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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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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성보제중에게 보냄(與文聖甫濟衆 ○丁丑)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7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7.TXT.0046
문성보제중에게 보냄
좌하가 연전에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선사가 '《오현수언(五賢粹言)》의 간행을 인가받는 것은 후일에 원고의 간행을 인가받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고 했으니, 이것은 선사에게 인의(認意)가 있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작년 가을에 저와 사견(士狷)에게 말하기를 "'불언지교(不言之教)'는 석농(石農)이 쓰지 않아야 되었는데 썼다.'라고 하였는데, '본래 없었다.'라고 하지 않고 '쓰지 않아야 되었다.'고 했으니, 이는 선사가 인교(認敎)가 있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저는 이전 편지 후면(後面)에 이를 변론했으나 들어주질 않은지라, 일찍이 좌하가 선사의 뜻을 모르고서 사람들에게 속임을 당한 것을 민망히 여기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금년 봄에 만났을 때 제가 좌하에게 "지금도 과연 선사가 인의와 인교가 있었다고 생각합니까?"라 물었더니, 좌하가 대뜸 대답하기를 "선사가 이미 '문고를 50년 뒤에 하라.'는 명이 있었는데, 어찌 인의와 인교를 말씀을 이치가 있었는가?."라고 하였고, 제가 말하기를 "분명히 이와 같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윽고 서로 헤어지게 되어 친구 이경좌(李敬佐)와 함께 사천(沙川)에 이르러 이별할 때에 제가 다시 질문하여 말하기를 "아까 말씀하신 인의와 인교가 없었다는 것에 대해 이미 분명이 이와 같다고 하였으니, 뒤에 반드시 다시 변동함이 없어야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좌하는 기쁘게 듣고 다른 말씀은 없었고,. 저 또한 좌하가 끝내 선사의 마음에 어둡지 않고 선사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아, 이전의 걱정과 이후의 다행함이 어찌 나의 견해와 같거나 같지 않아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대개 모두 좌하에게는 스승과 제자로서의 큰 관건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침 선사 휘일(諱日)이기에 이것이 생각나서 한 번 편지로 말씀드려 본 것입니다. 만일 편지가 사실과 어긋나면 일일이 분변하여 보여주셔도 무방합니다.
與文聖甫濟衆 ○丁丑
座下年前對人言: "先師言《五粹》認印開後日認稿之路。" 是謂先師有認意矣。昨秋對僕與士狷言: "不言之教,石農不當書而書之。" 不云本無而云不當書,則是謂先師有認教矣。僕前書後面以辨而不見聽,則未嘗不憫座下不知先師而見欺於人矣。今春之遇,僕問座下: "至今果認先師有認意、認教乎?" 則座下遽答曰: "先師旣有文稿五十年後爲之之命,則豈有認意、認教之理?" 僕曰: "分明如是。" 旣而爲之相送,同李友敬佐至沙川而別,僕又質曰: "俄者所說無認意認教, 旣云分明如是,則後必不復變動矣。" 座下喜聽而無他說,僕又以幸座下終不昧師心負師恩矣。噫! 前之憫後之幸,豈爲與我同不同而然哉? 蓋皆爲座下師生之大關也。適茲先師諱辰,念及於此,爲一告之,如書不以實,不妨一一辨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