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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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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심 전장에게 보냄(與鋉心田丈 戊寅)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5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5.TXT.0071
연심 전장에게 보냄
우리 어른께서 매번 말씀하시길, 제가 다른 사람을 미워함이 너무 심하니, 규칙을 두어야 하고, 너무 심하게 하는 것은 성인도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어른이 이것으로 저를 격려하는 것은 덕으로 사랑하는 뜻이 매우 두터움으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감격스럽지 않겠습니까? 다만 주자(朱子)가 양씨(楊氏)의 '본분 이외에 한 터럭의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주 201)는 말을 인용하여 '성인도 너무 심하지 않았다.'는 뜻을 해석했으니, 본분 이외에 더하는 것은 너무 심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더라도, 본분에 가함이 없는 것을 비난하면 비록 엄할지라도 그것을 너무 심하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가함과 불가함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또한 마땅히 성현의 말과 행동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공자(孔子)께서 유비(孺悲)가 뵙기를 청함에 질병이 있다고 사양하고, 다시 거문고를 가지고 노래 부름에 이르렀으니주 202)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진항(陳恒)이 임금을 시해하고 다른 나라에 있었는데, 목욕재계를 하고 토벌하자 청한 것주 203)은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향원이라고주 204) 일컬어지는 사람은 마땅히 선한 사람이라 일컬을 수 있는데, 그 문을 지나면서 들어가지도 않고 느끼는 것도 없었고, 또 덕을 해치는 사람이라 말하니,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양웅(揚雄)과 묵자(墨子)도 또한 인의를 배운 사람인데, 맹자가 부모도 무시하고 군주도 무시하는 금수라고 비난하기주 205)까지 하였으니, 너무 심한 듯합니다. 야인으로 호사자(好事者)의 말은 마땅히 물을 만한 것도 못되는데 힘을 써 변론하여 깨트려 크게 말하여서, "공자 같은 사람이 옹저(癰疽)와 내시 척환(瘠環)을 주인 삼았으면주 206), 어떻게 공자(孔子)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까지 하였으니,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맹자가 중니(仲尼)를 일컬어서 너무 심하지 않다고 여겼으니, 스스로 그가 행한 것을 믿었음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유원성(劉元城: 유안세(劉安世))이 소인을 너무 강하게 공격하여 만 번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니, 너무 심하다 할 수 있습니다. 원우(元祐)주 207) 때 제현들이 채(蔡)씨를 다스리기 어려운 것을 근심해서 시구(詩句)로써 죄를 주기에 이르렀으니, 너무 심하다 할 수 있습니다. 동한(東漢)의 당인들이 '무모하게 물을 건너다가 이마까지 빠졌으니'주 208), 너무 심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자가 원우 때의 인물을 논함에, '유원성은 중도를 얻었다 하고 시구(詩句)로 채 씨를 죄를 준 것은 그릇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나로 하여금 동한 시대에 살게 했다면, 반드시 범방(范滂)과 양구(陽球)주 209)와 같은 재앙에 빠졌을 것이라 하고, 당중우(唐仲友)를 탄핵함에 이르면, 항소를 여섯 번 올림에 조목을 40개 나열하고도 너무 심하다 여기지 아니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이것은 모두 일이 대의와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이 큰 죄를 범해서, 이와 같이 아니하면 천하의 의리를 밝힐 수 없고, 후세에 재앙과 근심을 막지 못함은 본분에 결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보잘 것 없는 사람은 눈이 헷갈려서 살펴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듣건대, 사생은 만법의 근원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스승의 윤리가 한 번 무너지면 만법(萬法)이 모두 무너지는 것은 형세 상 반드시 이르게 됩니다. 