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열람
  • 디렉토리열람
  • 유형분류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7
  • 전순형기진에게 보냄(與田舜衡璣鎮 ○乙亥)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7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7.TXT.0040
전순형기진에게 보냄
지난번 이별한 것이 꿈만 같은데, 어느 날에나 다시 만나겠는지요? 멀리 그려 마지않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사문(斯文)의 시비(是非)가 있은 이래로 마침내 무한한 추악한 제목을 얻게 되었으니, 비록 집에 앉아있다 하더라도 집안에서도 척연히 부끄럽고 한스럽게 여기는 것이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항상 감히 불초의 얼굴을 사람들에게 스스로 내보이지 않았습니다. 간혹 저를 방문한 자가 있더라도 또한 감히 기뻐하는 마음을 두지 못하고 문득 두렵고 곤란한 마음이 생겨서 다시 어떤 책망이 있을지 모른다고 여기었고, 또 헤어지고 나서는 다시 전하는 말이 있어서 다시 무슨 죄를 얻게 될지 몰라서 두려웠습니다.
지난번에 형이 은혜롭게 방문했을 때에는 평소의 정의와 멀리서 찾아온 부지런함을 생각하니, 어찌 기쁜 마음에 신발을 거꾸로 신고 악수주 114)를 할 뿐이겠습니까. 그러나 저로서는 실로 처음에 조금 두렵고 곤란한 마음이 없지 않았으니, 화살에 맞은 새가 굽어진 나무만 보고도 놀란다고 하는 것주 115)이 어찌 이런 경우가 아니겠습니까? 그 말씀을 듣고 그 모습을 보고서는 비록 그 곤름(囷廪)주 116)을 다 기울이지 않고 또한 그 성부(城府)를 완전히 열지는 않았지만주 117), 사사로이 생각하기를 과연 평소에 바라던 바를 저버리지는 않았고 점점 간담을 서로 보여줄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형이 다시 방문했을 때에 저는 이미 먼저 두렵고 곤란한 마음을 끊어버렸으니, 이미 말씀을 듣고 얼굴을 볼 일이 없었고, 또한 곤름을 기울고 성부를 열지 않아도 흔쾌히 저의 간담을 열어 보이는데 더는 여지를 둘 것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렇지 않음이 있었는데, 이는 내가 머뭇거리고 의심하여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갑자기 쉽게 마음을 쏟아낼 수 없었던 때문입니다. 형은 혹 이점에 대하여 저를 서운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나 오히려 알 수가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그렇지 아니한지요?
대개 형은 호남(湖南)과 음성(陰城) 사이에 대해 일찍부터 그 시비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다만 저계야(褚季野)주 118) 같은 자가 형과 서로 잘 지내기 때문에 그와 더불어 같은 길을 가게 됨을 면치 못했을 뿐이니, 이것은 진실로 재론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근래에 오진영이 〈정절사전(鄭節士傳)〉을 지었습니다. 저는 그의 입언(立言)이 해롭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략 변론하였는데, 형은 옳지 않다고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오진영이 변론에 대하여 말한 바가 있자, 형은 또 그렇지 않다고 여기셨습니다. 그렇다면 형은 그 잘잘못의 소재를 분명코 알 수 있었습니다. 오진영이 다시 내가 절의를 배척하는 사설(邪說)을 한다고 여겨서 오랑캐의 재앙보다도 심하다고 하였는데, 형은 이에 대해 또 어떻게 여기십니까?
근년 이래로 비록 평범한 말이라도 입을 떠나기만 하면 허물이 곧바로 따라서 생겨납니다. 더구나 조금이라도 시비와 관련된 것은 그 그림자만 대략 언급하여도 엄한 꾸짖음이 사방에서 닥칩니다. 비록 평소에 매우 친하고 서로 잘 아는 사람도 매번 살펴주지 않고 비정하다고 하니, 일단의 애타는 심정을 누구와 함께 말하겠습니까? 매번 자문하고 자답할 뿐입니다.
