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열람
  • 디렉토리열람
  • 유형분류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6
  • 임자경에게 답함(答林子敬 辛巳)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6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6.TXT.0032
임자경에게 답함
《역설혹문(易說或問)》을 만약에 읽어서 완성을 한다면 어찌 세상에 보탬이 되는 문자가 아니겠습니까? 만약에 눈앞에 오대양이 들끓고 수많은 나라가 호시탐탐 노려보는 것에 대해 도움 되는 것이 없는 것으로 겸연쩍 하게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은 것이 있으니 어찌 공자가 계사(繫辭)를 저술할 때 노나라가 쇠약하고 제후들이 다투어 혼란한 것이 옛날처럼 여전했음을 보지 못하였겠습니까? 다만 내가 지은 책이 혹여 진선진미 하지 않은 점이 있음을 근심할 뿐이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책에 대하여 젊었을 때 날마다 예에 따라 한두 번 읽은 이후엔 일찍이 하루도 힘을 쓰지 않았으니 진실로 《역》의 도리에 대해서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자(정이)의 "수시로 변하고 바꾸어서 도를 따른다"는 뜻을 취한다면 오늘날 학자는 64괘에서 다만 마땅히 대과괘(大過卦)주 58)의 "홀로 우뚝 서 두려워하지 않고 곤란함을 당하면 목숨을 버리고 뜻을 이룬다."는 말로 당면한 간절한 일로 삼아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금화사현(金華四賢)주 59)이 똑같은 데로 돌아가서 천지의 잘못을 억눌렸다는 비유는 저처럼 못난 사람이 어찌 그런 지경을 꿈에서라도 볼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금화(金華)가 아닐 뿐만 아니라 땅이 또한 금화(金華)가 아니고 때 또한 금화(金華)가 아니니 어찌하겠습니까? 다만 머리를 쳐들어 지붕을 보며 깊이 탄식할 뿐입니다.
편지에서 《역학계몽(易學啓蒙)》의 책을 논하면서, "한결같이 소강절을 따르고 괘를 그린 순서와 시초를 끼는 방법이 하나도 자연스럽지 않음이 없어서 절대로 인위적인 안배가 없으니 비록 복희, 문왕, 주공,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 하더라도 이 말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또 〈괘사전(繋辭傳)〉에 "역(易)에는 태극(太極)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는 사생(四象)을 낳고 사생은 팔괘(八卦)를 낳는다"는 문장에 근거하여, "소강절을 따르지 않는다면 주자를 따르지 않을 것이고 주자를 따르지 않는다면 공자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니 이 말은 대단히 옳습니다. 누가 감히 다른 말을 하겠습니까? 선사가 일찍이 황동발이 소강절의 가배법(加倍法)주 60)을 따르지 않으므로 편지를 보내어서 옛사람은 이와 같은 의론이 있었을 뿐이라고 말함에 이르렀으니 일찍이 이것으로 믿을만하다 여긴 것입니다.
