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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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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수경채환에게 보냄(與朴受卿彩煥 ○癸卯)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7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7.TXT.0005
박수경채환에게 보냄
배우는 자가 스승에게 전수받아 용처로 삼는 것은 많은 것에 있지 않고 다만 스스로 떠맡아서 한두 글자를 얻어 자신의 밑천으로 삼는 데 있습니다. 이 때문에 원성(元城 유안세((劉安世))은 온공(溫恭 사마광(司馬光))에게 '성(誠)' 한 글자를 받아서 종신토록 행하였고주 15), 중거(仲車 서적(徐積))는 안정(安定 호원(胡瑗))에게 '직(直)' 한 글자를 받아서 평생토록 사용하였습니다.주 16) 아우는 형이 간옹에게 전수받은 '용(勇)' 자도 이와 같다고 여깁니다.
대저 더디고 유약한 것은 배우는 자의 병통이니, 다만 '용(勇)' 한 글자야말로 귀신이 전수한 한 알의 영단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용(勇)과 불용(不勇)은 이 학문의 성패를 가를 기틀입니다. "스스로 힘써서 쉬지 않는다."주 17)는 것도 다만 용이며, "죽은 이후에 그친다."주 18)도 다만 용입니다. 그리고 안자(顔子)가 "순(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주 19)라고 하고, 자로(子路)가 "듣고서 행하지 못함이 있으면 다시 들을 것을 두려워했다."주 20)라고 한 것도 모두 능히 용을 실천하여 성인도 되고 현인도 된 것입니다. "한 삼태기가 부족하여 산을 이루지 못하고 그치었다."주 21)는 것과 "싹은 났으나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꽃은 피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한 경우도 있다."주 22)는 것은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염구(冉求)의 자획(自畫)주 23)과 재여(宰予)의 주침(晝寢)주 24)도 결국에는 또한 용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에 불과합니다. 간옹이 형에게 '용'을 말씀해 주신 것은 그 뜻이 어찌 얕은 것이겠습니까. 천만 스스로 힘을 써서 종신토록 수용하여 쓴다면 또한 원성(元城)과 중거(仲車)와 같게 될 것입니다. 형이 스스로 용기가 없다고 말씀한 것은 비록 겸양에서 나온 것이지만 제가 보기에 한 가지 일에 근사한 점이 있는 것 같아서 외람되게 번거로이 떠들었습니다. 형은 유념해 주기 바랍니다.
대저 사람이 상지(上知)가 아니면 스승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고 이룬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만법의 근원입니다. 천하에 지극히 귀한 것은 도이며 지극히 높은 것은 덕인데, 스승의 강수(講授)로 말미암아 귀하고도 높은 것을 얻으니 은혜와 의리가 깊고도 무거움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옛날부터 성현마다 이 일을 조기에 정하지 않은 자가 없었습니다. 안자(顔子)가 공자를 따라 배운 것도 그 나이가 14세였고, 자하(子夏)가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사이에서 공자를 따른 것도 그 나이가 18세였으며, 이천(伊川)은 15세에 염계(濂溪)에게 배웠고, 회옹(晦翁)은 24세에 연평(延平)을 뵈었습니다. 이제 형이 간옹을 뵌 것은 이상의 여러 성현과 비교해 볼 때 조금 늦다고 말할 수 있는데도, 오히려 굳은 마음으로 스승과 제자의 분수를 정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용기가 없는 것과 근사한 점이 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근래에 제가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박모(朴某)는 순실하여 함께 할만하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은 참으로 듣기가 쉽지 않고 그 뜻 또한 의미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현의 시대와 멀고 인물도 없어서 학술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습니다. 사장(詞章)을 추구하는 속학(俗學)의 무리야 진실로 물을 것이 없으나, 도학(道學)을 한다 말하면서 서로 전수한 종지를 위반하고 별도로 자신의 법문을 세워서 의관의 제도를 무너뜨리고 심성의 나뉨을 혼란시키는 자들이 또한 많으니, 온 나라를 둘러보아도 어디에 발길을 두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길이 한번 어긋나면 비록 허다한 심력을 모두 쏟고 수많은 말로 꾸민다 하더라도, 끝내는 성학의 참뜻과는 향기로운 풀과 누린내 풀처럼 서로 반대됩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마땅히 신중히 살펴서 추향을 결정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받들어 언급하였습니다. 잘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주석 15)원성(元城)은……행하였고
유안세가 사마광에게 '마음을 다하고 몸을 닦는 요체로서 죽을 때까지 행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묻자, 사마광이 대답하기를 "그것은 성(誠)일 것이다." 하였다. 이에 다시 유안세가 "그것을 행하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라고 물으니, 사마광이 대답하기를,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였다. 《소학집주(小學集註) 권6 〈선행(善行)〉 유안세는 강직한 성품으로 직간을 하여, 전상호(殿上虎)라는 별명을 얻었다.
