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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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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신헌에게 보냄(與李愼軒 丙子)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6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6.TXT.0018
이신헌에게 보냄
제가 백면서생으로 어른과 동문으로 사십년 동안 오래 했고 게다가 오진영의 속임수를 함께 성토하며 대의를 지킨 것이 또 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성토의 의론을 먼저 말함에 변론의 문장이 많고 엄함은 어른이 실로 다 써서 저는 미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매번 스스로 오늘 세상에서 아는 사람으로 친히 하여 믿으며 경복할 수 있는 사람은 어른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어른은 근래에 점점 옛 덕을 바꾸어 마침내 전철과는 다르게 처음으로 오진영당을 방문하여 오진영당과 함께 제사를 지내고 오진영당을 다스린 이전의 의리는 버리고 조금 지나서는 '한 사람만 제거하면 된다.'는 설을 제창하여 중도로 자처하는 것처럼 하는 것입니까? 끝내 숨어서 나타나지 않고 있다가 오진영이 오는 날에 한 사람을 제거해야 한다는 의론을 반대하고 계화도 제사의 주축이 되도록 하고 반대로 제가 제사를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을 죄로 삼았습니다. 그렇다면 친히 하여 믿기 어렵고 경복하기 어려운 것은 또한 어른 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이전 날 나를 사랑하여 나를 부축해주고 내가 성취하도록 해준 사람은 어른 같은 사람이 없었고 이제 저를 버리고 저를 쓰러뜨리고 저를 멸망시키는 사람 또한 어른 같은 사람이 없으니 《수호전》에 나오는 "은혜와 원망이 서로 이어지고 변방의 화복이 무상하다."는 말을 끝내 어떻게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어른의 이 일로 알 수 있습니다. 동중서가 "인자(仁者)는 그 의를 바로 하고 그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며, 그 도를 밝히고 그 공로를 따지지 않는다."주 39)라고 말했으니 이것은 본원을 끝까지 궁구한 의론입니다. 인자한 사람은 곧 최고의 성인입니다. 어른은 마음속으로 반드시 '나는 진실로 성인이 아니다. 만약 성취한 큰 공이 있다면 옛날 사람이라도 조금 도의를 어김으로써 하지 않은 자가 없으니 내가 무엇 때문에 고집을 피운단 말인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비록 자리를 얻어 다스려 태평한 공업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사림을 이끌어 유문의 공을 세울 수 없겠는가? 나는 지금 늙었다. 이런 일을 지체할 수 없으니 빨리 조금 오진영을 성토하는 의리를 어겨서 이를 통해 그 당과 화친하여 함께 스승의 사당을 창건할 따름이다.'라고 말할 것이니 이것이 지금 어른의 심사(心思)가 아닙니까? 비록 스스로 의리를 조금 어긴다고 말하더라도 끝내는 큰 죄에 빠짐을 알지 못합니다. 제가 이 때문에 어른이 사당을 세우는 데 힘을 쓰는 것은 스승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고 단지 일의 공적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이와 같음을 알았다면 저는 마땅히 다시 충고를 일삼아서 한갓 실언을 했다는 비웃음을 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봄에 일을 들은 이후부터는 5개월이 지나도록 절대로 편지 한통이라도 보내 진언하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연심(전희순) 어른이 왕림했을 때 이 일을 들어 논하고 제가 하는 말을 듣고서 "오호라, 이것이 무슨 말인가. 신헌이 사당을 세우는 것은 결단코 스승을 높이기 위해서 한 것이다."