편지에서 영남사람 이규준이 경전에 주석을 고쳤다고 언급을 했는데 그 책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참으로 만약 주자를 공격하는데 여력을 남기지 않았다면 그 설의 득실이 어떠한지 논하지는 않고 다만 한 가지 일어날 일은 사람마다 그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비록 남보다 뛰어난 재주와 하늘에 통할 만큼 학문이 있다 하더라도 단지 그 의견을 서술하여 책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선현의 의론에 대해서 의심나는 것을 기록하더라도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감히 조금이라도 잊지 않는다면 누가 그에게 죄를 주겠습니까? 이제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지 않고 멋대로 공격하는 것으로 일삼는다면 마음이 바르지 않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중국의 강희장은 공자, 기독교, 회교, 노자, 불가를 다섯 성인이라 여긴 자이고 똑같이 공자, 묵자, 석가모니, 예수를 존경한 사람은 양계초입니다. 우리들은 다만 마땅히 잘 분별하여 사양하고 물리치는 일을 하는 것 이외에 다시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이 두 사람은 중동 학문의 폐단을 답습하여 멸망을 재촉한 자라고 한 것은 어른이 참으로 옳습니다. 비록 그럴지라도 학술에 폐단이 있는 것은 형세 상 반드시 이르는 것이니 비록 천하에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경관일지라도 말단에 이르러서는 일찍이 폐단이 없었던 적이 없습니다. 다만 국권을 잡고 문맹을 주관하는 사람은 수시로 거문고 줄을 바꾸어 알맞게 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 요컨대 중국은 주자 이후와 우리나라는 우암 이후에 일찍이 한 명의 군상과 종사가 출현하여 폐단을 구한 적이 없으니 그 점점 쌓여가는 형세가 어찌 지루하며 번잡하지 않겠습니까? 구속받아 박절한 것과 고루하여 천근한 것과 시비를 공격하는 것이 당신의 편지의 말과 같습니다. 사문의 흥망은 시운의 성쇠와 관련이 되어 있으니 인력으로 미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들은 스스로 학문의 폐단을 구할 뿐이니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편지에서 이미 근세학자가 천하국가에 뜻을 두지 않고 쓸데없는 말거리로 경쟁거리를 삼고 붕당을 만들어 우리나라의 학문이 반드시 망할 것이라 한탄했고 또 임금의 자리에 있으면서 표준을 세우지 않으면 백성 중에 음붕(淫朋)이 참특해지고 사람의 비덕(比德)주 61)이 멋대로 행해지는 것은 이치상 괴상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한탄한 것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괴상할 것이 없다고 한 것은 진실로 그러하다고 여깁니다. 세상에 만약 표준을 세운 군주가 있다면 이른바 경쟁거리로 삼고 붕당을 세운 자는 모두 교화되어 천하국가의 진정한 학문을 위해 쓰여 질 수 있습니다. 이전에 조선에서 동인과 서인, 소론과 노론이 다툰 것이 어찌 모두 쓸데없는 말이겠습니까? 간혹 정사의 득실과 국례의 시비와 윤리의 정패 같은 큰 제목을 가지고 변설하지 않음이 없었는데 표준을 세우지 못한 군주가 조기에 그 가부를 정했기 때문에 경쟁과 붕당의 문제로 옮겨갔습니다. 아! 어찌 우리나라만 그렇겠습니까? 한나라 때 응방과 절보, 당나라 때 덕유(이덕유)와 승유(우승유), 송나라 때 낙촉천삭(洛蜀川朔)주 62)이 모두 이런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후대 선비들이 자리나 권력을 위하지 않고 다툰 것이 또한 어찌 모두 쓸데없는 말이겠습니까? 처음에는 성설(性說), 경의(經義), 예론(禮論), 천과 인의 원두(源頭)주 63), 성현의 종지(宗旨), 인간과 금수의 관계를 분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으로 시작을 했지만 끝내는 서로를 공격하기에 이르렀고 쓸데없는 말을 마구하는데 귀착이 되었으니 이 또한 표준을 세운 군주가 도의와 예의를 나라 가운데에 밝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미 그렇습니다. 만약 사람을 논한다면 마땅히 그 가운데 나아가서 공격으로 마음을 삼지 않는 것을 간별해서 오직 큰 의리를 분별하는 것으로 일을 삼아 함께 해야 하니, 택당(이식)이 논한 '사계(김장생)는 진정한 학문을 했으나 그 나머지는 당여이다'라고 한 것과 같이 하는 것이 옳습니다. 마음의 공사(公私)와 일의 당부(當否)를 묻지 않고 일체 지금과 옛적의 선비를 쓸데없는 것을 쟁론하여 반드시 학문을 망하게 한다는 구덩이로 몰아넣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일찍이 우리나라 당쟁이 끝난 이후에 태어나서 초연하게 한 터럭만큼의 당심(黨心)도 없고 또한 출중하게 천하국가에 유용한 진짜 학문을 한 사람은 오직 편지에서 거론하고 있는 유반계(유형원) 선생이 유일무이한 대군자라 생각했습니다. 《반계수록》 한권은 즉 왕을 돕는 도구이니 어찌 다만 경제 범위만 대략 통달한 것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집안이 대대로 남인이었는데 율곡(이이)과 중봉(조헌)을 존경하여 믿은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기꺼이 복종토록 하는 곳입니다. 《대동경제》를 편집한 뜻은 세도를 보충할 덕으로 존경할만합니다. 그러나 《반계수록》을 정말로 뛰어넘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근세의 이른바 공화라는 이름은 비록 중국과 우리나라에 사용하기는 좋아도 그 폐단은 이루 말할 수 없으니 취할 수 없습니다. 헌법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삼대 전례 중에 이미 이런 뜻이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까? 어찌 반드시 저들의 이름을 취하겠습니까? 《대전통편》주 64)은 다만 명목(名目)과 도수(度數), 응행(應行)의 절목(節目)만 들고 본말을 두루 논하지는 않았으니 아마도 대문자를 편집하는 예로 삼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참람되게 논함이 이에 미쳤는데 당신께서 너그러이 생각해 주실지 모르겠습니다.
