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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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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자경에게 답함(答林子敬 庚辰)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6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6.TXT.0030
임자경에게 답함
답장해준 편지를 받들어 읽어서 삼가 살펴봄으로써 개탄을 했습니다. 아! 수백 년 이래로 국조의 당론과 유문(儒門)의 시비가 정해지지 않음에 널리 인용하고 증거를 대어 반복적으로 논설을 함으로써 마침내 참으로 시비가 저절로 분별이 되었다 말하고 우리 문하 영남과 호남의 일에 돌이켜 규명하여 단안이 있게 되었으니 헤아림이 공평하고 지식이 넓어서 보통 사람은 미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호라, 저는 다만 세간에 나약한 사람이니 어려서는 마을의 서당에 다니는 동료들과 한마디 다툼도 없었고 자라서는 사우들 사이에 놀아서 비록 스스로 믿는 견해와 근거가 있는 의논일지라도 저 사람이 따르지 않을 경우 그만둔 일은 사람들이 모두 아는 것입니다. 국조의 당론과 유문의 시비에 이르러서 마음속으로 심히 불복하는 것은 또한 한결같이 당신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옛날 일에 있어서 동인, 서인, 노론, 소론, 호론, 낙론 같은 것은 또한 논하지 않았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것으로는 노사(기정진)의 〈외필(猥筆)〉주 56)에 대해 영남은 통달했다는 것과 연옹(송병선)이 흠모하며 감탄한 것과, 유준근이 파리장서 도장사건으로 호남을 성토한 것에 대하여 선사가 그릇되지 않게 여겼다는 것에 대하여 감히 반드시 그렇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오직 선사께서 가평의 김평묵이 전옹(임헌회)을 위해 쓴 제문주 57)을 물리친 것에 대해서는 스승께서 스승을 위해 속인 일을 변론하여 이를 제자의 당연한 직분으로 삼은 것에 깊이 감복하였고, 당일에 전옹(임헌회) 문하의 모든 사람들이 선사를 과격하다고 말한 것에 대하여 깊이 비웃었습니다. 이제 오진영이 다만 인가받으라는 당부를 써서 선사를 속인 것은 김평묵이 몰래 속여 세상과 화해하고 전옹(임헌회)을 속인 것과 비교해보면 큰일이면서 더 심한 것입니다. 또한 스승의 원고를 고쳐 혼란하게 만들어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하게 했으니 이것을 변론하지 않는다면 스승이 어떻게 스승이 되며 제자가 어떻게 제자가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감히 선사가 전옹(임헌회)을 존중한 뜻을 붙여 공손히 제자의 직분을 닦은 것은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이 크게 중요한 것과 관련되어 있어서 변론하여 명백히 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다소의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투는 일이 있다고 의심했고 뭇사람과 함께 변론함에 공적으로 하지 않을 수 없어 다소의 함께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이라 의심한 것입니다. 당을 만들어 싸웠다고 보는 자는 당이 싸웠다고 보고 스승을 존경하기 위해서라고 본 자는 스승을 존경한 일로 보았으니 나는 참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돌아보지 않고 다만 마음에 부끄럼이 없기를 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신 편지에서 거론한 것들은 다만 자신이 이기기를 구하고 자신의 마음이 기쁘기만 힘썼습니다. 거의 전쟁에 임하여 잘못 죽이고 옥사를 안찰하여 잘못 들어가게 한다는 경계에 대해서는 일찍이 조심하지 않았습니다. 아, 세상 의론의 공사와 사람 견해의 편정이 병행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택당(이식)이 사계(김장생)를 논한 것은 공평하지 아니한 것은 아닌데, 오히려 한쪽이 주도함으로써 불복하는 것이 있고, 중국에서 주자와 육구연의 시비는 오늘날까지도 판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한다면 구양수가 말한바 후세의 공평함도 또한 믿을 수 없습니다. 요컨대 후세에도 공평하지 못하여 다만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만 할 따름이라면 무엇을 마땅히 해야 할 것이라고 이를 수 있습니까? 일이 사부와 관련이 있는 까닭으로 제가 비록 보잘 것은 없을 지라도 이점에 대해서 본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이 자신의 분수와 관련이 있다면 비록 김세기의 속이는 문장이 망극할지라도 또한 보고도 없는 것처럼 하였습니다. 이치는 마땅히 이와 같으니 다만 성품이 나약하다는 것으로 그칠 수 없는 것입니다. 저 오진영은 스스로 자기가 태어나서 다른 사람과 필전을 열세 차례 했는데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고 과장하여 자랑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품수 받은 것입니까? 본성을 어긴 괴상한 뜻일 뿐입니다.