말했으니 저 또한 연심(전희순) 어른이 어른과 함께 기거하며 음식을 먹어서 날마다 서로 접함에 어른의 근래의 심사를 아는 것이 어쩌면 저보다 더 자세하다 여겼으니 어찌 감히 그 말을 믿고 어른의 마음을 의심하지 않았겠습니까? 비록 과실과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진실로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나왔다면 스승을 존중하는 경중과 대소 사이에서 나란히 비교하여 어김으로부터 바르게 고치는 것이 가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끝내 다시 한마디 하여 가부를 기다림으로써 깊이 살펴주시기 바랐습니다. 그윽이 생각할 때 성현의 학문은 지인용(智仁勇) 세 가지가 이것일 뿐입니다. 이른바 성현을 배운다는 것은 이 세 가지를 배우는 것이니 배우는 것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의리를 보면 즉시 함으로써 용을 하고 선(善)을 선택하여 꼭 잡음으로써 인(仁)을 하며 과실이 있으면 반드시 고침으로써 지(知)를 하니 이 세 가지를 버린다면 배운다고 이를 수 없고 또한 선비라 일컬을 수 없습니다. 만약 어른을 가지고 말한다면 이전에 속임수를 만들어 스승을 해치는 자를 보면 송골매가 참새를 좇아가듯이 꾸짖었으니 이것은 의리를 보면 즉시 하는 용기였고 이 의리를 지켜서 끝까지 변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선을 택하여 끝까지 잡는 인입니다. 이제 옛것을 버리고 음성의 오진영과 내통하여 화친했으니 이것은 과실의 큰 것으로 마땅히 고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또한 그윽이 생각할 때 학자는 진실로 과실과 잘못이 많으니 과실 고치는 한 가지 일은 의리를 하여 선을 잡는 것에 비하여 더욱 급한 일이고 긴요한 도입니다. 그러므로 정자(정이)가 "학문의 도는 그 잘못을 알았다면 마땅히 빨리 고쳐 선을 따르는 것뿐이다."라고 말했으니 정자(정이)의 말이 비록 과실을 고치기 위해 말한 것이라 하더라도 사실은 지인용 세 가지가 모두 그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 불선을 아는 것이 지이고 선을 따르는 것이 인이고 빨리 고치는 것이 용입니다. 이를 통해 말한다면 과실을 고치는 한 가지 일은 또 지인용의 총회처라고 말하더라도 불가한 것은 아닙니다. 어른이 이 세상에 태어났고 이 학문을 한 것이 60년이나 되어 늙어 장차 죽으려 해도 그치지 않는 것이 어찌 지인용을 이루는 군자가 아니겠습니까? 이미 이와 같은데도 오히려 여기에 대하여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면 나는 도대체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사당을 세우는 것이 스승을 존중하는 큰 것이라면 형세 상 마땅히 오진영에게 통보한 연후에 완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전의 의리는 돌아볼 겨를도 없었으니 어른이 고윤거(고재붕)에게 답장한 편지에서 "만약 선사로 하여금 오욕의 이름을 받게 한다면 제사가 풍성하고 비석이 크며 당사가 헌창하더라도 어찌 귀할 것인가."라는 말은 이미 둘 사이의 대소경중을 분명하게 분별한 것이니 또한 오늘에 나란히 비교함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이와 같을 것인데 다시 그 사이에 말할 것이 있다 한다면 비록 피해 달아나는 말이 아니더라도 어떤 사람이 믿겠습니까? 어른이 앞뒤로 다르게 처신하는 것은 마치 한 사람의 행동에서 나온 것 같지 않으니 이와 같은 비상한 큰 변란에 어찌 한마디 말로 반드시 고칠 것을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제가 누누이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연심 어른이 스승을 존경하는 데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믿을만하다 여겨서 뿐만 아니라 또한 어른이 일찍이 제 충고를 받음으로써 오진영에게 보내는 편지를 그만둔 것이 오히려 과실을 기꺼이 듣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거늘 이제는 섬에 들어가 오진영을 피하지 않고 함께 제사를 지내니 오히려 꺼림직 한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큰 병이 든 사람이라도 오히려 한 줄기 생맥이 있어서 잘 기르면 회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귀에 거슬리는 말을 진언하여 잘 보양할 수 있는 약재로 삼아야 하는데, 입에 쓰게 만들지 말라 한다면 시험 삼아 복용하더라도 효과를 거둘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자네는 용렬한 짓을 하지 말라. 