주석 58)대과괘(大過卦)
육십사괘 중 28번째 괘로서 태(兌)가 상(上)에 있고 손(巽)이 하(下)에 있는 괘로서 택풍대과(澤風大過)라고도 한다.
주석 59)금화사현(金華四賢)
왕백(王伯), 하기(何基), 허겸(許謙), 김이상(金履祥)를 가리킨다. 금화주학(金華朱學)의 중요한 전인(傳人)으로, 금화산(金華山) 북쪽에 은거하여 강학과 저술에 전념하며 주자학을 널리 전파하였기에 금화사선생(金華四先生)이라고 불렸다.
주석 60)가배법(加倍法)
1인 태극(太極)에서 음(陰)과 양(陽)인 양의(兩儀)가 생기고 양의에서 사상이 생기고 사상에서 팔괘가 생겨 각기 2배씩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주석 61)음붕(淫朋)이……행해지는
《서경(書經)》〈홍범(洪範)〉에 "무릇 서민들이 사악한 당을 만들지 않고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무리를 짓는 일이 없는 것은 임금이 표준이 되기 때문이다.〔凡厥庶民, 無有淫朋, 人無有比德, 惟皇作極.〕"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주석 62)낙촉천삭(洛蜀川朔)
송나라 철종(宋哲宗) 시기에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반대하는 수구파(守舊派) 조신(朝臣) 가운데에, 정이(程頤)를 우두머리로 하는 낙당(洛黨)과 소식(蘇軾)을 영수로 하는 촉당(蜀黨)과 유안세(劉安世)의 삭당(朔黨)을 가리킨다. 천당(川黨)은 사천(四川) 출신인 소식의 촉당을 말한다. 따라서 천당과 촉당은 같은 당이다.
주석 63)원두(源頭)
핵심, 근원이라는 의미로 조선시대 학자들은 무엇을 특히 강조할 때 원두(源頭)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였다. 김장생이 쓴 〈행장(行狀)〉에 "선생은 심(心)ㆍ성(性)ㆍ이(理)ㆍ기(氣)의 근원에 대해 끝까지 연구하여 투철하고 시원스러웠다.[先生於心性情理氣源頭。極深研幾。通透灑落]"라는 말이 있다. 《율곡전서(栗谷全書)》 권35 〈행장(行狀)〉
주석 64)대전통편(大典通編)
1785년에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속대전(續大典)》 및 그 후에 간행된 법령집을 통합하여 편찬한 법전이다.
答林子敬 辛巳
《易說或問》, 若能見成, 豈不是補世文字? 如以目前無補於五洋鼎沸萬邦虎食爲歉, 則有不然者, 豈不見夫子著繋辭之日, 魯國之削弱, 諸侯之爭亂, 依舊自若乎? 只恐吾所著之書, 或有未盡善者耳。 未知如何。 澤述於此書, 幼少日, 循例一二讀後來, 未嘗一日致力, 固不足與語《易》道者。 然竊取程子隨時變易以從道之意, 則今日學者, 於六十四卦象中, 只當以大過之"獨立不懼, 困之致命遂志", 爲時下切務, 又以爲如何?