주석 16)중거(仲車)는……사용하셨습니다
서적이 스승인 호원(胡瑗)을 뵙고 나올 때에 머리의 모양이 조금 기울었는데, 호원이 갑자기 큰소리로 "머리를 곧게 세워라.[頭容直]"라고 하였다. 서적은 이 말을 듣고 머리를 곧게 세워야 할 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곧아야 한다고 스스로 깨닫고, 이후로 부정한 마음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소학집주(小學集註) 권6 〈선행(善行)〉
주석 17)스스로……않는다
《주역》 건괘(乾卦) 상전(象傳)에 "하늘의 운행이 강건하니 군자가 이를 보고서 스스로 힘쓰며 쉬지 않는다.[天行健 君子以 自彊不息]"라고 하였다.
주석 18)죽은……그친다
《논어(論語)》 〈태백(泰伯)〉에 보이는데,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선비는 도량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되니 책임이 무겁고 길이 멀기 때문이다. 인(仁)으로 자기의 책임을 삼으니 또한 막중하지 않은가.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이니 또한 멀지 않은가.[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라고 하였다.
주석 19)순(舜)은……사람인가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보이는데, 안연(顔淵)이 말하기를 "순 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순 임금이 되려고 노력하는 자는 또한 순 임금같이 될 것이다.(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라고 하였다.
주석 20)자로(子路)는……두려워했다
이 구절은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에 보인다. 본래는 "자로는 가르침을 듣고 그 가르침을 미처 실천하지 못했으면 유독 다른 가르침을 듣기 두려워했다.[子路有聞, 未之能行, 唯恐有聞]"이다.
주석 21)한 삼태기가……그치었다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보이는데, "비유하면 산을 만드는 데에 한 삼태기를 더하지 않고서 그치는 것도 내가 그치는 것과 같으며, 비유하면 평지에 한 삼태기를 붓더라도 나아감은 내가 나아가는 것과 같다.[譬如爲山, 未成一簣, 止, 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簣, 進, 吾往也]"라고 하였다.
주석 22)싹은……있다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보이는데, "싹이 났으나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꽃은 피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苗而不秀者, 有矣夫; 秀而不實者, 有矣夫.]"라고 하였다. 이는 원래 학문을 하면서 완성에 이르지 못함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의미를 전용하여 사용하였다.
주석 23)염구(冉求)의 자획(自畫)
《논어(論語)》 〈옹야장(雍也)〉에 보인다. 염구가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힘이 부족합니다.[非不悅子之道, 力不足也.]"라고 하자, 공자가 말하기를 "힘이 부족한 자는 중도에 그만둔다. 지금 너는 스스로 한계를 그은 것이다.[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畫]"라고 하였다.
주석 24)재여(宰予)의 주침(晝寢)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에 보인다. 재여가 낮잠을 자자, 공자가 말하기를 '썩은 나무는 아로새길 수 없고 분토의 담장은 손질할 수 없다.[朽木不可雕也, 糞土之墻不可杇也.]"라고 하였다
與朴受卿彩煥 ○癸卯
學者之所受於師而爲用者,不在於多,只在自家擔夯,得一兩字做家計。是以元城受一誠字於溫公,爲終身之行; 仲車受一直字於安定,作一生之用。弟竊以爲兄之所受於艮翁之勇字,亦猶是也。
夫遲回懦弱,學者之通病,而只是一箇勇字,可謂神傳鬼授之一粒靈丹也。故勇與不勇,此學成敗之機。"自強不息",亦只是勇; "死而後已",亦只是勇。至於顏子之"舜何人,余何人",子路之"有聞未行,唯恐有聞",亦皆能其勇而爲聖爲賢也。若乃"未成一簣而止"者與"苗而不秀,秀而不實"者,勇不足故也。冉求之"自畫",宰予之"畫寢",究亦不過無勇之致。艮翁之語兄以勇,其意豈淺淺也哉? 千萬自力,做畢生受用之需,亦如元城、仲車也。兄自謂無勇,雖出於撝謙,然以弟觀之,似有一事近似者,猥此煩聒,願兄留心焉。
夫人非上知,未有不待師教而成者。故師生者,萬法之源也。天下至貴者道,至尊者德,乃由其講授,得其貴且尊者有之,其恩義深重,顧何如哉? 故從古聖賢,未有不早定此事者。顏子之從孔子學也,時年十四; 子夏之從孔子於陳、蔡也,時年十八; 伊川十五而學濂溪; 晦翁二十四而見延平。今兄之見艮翁,視以上諸聖賢,可謂差晚,而猶不決意以定師生之分。故曰有一事近似於無勇也。
頃承師教云: '朴某醇實,可與有爲。' 誠不易得此,其志亦有在也。世遠人亡,學術多岐。俗學詞章之輩,固無足問,號爲道學,而繆戾相傳宗旨,別立自家法門,顚倒衣冠之儀,乖亂心性之分者亦多,顧瞻宇內,罔知投蹤。路陌一差,雖費盡得許多心力,粧撰得許多辭說,終與聖學眞趣,若薫蕕之相反矣。此吾儕所當審愼而趨向者,故奉及焉,幸有以諒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