휘어진 나무를 바로잡은 것은 습기를 만나면 바로 굽어지니 신헌은 원래 오진영당의 사람인데 도중에 일절은 비록 좋을지라도 오늘의 변심은 바로 그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른바 세 번 의지를 바꾼 사람(三截人)이 이것일 뿐이다. 그대는 용렬한 짓을 하지 말라."하여 제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나무가 줄곧 먹줄을 받아 곧게 되면 중간의 일절은 비록 구불어졌다 하더라도 집을 만드는 용도가 될 수 있으니 신헌의 처음 일은 오진영의 죄가 나타나지 않은 날에 있었고 또 그를 오진영의 당이라 이른다면 사실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땅히 쫓아서 논의할 것이 없습니다. 저는 신헌의 일은 마땅히 속임수를 성토한 것으로 시작을 삼아야 하니 오늘의 변신은 중간의 일이라 봅니다. 만약 다시 마음을 고쳐 바른 데로 돌아온다면 이것은 삼절이 바름을 얻고 줄곧 먹줄로 인하여 바르게 된 자이니 무슨 해로움이 있겠습니까? 주자는 대현으로 경서를 해석하는데 으뜸이었습니다. 중화의 설에 대해서는 여러 번 고친 이후에 바름을 얻었고 《대학》의 그침을 아는 것은 일정함이 있다는 것과 《중용》의 "성이라는 것은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는 말은 이미 고쳐서 구설을 따랐습니다. 대현이 경을 해석하는 것도 오히려 이와 같다면 학자의 처사가 어찌 홀로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다만 도가 있는 곳을 얻었다면 삼절(三截)은 말할 것이 없으니 비록 십절(十截)이라도 자주 반복되는 것으로 꺼리기는 했지만 끝내 바르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선배들이 비웃은 삼절인(三截人)은 그가 끝까지 바름을 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신헌을 위한 계획은 저쪽의 바르지 않은 삼절인이 되지 말고 이쪽의 바름을 얻은 삼절인이 된다면 허다한 허물은 조금도 없고 저절로 무한하게 좋은 일만 있을 것입니다. 어른은 제가 한 말에 대하여 이치를 깨달은 명언이라 여겨 긴요하게 살펴 취할 것인지 아니면 조소하면서 나를 업신여긴 사람이라 주벌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현재의 세력이 비록 두려울지라도 천년의 공론은 더욱 두려우니 틈을 엿보아 일어나는 사적인 생각은 비록 제거하기 어려울지라도 지극히 밝은 본심은 더욱 속이기 어렵습니다. 옛날에 조조가 천자를 끼고서 제후를 호령하다가 끝내 한나라를 찬탈함에 이르렀습니다. 천하가 그 위세를 두려워하여 쏠리듯이 따르지 않음이 없었으니 이른바 일세의 명사라도 모두 똑같이 달려가서 그를 위해 지모와 생각을 내어 천하를 앉아서 안정을 시켰으니 당시에 적(賊)이라고 성토하고 힘을 다해 막은 자는 오직 소열 유비가 애썼습니다. 파촉(巴蜀)은 형세로 봤을 때 그 존재가 비록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역대의 사관들은 모두 조조를 존중하여 위무제(魏武帝)라 하고 그 통치를 무시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송나라 군자 온국공(사마광)에 이르러서도 그러했는데 최후에 주자의 《자치강목》이 출연한 이후에 촉나라가 주인이 되고 조조가 도적이 되어 의리가 밝아지고 포상과 주벌이 행해지니, 명사들로서 조조에게 아부한 자들은 모두 적당이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 문하의 일은 이것을 가지고 비교하여 비유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어른이 정말로 이 점을 살필 수 있어서 맑은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돌이켜 반성한다면 본심이 드러나고 의리가 밝게 나타나서 혹 그 번복함을 자책하고 혹 그 망령됨을 스스로 후회하고 혹 그 비겁함을 스스로 비웃고서 맹렬하게 깨달아서 번연히 고치는데도 시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후일의 공론을 기다릴 것 없이 곧 존장이 오진영을 성토한 문장에 '오진영이 있으면 선사가 없다는 등의 말로 명확하게 설명하는 사이에 털끝도 용납하지 않는 엄한 말'로써 도리어 존장의 죄를 다스린다면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엄한 말로 뭇사람에게 소리쳐 말하기를, "무릇 이전의 사소한 일은 나는 이미 모두 버렸노라. 