一言而相賀也? 因知看人文字,非大眼目大心胸精察而詳說之,鮮有不致郢書燕說而爲吾大害者。因此悟彼如有未盡者,皆可以竹破也。
或謂此等毫釐之見鮮、些小之文字,設有彼此之未盡瀅澈者,何必勤事分疏而不憚煩乎? 弟謂儒者之必欲分疏者,不在於千里之遠而只在於毫釐之際,不在於巨大之事而只在於近似之文辭,蓋防微社漸在此而不在於彼故也。且旣曰毫釐、些小,而於此却不能瀅澈,則尙安能可望於千里之回頭、巨大之棄屣乎? 且天下之理,元無巨細遠近,皆有不待安排而天然自在者。若不於此而求觀其公共道理,則更於甚處下手? 又不當以近細容其胡亂粗率,終以致千里之繆,而反自陷於昧心之科也。吾以爲如兄高明宜無不達,而種種於弟言語文字有不然者,何也? 人若不自知,古今之通患。然弟實自顧劣弱,不足以爲人觀瞻慕效; 性又偏狹,無容物大雅。以此而輒有出言,勿問其言之當否,而人之視之,如同腐芥。自古有人微言輕之說,爲是之故也。是以不以人廢言,乃爲明者事耳。然兄今大體所見,與弟略皆相合,其一時之參差,庸亦何傷哉? 只貴吾胸中光明無纖翳其間而己。
每見忽於論辨、緩於攻斥者,非不知其當辨當斥,而忽於緩於者,是忽緩之邪心蔽其當然者也。况又有進一步占便宜、圖容悅、惧發摘等許多安排者,更不可言也。此等人畢竟多陷於名敎之罪人而己,其於許多安排,究無一得之實效,算來算去。惟有直而行之者,爲生無愧而死無憾耳。
自古奸邪之徒,未嘗不自知奸邪,於其從己未嘗不加護,而亦未嘗不竊笑其痴。是以甚則至於因而濟其奸邪,而反以忍其殘殺,如曹操之睡中殺左右、司馬昭之事後戮成濟等是也。奸邪之可惡而可畏又如此,此何待千里之繆然後可知者哉? 毫釐之際,己有見矣。古之君子所以篤論而不苟者以此,豈包容忠厚不及今之君子而然哉? 醴酒不設之日,已見箝市之變。嗚呼! 明炳幾先,豈有他術哉? 只有精察其毫釐之兆而己。
言語文字之失,雖若可略改之則己矣,否則殺盡天下後世之禍,【前人有"無以學術殺天下後世"之語 】 未嘗不基於此。楊、墨、陸、王,豈皆非有數之人? 只以言語文字之失,遂爲斯文不共世之讐。竊兄於此等處有未及究者,然不可不更加審察之功也。
兄敢自謂講學上無所滯礙,四通八達,如遠齋之於性理之見所云乎? 雖以先師之明識富有,每多下問不肖之門人之事,而不聞兄之有此,反有"不須說往說來"之喩,此誠可疑也。願賜一言之敎。
司馬公之帝魏,本不過因舊史而仍存耳。朱子謂: "生其世,必事曹操。" 此則又無言語文字之失,而只因一時不審之致,遂爲萬世莫改之罪人。只此寃恨可於何處訴屈也? 兄將不以朱子爲己甚耶?
文聖甫謂: "不言之敎,不當書而書。" 此到底究勘不可但已者也。是當不當,只在書不書之間也。然則以其書也不當耳,若不書則無不當者。然則初非無不言之敎云者也,其言庸有別於書之者乎? 此必渠輩相傳話柄,其可憂也又一層矣。
弟於近日頗覺多事。其於鉛槧,情親稍疎,至其當爲文字,轉成手遲,此由事勢,非故如此。求之本心,可以無愧。然此便是用心偏於多事,行事邪於手遲者,豈有以多事之故遲於當爲之理也乎? 陶侃之閫外千緖萬端,豈若吾輩之日間小小紛忙者乎? 然必遠近書疎,莫不手答。凡吾輩行事不合不公,而自以爲無愧本心,轉轉落下,不復知悟,亦不肯聽人說話者,多此類也。此宜猛著精彩,圖維新厥德,不可但已者也。如何如何?
於人言語文字之失,不求本來精神面目,只要使好看,此便是陷於大惡之根子,而不公不仁莫此爲甚。何也? 欲以一人之見,蔽盡天下後世,而使其涓涓燄燄,不止不滅,燎原江河,卽此而成故也.
若曰使好看,則應無如墨氏之兼愛、楊氏之爲我、佛氏之見性、陸氏之頓悟、王氏之良知,皆幾於無病,從古聖賢,皆不使好看,何也? 唱爲"使好看"三字者,吾知其志別有所在。嗚呼! 終亦見其可憐而己矣.
使好看者,亦未嘗不使惡看。故弟於言語文字之間,得屢憎於人,至於以無爲而有顯斥之者,亦有潛非而絶相問答者,皆其欲使好看一邊人文字者也。蓋使好看之心,卽使惡看之心也。一串貫來,勢有必至者也,但好惡之施有彼此之異焉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