오늘의 일은 사생의 큰 윤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도를 없애는 것은 큰 죄로, 공자·맹자·주자의 세 성현 때와 비교를 해봐도 큰일이지 작은 일이 아니니, 밝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치를 보는 것이 투철하지 못하고 기를 충실하게 기르지 못했으니, 불인(不仁)한 악에 대해서는 진실로 알지 못하지만 본분에 대하여 흠이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세 성현에게 받은 글로써 헤아려 보건대 본분에 터럭만큼을 가하여 되돌아오는 것이 너무 심하다 말한다면 진실로 깨우쳐 주는 것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또한 나는 단지 있던 일에 근거하여 저들이 말과 일로 속이며 범한 큰 것으로 논했을 뿐입니다. 일찍이 다른 일까지 동시에 언급해서 미세한 것까지 다 거론하기를, 마치 채씨를 죄주고 당중우를 탄핵하는 것과 같은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나의 일상적인 보통 감정의 견해로 헤아려 보더라도 마땅히 또한 너무 심하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스스로 생각을 할 때 사람이 학문을 하는 까닭은 단지 간단히 옳은 것을 구하고 이치를 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직 이치를 따르기를 구하고, 이치에 따라서 생과 사, 화와 복, 비난과 칭찬, 이익과 손해에 대해서 털끝만큼이라도 돌아본다면, 이것은 남쪽의 월나라를 가려하면서 말을 북쪽으로 향하게 하고, 들어가려 하는데 문을 닫는 것과 같아서, 끝내 이루어질 이치는 없습니다. 스스로 학문하는 처음의 마음을 버려서 일생을 그르친다면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금년에 이런 이치를 얻어서 이 뜻을 철저히 지키다보니 마침내 거의 한 부를 얻어서 지하에서 선성과 선사를 보더라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어른은 이런 말을 들으면 또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를 계기로 어른이 저를 사랑한 것은 이처럼 두터운데 내가 보답할 바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다른 사람의 은혜를 받고서 저버리는 것이니 내가 어찌 어찌 차마 할 수 있겠습니까? 어른의 덕성과 온화하고 후덕함은 자못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니, 활달한 기운을 거두어 들여서 차마 공핍(空乏)하게 하리오! 이 학문을 한지 오십여 년이 되어, 널리 사랑하는 인(仁)이 아름답고, 장자(長者)의 기품과 큰 덕의 아름다움이 있고, 우뚝하니 군자의 지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의리를 정교하게 하고 간절하게 함에 이르러서는 못을 끊듯 쇠를 자르듯 거처(去處)를 분명하게 하는 데에는 매우 힘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대충 보아가면 시비의 근원이 어긋나는 것이 작지 않고, 학문을 쌓은 효과도 거두기 어렵습니다. 근래 의론 같은 경우, 당신의 견해가 이와 같아서, 돌아보면 생각하는 것이 있지 않은 것 같으니, 논리에 따라 사실을 규명하면 두려워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찍이 출입을 간단히 하고, 경전을 가까이 하기를 삼가 권하여 말년에 식견을 밝게 하고 행실을 높이해서 우뚝 세우는 효과가 있기를 바랐는데, 들어주질 아니하여 매우 속상했습니다. 지금 저의 병이 오래도록 낫질 않습니다. 나이는 비록 어른보다 적다하나 갑자기 먼저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감히 전부 말하는 것입니다. 아, 우리 어른은 선친의 친구라고, 다시 진진의 친함주 210)을 더 보탠 것이 아니지만, 평범한 다른 동문이라면 어찌 감히 이것으로써 진언하겠습니까. 이것을 잘 살피어 깊이 마음 쓰기를 바랍니다.
주석 201)본분지외(本分之外)
맹자께서 "중니는 너무 심한 것은 하지 않으셨다'에 대한 주석으로 양씨 왈, '성인이 하는 바는 본분의 밖에는 털끝도 더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맹자가 참으로 공자를 알지 못했다면 능히 이렇게 칭하지 못했을 것이다.〔孟子曰: 仲尼不爲已甚者, 楊氏曰: 言聖人所爲, 本分之外, 不加毫末, 非孟子眞知孔子, 不能以是稱之〕'라고 주자가 양씨의 말을 인용하여 풀이하였다. 《맹자(孟子)》〈이루장구(離婁章句)〉
주석 202)공자(孔子)께서……이르렀으니
《논어(論語)》 〈양화(陽貨)〉에 "유비(孺悲)가 공자를 뵙고자 하였으나 공자께서는 병이 있다고 거절하시고, 명령을 전달하는 자가 문밖으로 나가자 거문고를 가져다 노래를 불러 그로 하여금 듣게 하셨다.〔孺悲欲見孔子 孔子辭以疾 將命者出戶 取瑟而歌 使之聞之〕"라고 하였다. 거문고를 연주한 이유는 병 때문에 만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잘못 때문에 만나지 않는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주석 203)진항(陳恒)……청한 것
진성자(陳成子)가 간공(簡公)을 시역(弑逆)하자, 공자가 목욕하고 조정에 들어가 애공(哀公)에게 고(告)하기를, "진항(陳恒)이 그 임금을 죽였으니, 그 놈을 토벌하소서.〔陳成子弑簡公, 孔子沐浴而朝, 告於哀公曰, 陳恒弑其君, 請討之〕" 하였다. 《논어(論語)》 〈헌문(憲問)〉
주석 204)향원(鄕愿)
그 지방 인심에 영합하면서 가장 점잖은 체하는 사람을 말한다. 《논어(論語)》 〈양화(陽貨)〉, "향원은 덕을 해치는 사람〔鄕愿德之賊〕"이라 하였다.