장차 그것을 겁화(劫火)주 40) 속에 태우고 오진영 문하에 가서 사과하겠노라."한다면 어른은 이 점에 대하여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겠습니다. 한번 듣고 싶습니다. 아! 전주와 진주에서 검찰에 고소한 재앙이 있은 뒤로부터 태도를 바꾸고 반론을 하는 자들이 굉장히 많은데 오직 어른에게 연연하며 그만두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어른이 몸소 일찍이 성토를 제창한 사람이 되어서 뭇사람 마음의 향배와 스승을 속인 것을 분별하는 여부가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하는 것은 어른뿐만 아니라 동지 전체의 수치이며 동지 전체의 수치일 뿐만 아니라 스승을 속인 것이 이 때문에 더욱 깊어집니다. 어른이여, 어찌 조금도 생각지 않으십니까? 일신의 명예와 절개는 비록 돌아볼 것이 못된다하더라도 전체의 수치는 어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전체의 수치는 비록 돌아볼 것이 못된다하더라도 스승을 속인 것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어찌 생각지 않습니까? 어른이여, 어찌 조금도 생각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저에게 "그대는 용렬한 짓을 하지 말라. 듣자하니 신헌이 벽에다 걸어놓고 맹세하기를 '사문의 일로 편지를 보내오면 일체 답장하지 않겠다.'라고 말하고, 그가 요즘 오진영이 주관하는 뒤에서 사당의 일에 부지런히 힘쓴다면, 사당에 돈 모으는 일로 온 편지에 대하여는 분명 답장을 하지 않는 일이 없을 것인데 오히려 즉시 맹세를 했다 하니 이것은 반드시 오진영과 화답하는 편지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조짐이 이미 드러났으니 그대는 용렬한 짓을 하지 말라."하여, 내가 또 "아니다. 그렇지 않다. 신헌이 사당을 세움에 만약 일의 공적을 위해 시작한 것이 나의 견해와 같다면 즉시 맹세한 뜻은 진실로 그대 말과 같지만 연심이 이른바 결단코 스승을 존중하기 위하여 시작했다는 말을 나는 감히 믿지 않을 수 없으니 만약 어찌 반드시 오진영과 화친할 조짐이 이미 드러났다 말할 수 있겠는가. 아, 그런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편지를 쓰면서도 반복적으로 생각하여 감히 문득 반드시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른의 마음을 알지 못함으로써 반대로 원수 됨이 깊어진 것입니다. 그만둬 버리면 사후에 큰 윤리에 대하여 다소 분수를 다하지 못한 점이 있을 것 같아 홀로 앉아 눈을 반쯤 감고 붓을 세 번 잡았다 세 번 던지고 끝내 연심의 말을 믿고 이 편지를 썼으니 만약에 편지에 답장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이 혹자의 설과 같다면 저는 진실로 답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답장을 해도 또한 보고 싶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연심이 말한 것과 같다면 답장하여 이 미혹함을 풀어주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김종희가 "호남 사람은 이미 과실을 고쳤다."말하니 이것은 연심이 전한 말입니다. 어른이 이미 이 말을 들었는데도 이상하다 여기지 않으니 오호라! 그 끝내 오진영을 위해 과실을 고치는 것을 편하게 여기고 선사를 위해서는 과실을 고치지 않는 것입니까? 어른은 깊이 살펴주십시오.
주석 39)동중서가……않는다
《소학(小學)》 권5 〈가언(嘉言)〉에 "동중서가 말하였다. 인자(仁者)는 그 의를 바로 하고 그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며, 그 도를 밝히고 그 공로를 따지지 않는다.[董仲舒曰:仁人者, 正其義, 不謀其利, 明其道, 不計其功]"라고 하였다.