형이 멀리 영남으로부터 서해의 바닷가까지 와서 생사를 묻고 다시 마음을 위로해 주시다가, 얼마 안 되어 이별하여 가셨는데, 어찌 저로 하여금 한 번 기쁘게 했다가 한 번 슬프게 하십니까? 근래는 더욱 무료하여 애오라지 지난날에 다 말씀드리지 못했던 것을 조금이나마 써서 보내니, 또한 장차 이를 이어서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형은 아마 제가 형을 서운하게 하지 않았음을 아실 것입니다.
주석 114)신발을……악수
《구당서(舊唐書)》 〈유업전(劉鄴傳)〉에 유업(劉鄴)이 찾아오자 너무도 반가워 신발을 거꾸로 신고 영접했던 이덕유(李德裕)의 고사가 있다.
주석 115)화살에……것
화살을 맞아 본 경험이 있는 새는 활을 당기는 시늉만 하여도 그만 놀란 나머지 공중에서 떨어지고 만다는 뜻으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과 비슷한 우화이다. 《전국책(戰國策)》 〈금책(楚策) 4〉
주석 116)곤름(囷廪)
곳간 : 균름은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인데, 여기서는 마음을 비유하고 있다. 아래의 성부(城府)도 마찬가지이다.
주석 117)그 성부(城府)를……않았지만
원문은 '不全閉其城府'인데, 문맥을 살펴 '閉'를 '開'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석 118)저계야(褚季野)
저계야는 입으로 시비를 말하지 않으나 속으로는 시비(是非)가 분명한 사람이었는데, 진(晉) 나라 환이(桓彛)가 저계야(褚季野)를 칭찬하여 "계야는 가죽 속에 춘추(春秋)가 있어서, 비록 말하지 않아도 사시(四時)의 기운이 감추어져 있다."라고 하였다
與田舜衡璣鎮 ○乙亥
向別如夢,不知從者何日返抵耶? 區區遠溯不已。第念自有斯文是非以來,遂得無限醜題,雖坐在自家,家裡未嘗不惕然愧恨者多。是以尋常不敢以不肖面目自露於人。其或有相訪者,亦不敢有欣喜之心,而輒生畏難之意,以爲不知復有何等責問也,又懼夫退而不知復有傳說而使重得何罪也。
往者,兄之惠然見顧也,揆以平日情誼及其遠于之勤,則奚啻欣喜倒屣握手而已哉? 而弟實不能初無絲毫畏難之心,豈其傷弓之鳥見曲木而驚是耶? 及聽其言而觀其貌也,則雖不盡傾其囷廪,而亦不全閉其城府,私竊以爲果不負平昔所望而漸有可以肝膽相示之路頭矣。及兄之再訪也,弟已先絕畏難之心,則已無事於聽言觀貌矣,亦且無待於囷廪之傾、城府之開,快將我肝膽相示,無復有餘。而却猶未然,非我有所趑趄疑殆而爾,實緣凌遽未易輸寫者。兄或於此,不以爲簡我,尚未可知也。未知不然否。
蓋兄於湖陰之間,非不早燭其是非者,但有褚季野者,與兄相善,故不免與之同歸耳,此固不必再言者。至於近日吳作《鄭節士傳》,弟見其立言之有害,故不得已有所略辨者,兄旣不以爲非。吳之於辨有所云云者,兄又不以爲然,則得失所在,斷可見矣。吳復以我爲排節義之邪說,而與於夷禍之甚者,兄於此又以爲如何? 年來雖尋常說話,纔脫於口,吝輒隨生。況其稍涉是非者,略及影響,誅責四至。雖號平日相親之厚、相識之甚者,每不見察,加以非情,一段耿耿,向誰與語? 每自問自答而已矣。
兄遠自嶺表以來西海之濱,旣問死生而復論心曲,而不須臾而別,則安得不使我一喜而一悵也? 近益無聊,聊將往日未盡輸寫之萬一以去,且將繼此而有言矣。兄庶幾知我之不簡兄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