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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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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사익에게 보냄(與吳士益 丙子)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8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8.TXT.0006
오사익에게 보냄
저는 근래 《주자대전》을 공부하고 있는데, 읽다가 "의리는 미루어 찾기가 어렵고 공부는 중간에 끊어지기 쉬운데, 세월은 물처럼 흘러가니 매우 걱정되고 두렵다."주 14)라는 가르침에 이르러서는 일찍이 놀라서 경계하고 반성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대체로 세월은 하늘에 달려있고 의리는 사물에 달려 있으니, 그 쉽게 흘러가고 찾기 어려운 것은 우리의 지력으로 그 본래 모습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오직 공부는 나에게 달려 있으니, 진실로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성취하여 그 밝음이 일월과 같게 되고 그 이름이 우주에 드리우게 되면, 의리는 쉽게 찾을 수 있고 세월은 영원히 길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간에 끊어지지 않는 것' 이 한 가지 일은 어찌 우리들이 마땅히 힘써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일찍이 생각해보았는데, 우리들과 성현이 천지처럼 현격한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은 공부가 중간에 끊어졌는가, 끊어지지 않았는가의 어떠함에 관계된 것이니, 어찌 다만 기질을 청탁(淸濁) 때문일 뿐이겠습니까? 이제 성현의 지난 자취를 가지고 구해보면, "오히려 촌음을 아꼈다."주 15)는 것은 대우(大禹)의 끊어지지 않음이고, "도를 보고서도 보지 못한 것처럼 하였다."16)16) 도를 하였다 : 《맹자(孟子)》 〈이루 하(離婁下)〉 "문왕은 백성을 볼 때 혹시라도 다칠까 염려하였고, 도를 보고서도 보지 못한 것처럼 여겼다.[文王視民如傷, 望道而如未之見]"라고 하였다. 《맹자(孟子)》 〈이루 하(離婁下)〉
는 것은 문왕(文王)의 끊어지지 않음이며, "밤으로써 날을 이었다."주 17)는 것은 주공이 끊어지지 않음입니다. 공자(孔子)가 먹는 것을 잃어버리고 민첩하게 진리를 구한 것주 18)도 끊어지지 않음이고, 안자(顔子)가 선을 가슴에 깊이 새긴 것주 19)도 끊어지지 않음입니다. 부지런히 두려워하며 스스로 힘써 그치지 않는 공부가 모두 이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현재 상황은, 밖으로는 몸가짐을 삼가지 못하고 말을 함에 법도가 없으며, 안으로는 격물치지(格物致知)가 정밀하지 못하고 존심양성(存心養性)이 치밀하지 못하니, 이는 진실로 모두 중간에게 끊어짐으로 인해 생긴 결과입니다. 그리고 송독(誦讀)에 과정이 없고 강론(講論)이 부지런하지 못하며주 20) 왕복(往復)에 기일을 넘기는 것도 모두 중간에 끊어진 것입니다. 끝내 어떻게 공을 세우고 이름을 드리우며 찾기 어려운 이치를 보아서 흐르는 세월과 함께 영구할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두려워하며 편안하지 못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형은 근래에 날마다 더욱더 정성스럽고 부지런하여 절로 기뻐할 운치가 있고 이처럼 두려워하는 마음은 없으십니까?
이로 인하여 오늘날 세상을 생각을 해보니, 성학(聖學)은 사라지고 의리(義理)는 막혀서 학자라고 불리는 자도 공자의 이른바 "학문이 강습되지 못함을 근심한다."주 21)는 것과 정자의 이른바 "학문은 반드시 강습을 한 뒤에 밝아진다."주 22)는 것에 대해서 아득히 무슨 일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간혹 알아서 종사하는 자들도 그 사이에 편견과 시기심이 뒤섞여서 밝히고자 하는 것이 끝내 도리어 어두워지지, 어찌 한탄스럽지 않겠습니까? 오직 형은 그렇지 않습니다. 밝음은 충분히 사리(事理)를 밝힐 수가 있고, 공명함은 충분히 물아(物我)를 공평하게 할 수 있어서, 다만 옳음을 구하고자 하면서 그 중도를 잃을까 두려워할 뿐입니다. 그러니 온 세상을 둘러보아도 더불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형이 아니면 누구이겠습니까? 이것이 제가 함께 하기를 좋아하며 벗이 된 이유입니다.
지난번 논했던 오진영의 《정절사전》 가운데 중화와 오랑캐의 구분이 없는 것은 가장 큰 관건입니다. 형은 그것을 가져다 근거로 삼으면서 해가 없다고 하였고, 저는 즉시 변론하여 근거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논한 지가 이미 한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다시 긍정하는지 부정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이 없으니, 아마도 이미 평소의 견해에 분명하여 더는 번거롭게 일삼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까. 만약 그렇지 않은데도 오히려 이와 같다면, 우리들은 모두 이미 노쇠하였고 또 세상이 어지럽고 길도 다하여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단지 이 하나의 의심나는 뜻도 오히려 또한 의견을 주고받는데 게을러서 달을 넘기고 해를 지나도록 결론을 내지 못한다면 의심스럽고 강론해야 할 수천수만의 무궁한 의리에 대해 또한 모두 장차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발돋움하고 바라는 나머지 우연히 주자의 가르침에 감개한 바가 있어서 저도 모르게 누누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형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석 14)의리는……두렵다
《주자대전(朱子大全)》 권33 〈답여백공(答呂伯恭)〉에 "공부는 중간에 끊어지기 쉽고, 의리는 미루어 찾기 어려운데, 세월은 물처럼 흘러가니 매우 걱정되고 두렵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功夫易間斷 義理難推尋 而歲月如流 甚可憂懼 奈何奈何]"라고 하였다.