주석 40)겁화(劫火)
불가(佛家)의 용어로, 재앙을 뜻한다. 하나의 세계가 끝날 즈음에 겁화가 일어나 온 세상을 다 불태운다고 하는데, 한 무제(漢武帝) 때 곤명지(昆明池) 밑바닥에서 검은 재가 나오자, 인도 승려 축법란(竺法蘭)이 "바로 그것이 겁화를 당한 재[劫灰]"라고 대답하였다. 《고승전(高僧傳)》 권1 〈한낙양백마사축법난(漢洛陽白馬寺竺法蘭)〉
與李愼軒 丙子
澤述白生之於尊爲同門, 四十年之久, 重以同討震誣, 同守大義者, 又爲十年之久矣。 而討議之先發, 辨文之多且嚴, 丈實有之, 而非生之可及者。 故每自以爲并世所知, 可親信敬服者, 無有加於愼丈矣。 夫何丈於近年以來, 漸改舊德, 竟反前轍, 始而訪問震黨中, 而同祀震黨, 旣棄治黨之前義, 旋唱單除一人之說, 似若自處以中道矣? 終又隱避不見, 於震來之日, 并反除一人之論, 而致其爲華祀之主祝, 反以生之不同祠事爲罪。 然則難於親信, 難於敬服, 又無如丈矣。 蓋前日之愛我扶我, 成就我者, 莫如丈, 今日之棄我顛我, 敗滅我者, 亦莫如丈, 《水滸》之"恩怨相尋, 塞上之禍福無常", 竟惡乎定? 丈之此事, 其可知也。 董子曰: "仁人者, 正其義, 不謀其利, 明其道, 不計其功。" 此極本竆源之論。 此仁人者, 卽無上之聖人也。 丈之心必曰, '我固非聖人矣。 苟有大功可就, 則古之人, 亦有不以少達道義而不爲者, 我何以固執爲哉? 我生斯世, 雖不得位以成治平之業, 顧不可以倡率士林建儒門之功乎? 我今老矣。 事不容遟, 亟宜少達討震之義, 因以和同其黨, 共剏師祠爾。' 此非丈今日心事乎? 蓋其雖自謂少違於義, 而不知其終陷於大罪也。 吾故曰丈之宣力立祠, 非爲尊師起見, 只爲事功起見也。 旣知其如此, 則不宜復事忠告, 從取失言之譏。 故自聞今春事後, 迄茲五朔, 絶無一書之陳矣。 向見鋉心丈委訪, 提論此事, 及聞生言曰: "惡! 是何言也? 愼軒之立祠, 斷然爲尊師起見。" 生又念鍊心之於丈起居飲食, 日相接也, 則知丈近日心事, 容有加悉於生者, 何敢不信其言而疑丈之心乎? 雖有過錯, 誠出於尊師之心, 則自應比并較量於尊師輕重大小之間, 知所從違而改正, 亦有可望。 是故卒復一言, 以俟可否, 幸深察焉。 竊惟聖賢之學, 知仁勇三者是已。 所謂學聖賢者, 學此三者, 學之當如何? 見義卽爲以爲勇, 擇善固執以爲仁, 有過必改以爲知, 捨此三者, 不可謂之學, 亦不可稱之以士矣。 若以丈言之, 前日之見造誣害師者, 斥之若鷹鸇之逐烏雀者, 是爲見義卽爲之勇, 守此義而終身不變, 則是爲擇善固執之仁也。 今日之棄其舊, 而通和陰震, 則是過之大, 而當改而爲知者也。 生又竊念, 學者固多過錯, 改過一事, 比爲義執善, 尤爲急務要道。 故程子曰: "學問之道, 知其不善, 則當速改而從善而已。" 程子之言, 雖爲改過而發, 實則知仁勇三者, 皆在其中。 知其不善知也, 從善仁也, 速改勇也。 由此言之, 改過一事, 又謂之知仁勇總會處, 亦無不可矣。 丈生此世, 又此輟學六十年, 老將死而不輟者, 豈非欲成得知仁勇之君子人乎? 旣然矣, 而猶於此不以爲然, 則吾不可得以知之。 如曰立祠尊師之大者, 勢當通震, 然後可成。 故前日之義, 有不暇顧, 則丈答高允擧書"若使先師受汙辱之名, 則豊祭大碑, 堂舍軒敞, 奚貴之"說, 早已明辨二者之大小輕重, 而亦不待比并較量於今日也如此, 而更有可說於其間者云, 則雖曰非遁辭, 人誰信諸? 蓋丈之前後二轍, 若不出一人之爲者, 似此非常大變, 何可以一言期其必改? 而吾所以縷縷若此者, 非惟以鍊心尊師起見之說爲可信, 亦以丈之曾得鄙告, 罷止書震之, 猶爲喜聞過, 今不入島避震, 同祀之, 猶有所忌憚者。 譬如大病之人, 猶有一線生脈, 善養可以回春。 