金華四賢, 同歸拗過天地之喩, 若此無似, 何能夢見此境? 且非惟人非金華, 地亦非金華, 時尤非金華, 如之何哉? 只有仰屋, 長吁而已。
尊喩論《啓蒙》之書而曰: "一從康節, 而畫卦之序, 揲蓍之法, 無一非自然, 絶無人爲之安排, 雖使羲文周孔復起, 不易其言。" 又據「繋辭傳」"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之文而曰: "不從康節, 卽不從朱子, 不從朱子, 卽不從夫子。" 此言極是。 誰敢異辭? 先師之曾以黃東發不從康節加倍法, 至有下書, 蓋言古人有如此之論云爾, 豈以是爲可信也。
喩及嶺人李圭晙改註經傳之云, 未見其書。 誠若攻斥朱子不遺餘力, 則未論其說之得失何如, 只此一事, 可人人得而攻之者。 渠雖有絶人之才通天之學, 只可述其意見爲成書而已。 先賢之論, 雖不免記疑, 尊畏之心, 不敢少忘, 則夫誰有罪之? 今不出此, 以肆然攻斥爲事, 則其心不之正可知。 至於中國江希張之以孔基回老佛爲五聖人者, 卽又一并尊孔墨佛穌之梁啟超也。 爲吾輩者, 只當辨明, 辭闢之外, 更無他道耳。 夫此二人者, 襲中東學術之獘, 而促其亡者, 尊喩是矣。 雖然, 學術之有獘, 亦勢之所必至, 雖天下之良法美規, 及其末也, 末嘗無獘。 只在秉國成主文盟者, 隨時改絃而救之耳。 要之, 中國之朱子後, 我東之尤菴後, 未曾有一君相宗師出而救獘者, 其積漸之勢, 安得不支離煩鎖? 拘刻迫切, 固陋淺近, 是非攻撃, 如尊喩乎。 大抵斯文之與喪, 關時運之盛衰, 又非人力之所能及。 但在吾輩自救吾學之獘而已, 未知如何。
尊喩旣以近世學者, 不用志於天下國家, 以無用說話資爭競樹朋黨, 爲東國學問之必亡而歡之。 又謂居君位而無建極者, 則民之滛朋僭忒, 人之比德頗僻, 理無足怪。 澤述竊以爲所歎者, 非曰不然, 而所不怪者, 乃誠然矣。 世苟有建極之君, 則所謂資競樹黨者, 皆化而爲可用於天下國家之眞學問也。 向也我國東西老少之爭也, 豈皆無用說話? 或因政事之得失, 邦禮之是非, 倫理之正悖, 大題目不容不辨者, 而以無建極之君, 爲之早定其可否, 故馴致乎爭競朋黨矣。 噫! 豈獨東國然也? 如漢之膺滂節甫, 唐之德裕僧孺, 宋之洛蜀川朔, 皆坐此也。 其後士子無位權而爭者, 亦豈皆無用說話? 始因性說經義禮論天人源頭聖賢宗旨人獸關係之不可不辨者, 而終而至於互相攻撃, 則歸於無用之說話, 亦以無建極之君明道學禮義於國中故也。 此則旣然矣。 若論人, 則當就其中而揀別得不以攻撃爲心, 惟大義理是辨爲事而與之, 如澤堂所論沙溪學也。 其餘黨也之云可也。 恐不可以不問心之公私事之當否而一切將今昔之士歸之爭說無用必亡學問之科, 未知如何。 蓋鄙則嘗以爲生於我東黨爭之後, 超然無一毫黨心, 而又卓然爲有用於天下國家之眞學問者, 惟來喩所擧柳磻溪先生, 爲獨一無二之大君子也。 其《隨錄》一書, 卽王佐之具, 豈但謂之略通經濟範圍? 家世南人, 而尊信栗谷重峰者, 令人悅服處也。 《大東經濟》編輯之意, 可仰爲補世道之德。 然未敢知果能過於《隨錄》之書也。 且近世所謂共和者名, 則雖好用於中東, 則獘不勝言, 不可取也。 憲法則可矣。 然三代典禮中, 不已具此意乎? 何必取於彼名也? 至於《大典通編》, 只擧名目度數應行節目, 而不備論本末, 恐不足爲大文字編輯之例。 僭易及此, 未知尊意更加善恕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