주석 15)오히려……아꼈다
진(晉)나라 도간(陶侃)은 "대우는 성인인데도 오히려 촌음을 아꼈으니, 중인들은 의당 분음을 아껴야 한다[大禹聖者, 乃惜寸陰, 至於衆人, 當惜分陰]"라고 하였다. 《진서(晉書)》 권66 《도간열전(陶侃列傳)》
주석 17)밤으로써……이었다
《맹자(孟子)》 〈이루 하(離婁下)〉에 "주공은 삼왕을 겸하여 네 가지 일을 시행할 것을 생각하되, 부합하지 않는 것이 있으면 우러러 생각하여 밤으로써 날을 이어서, 다행히 터득하면 그대로 앉아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周公思兼三王, 以施四事, 其有不合者, 仰而思之, 夜以繼日, 幸而得之, 坐以待旦]"라고 하였다.
주석 18)공자가……것
《논어(論語)》 〈술이(述而)〉에, 공자는 "분발하여 밥 먹는 것도 잊고, 학문을 즐기며 근심을 잊으며, 늙어 가는 것도 알지 못한다[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라고 하였고, "나는 선천적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민첩하게 구하는 사람이다.[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라고 하였다.
주석 19)선을……것
《중용장구(中庸章句)》 제8장에, 공자가 말하기를 "안회(顔回)의 사람됨은 중용의 길을 택하여 행하면서, 어떤 한 가지 선을 얻으면 가슴에 깊이 새기고 잃어버리는 일이 없었다[回之爲人也, 擇乎中庸, 得一善, 則拳拳服膺而不失之矣]"라고 하였다.
주석 20)강론(講論)이 부지런하지 못하며
원문은 '講論之不謹'인데, 문맥을 살펴 '謹'을 '勤'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석 21)학문이……근심한다
《논어(論語)》 〈술이(述而)〉에, 공자가 말하기를 "덕이 닦아지지 못함과 학문이 강습되지 못함과 의를 듣고 옮겨가지 못하며 불선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나의 근심이다[德之不修、學之不講、聞義不能徙、不善不能改, 是吾憂也]"라고 하였다.
주석 22)학문은……밝아진다
《논어집주(論語集註)》에 의거하면, 이 구절은 위의 공자가 "덕이 닦여지지 못하고 학문이 강습되지 못한다."는 구절에 대한 윤씨(尹氏)의 해석으로 되어 있다. 번역에서는 원문대로 우선 번역했음을 밝혀둔다. 윤씨는 "덕은 반드시 닦여진 이후에 이루어지고, 학문은 반드시 강습된 이후에 밝아지며, 선을 보고 능히 실천하고 잘못을 고치는데 인색해서는 안 된다. 이 네 가지는 일신의 요체이다. 진실로 능히 하지 못하면 성인도 오히려 근심하는데 하물며 학자이겠는가.[德必修而後成, 學必講而後明, 見善能徙, 改過不吝. 此四者日新之要也. 苟未能之, 聖人猶憂, 況學者乎?]"라고 하였다.
與吳士益 丙子
弟之近課在《朱子大全》,而讀至"義理難推尋,工夫易間斷,而歲月如流,甚可憂懼"之訓,未嘗不惕然而警省也。蓋歲月在天,義理在事物,其易逝難尋,非吾智力之所能反其本相。惟工夫在我,苟不間斷而成之,其明如日月,其名垂宇宙,則義理可易尋,歲月可永長。然則不間斷一事,豈非吾輩之所當勉者乎?
竊嘗惟之,吾輩之與聖賢,天淵之相縣,實係工夫不間斷與否之如何爾,豈獨以氣質之淸濁哉? 今以聖賢之往跡求之,"猶惜寸陰",大禹之不間斷也; "望道如未之見",文王之不間斷也; "夜以繼日",周公之不間斷也。孔子之忘食敏求也,是不間斷; 顔子之拳拳服膺也,是不間斷。其乾乾惕厲,自强不息之功,旣皆如此矣。
至於吾輩之現狀,則外而持身之不謹、出言之無章,內而窮格之不精、存省之不密,固皆是間斷所致,以至誦讀之無程、講論之不勤謹、往復之踰時,亦無一而非間斷也。終何以成工垂名明見難尋之義理而永久如流之歲月哉? 弟之所瞿瞿然不寧者,此也。未知兄近日日間,益復慥慥,自有喜悅之趣,而無此瞿然之情否?
仍念此世,聖學湮亡,義理晦塞,號爲學者,於孔子所謂"學之不講是憂"、程子所謂"學必講而後明"者,茫不知何事。其或知焉而從事者,又雜以偏見忮心於其間,其所欲明之者,究竟反以晦之,寧不可歎哉? 惟兄則不然,明足以燭事理,公足以平物我,只欲求是而恐失其中。顧瞻幷世可與語者,舍兄而誰? 此弟之所以樂與之友也。
向論吳傳中華夷無分,係是大關,而兄之援據而謂其無害,弟之立辨而謂非其據者,已經一朔,而尙無復然否之盛敎,豈已犂然於雅見而無所事乎更煩而然耶? 如其不然而猶爾者,吾儕俱己衰矣,且世亂途窮,死亡無日,只此一款疑義,猶且緩稽往復,閱月經年而未決,則其於千頭萬緖無窮義理之可疑可講者,又皆將如之何哉? 仰企之餘,偶有感於朱子之訓,不覺縷縷至此,未知吾兄以爲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