故茲進逆耳之言, 以當善養之劑, 勿以爲苦口, 試服而收效否? 有謂生者曰: "子母庸爲也。 夫木矯楺而直者, 遇濕而復枉, 愼軒本是震黨, 中間一節雖好, 今日之變, 正所以返其本。 所謂三截人者是已。 子毋庸爲也。" 生曰: "否, 不然。" 夫木始終繩直, 則中間一節雖枉, 亦可爲作室之用, 軒初事在震罪未著日, 且謂之其黨則非實也。 此不當追論。 吾則以爲愼軒之事, 當以討誣爲始, 今日之變, 爲中間事。 若復改而歸正, 則是爲三截得正, 而始終繩直者, 又何害焉? 朱子答大賢而聖於釋經者也。 於中和之說, 屢改而後得正, 《大學》知止有定, 《中庸》誠者自成, 旣改而還從舊說。 大賢之釋經, 猶如此, 則學者之處事, 何獨不然? 故吾則以爲但得道在, 莫說三截, 雖十截, 不可以頻復爲嫌, 而不思終正也, 審矣。 前輩所譏三截人, 以其終之不得其正故也。 今爲愼軒計, 勿爲彼邊不正之三截人, 而爲此中得正之三截人, 則都無許多累戾, 而自有無限好事矣。 未知丈於此, 爲理到名言, 而喫緊省取乎, 抑以爲弄出譏嘲, 而誅侮慢乎。 夫當世之勢力, 雖可畏, 千載之公論, 更可懼, 闖發之私念, 雖難除, 至明之本心, 更難欺。 昔曹操之, 挾天子以令諸侯, 而終至篡漢也。 天下畏其威勢, 莫不靡然從之, 所謂一世之名士, 亦皆齊進彙征, 爲之出謀發慮, 以致坐定天下, 當時討之以賊, 盡力拒之者, 惟昭烈之區區。 巴蜀以勢觀之, 雖謂之無有焉可也。 故歷代史官, 皆尊操爲魏武帝, 而無有奪其統者。 以至宋朝君子溫國公, 而亦然, 最後乃得朱子《網目》之書出, 然後蜀爲主, 而操爲賊, 義理以明, 褒誅以行, 凡其名士之附操者, 皆爲賊黨。 生以爲今日吾門之事, 擧此比準, 可以相喩也。 丈誠能見到于此, 而清夜無寐之時, 反以自省, 則本心呈露, 義理昭著, 或自責其反覆, 或自悔其私妄, 或自笑其㤼懦猛然悟, 而幡然改之不暇也。 如曰不然, 亦不待後日公論, 卽以丈討震文, 有震泳無先師等八字打開間, 不容髪之嚴辭, 還治丈罪, 無辭可供矣。 凡此等嚴辭, 其將呼於衆曰: "凡前日之薄物細故, 吾旣捐之矣乎。 其將焚之於劫火之中, 負荊於震門乎。" 未知丈於此何以處之。 願一聞之也。 噫! 一自全晉訴禍之後, 改度反論者, 不啻多矣, 而獨於丈眷眷不置者, 何也? 以丈之身曾作倡討之人, 而衆心向背師誣辨否之所係也。 今之云者, 非獨爲丈, 乃爲同志全體羞耻也, 非獨爲同志之羞恥, 乃爲師誣之, 因此益深也。 丈乎丈乎, 盍少思之? 一身之名節, 雖不足顧, 全體之羞恥, 獨不念乎? 全體之羞恥, 雖不足顧, 師誣之益深, 寧獨不念? 丈乎丈乎, 盍少思之? 有謂生者曰: "子毋庸爲也。 聞愼揭誓于壁曰, '凡以師門事來書, 一切不答', 愼方勤務祠事於震主之後, 則其以祠金事來者, 必無不答, 而猶且立誓, 是必但指貴其和震書者。 蓋其水已堅矣, 子毋庸爲也。" 生又曰: "否, 不然。 愼軒立祠, 若爲事功起見, 如吾之見, 則立誓之意, 誠如子言, 鍊心所謂斷然爲尊師起見者, 吾不敢不信, 則豈可必謂氷已堅於和震乎? 噫! 其然乎? 否乎?" 生於此書之作, 蓋反覆思量, 未敢遽定欲爲之乎, 則丈之心有不可知, 恐見仇之反深矣。 欲已之乎, 則於師友之大倫, 恐有多少不盡分, 獨坐半目, 三操筆而三投之, 終於只信鍊心之言而爲之, 如使誓不答書, 如或者之說, 則吾固知其無答, 而答亦不願見也。 如其不然, 而誠有如鍊心所道者, 則幸賜回敎俾鮮此惑千萬。 金鐘熙言, "湖南人, 已改過", 此鍊心所傳也。 丈已聞此, 而不以爲異, 鳴呼! 其終安於爲震改過, 而不爲先師改過也耶? 惟丈深諒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