존자의 편지에 "어린 아이로 보고 한번 웃을 일이니, 오진영의 무함을 배척함에 있어 배척하는 것이 또한 심하였다. 또 원고를 고친 것은 죄의 대체가 같다." 하신 데에 이르러 제가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다만 저 사람은 죄가 이미 스승을 무함한 데에 있으니, 마땅히 그 죄명을 바로 잡아서 엄하게 성토해야지, 어린 아이로 보아 한번 웃는 것으로 부치고 말아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성재가 홍재구에게 답한 편지와 면암이 유중교에게 답한 편지에서 심하게 밝히지 않고 심하게 공척하지 않았으니, 진실로 좋습니다. 그러나 만약 홍씨와 유씨가 화서에 대해 그 마음을 속이고 그 문장을 고쳤는데도 오히려 이와 같이 했다면 아마도 법으로 삼을 수는 없을 듯합니다. 또한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주석 56)외필(猥筆)
기정진(奇正鎭)의 대표적인 저술로서 이이의 성리설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기정진의 〈외필(猥筆)〉은 기호학계에서 알려지면서 적지 않은 논란이 일어났다. 특히 전우는 〈외필변(猥筆辨)〉을 저술하여 강하게 비판하고 이에 대해 노사학파가 재반박하는 등〈외필(猥筆)〉은 노사학파와 간재학파의 성리설 논쟁의 시발점이 된 저술이라 할 수 있다.
주석 57)가평의……제문
임헌회가 죽자 홍직필의 문하에서 한 때 동문이었던 김평묵이 제문을 지어 보냈다, 전우는 김평묵이 지은 제문은 겉으로는 임헌회를 칭송하면서도 성리설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여 다시 돌려보내는 등 화서학파와의 감정적인 대립이 극에 달한 사건이었다. 김평묵이 임헌회를 위해 쓴 제문은 《중암집(重菴集)》 권45 〈제임전재헌회문(祭任全齋憲晦文)〉으로 남아있다.
答林子敬 庚辰
拜讀崇覆有以謹審慨歡乎! 數百年來, 國朝黨論儒門是非之靡定, 廣援博證, 反覆論說, 而終之謂眞是非自在, 歸究於吾門湖嶺事, 而有所斷案, 足以仰識平量弘識匪夷所及矣。 鳴呼! 澤述直世間一吳懦者, 幼與村塾儕輩無一言爭, 長遊士友間, 雖自信之見, 有據之論, 彼不從, 則亦已焉者, 人所共知也。 至於國朝黨論儒門是非, 心甚不服, 亦一如尊見。 是故事在往昔如東西老少湖洛且勿論, 耳目所逮, 如蘆猥嶺通, 淵翁之所欽歡, 柳印湖討, 先師之所不非者, 未敢信其必然。 惟於先師退斥嘉金祭全翁文, 深服其爲師辨誣, 以爲弟職之當然, 而深笑當日全門諸人之謂先師爲過激者也。 今震之直書認敎, 而誣先師, 視金之隱譏諧世, 而誣全翁, 有大無小, 有加無減, 而改亂師稿, 非復本面, 此而不辨, 師何以爲師, 弟何以爲弟? 故敢竊附先師尊全翁之義, 以恭修弟職, 非有他也, 事係大關, 辨之不得不明, 而有多少文字。 故疑於爭事, 在衆共辨之, 不得不公, 有多少同人。 故疑於黨也。 作黨爭看者, 黨爭看, 作尊師看者, 尊師看, 吾固不恤人言, 而只求不愧於心。 然於尊書所擧, 只求己勝, 務快己意。 幾於臨陣錯殺按獄失入之戒, 未嘗不兢兢焉。 鳴乎! 世論之公私, 人見之偏正, 并行也久矣。 澤堂之論沙溪, 非不公也, 而尚有一邊之不服, 中國朱陸是非, 至今未底于定。 然則歐陽公所云後世之公, 亦不可信矣。 要之, 并與後世而無公, 只得爲我所當爲而已, 何謂所當爲? 事關父師, 故爾鄙雖無似, 有見于此。 故事關己分, 則雖於世基誣文之罔極者, 亦視之如無。 蓋理當如此, 非獨以性之巽懦而已也。 彼震之自言吾生來, 與人筆戰, 凡十三次, 未嘗一敗, 而誇張之者。 是稟得甚麽? 乖性可怪也已。 至於尊喩"以童觀一笑, 斥震誣, 斥之亦深矣。 又以改稿, 罪之大軆之同", 吾復何言? 但彼旣罪在誣師, 則當正名其罪, 而嚴討之, 不可付之童觀一笑而已。 未知如何。 省齊勉菴答洪柳書, 不甚發明, 不甚攻斥, 誠好矣。 若使洪柳於華西乎, 誣其心改其文, 而猶如此, 則恐不可爲法, 又未知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