주석 205)무부무군(無父無君)
임금과 어버이를 모두 부정한 극악한 죄인이라는 뜻이다. 맹자(孟子)가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한 묵적(墨翟)과 위아설(爲我說)을 주장한 양주(楊朱)의 학설을 비판하면서 언급한 말이다. 《맹자(孟子)》 〈만장 상(萬章上)〉
주석 206)공자……삼았으면
《맹자(孟子)》 <만장 상(萬章上)> 주자의 주에 의하면, 공자가 노나라 사구를 하다가 노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가셨다가 다시 위나라를 떠나 송나라로 갔는데, 송나라 대부인 사마상퇴(司馬向魋)가 공자를 죽이려 하므로 공자가 화를 피하려고 미복 차림으로 송나라를 떠나 진나라에 이르러 사성정자(司城貞子)를 주인으로 정하신 것이다. 맹자의 말은 공자가 이렇게 곤액을 당하고 있는 때에도 주인 삼을 사람을 가리셨는데, 하물며 제나라나 위나라에서 아무 일도 없을 때에 어찌 옹저(癰疽)나 척환(瘠環)을 주인으로 정하는 일이 있었겠느냐는 말이다.
주석 207)원우(元祐)
송나라 철종의 연호로 1086~1094까지 사용되었다.
주석 208)무모하게……빠졌으니
《주역(周易)》 〈대과괘(大過卦)〉 상육(上六)의 효사(爻辭)이다. '지나치게 건너 이마까지 빠져 흉하니 누구를 탓할 수 없다〔過涉滅頂凶無咎〕.
주석 209)범방과 양구
후한 때의 명사이다. 범방은 영제(靈帝) 건녕(建寧) 2년(169)에 일어난 당고(黨錮)의 옥사 때 옥중에서 죽었고, 양구는 영제 광화(光和) 2년(179)에 위위(衛尉)로 있으면서 조절(曹節)과 장양(張讓) 등 환관을 제거하려다가 발각되어 피살되었다.
주석 210)진진지호(秦晉之好)
춘추시대에 진(秦)과 진(晉) 두 나라가 대대로 혼인을 하니, 뒷 사람이 연인(連姻)을 들어 진진지호(秦晉之好)라 일컫게 되었다.
與鋉心田丈 戊寅
吾丈每謂, 澤述疾惡已甚, 有所規飭, 夫已甚者, 聖人之所不爲也。 丈之以是勉之者, 出於以德之愛意甚厚矣, 豈不知感? 但朱子引楊氏'本分之外, 不加毫末之語', 以釋'不爲已甚'之義, 則加於本分之外者, 乃可謂之已甚, 其於本分無加者斥之, 雖嚴不可謂之已甚也, 明矣。 然則加與不可, 何以知之? 亦當以聖賢之言與行知之。 孔子於孺悲請見, 旣辭以疾, 至復取瑟而歌, 則似若已甚。 陳恒弑君事, 在他國, 則至於沐浴請討者, 似若已甚。 鄊里所稱謹愿之人, 宜若可謂善者, 而旣謂過門, 不入而不感, 又至謂德之賊也, 則似若已甚。 楊墨亦學仁義者也, 而孟子至斥以無父無君之禽獸, 則似若已甚。 野人好事者說, 宜若不足問者, 而亦用力辨破, 至於大言之, 曰: "若孔子主癰疽侍人, 何以爲孔子。" 則似若已甚然。 而孟子旣稱仲尼, 以不爲已甚, 則自信其所行者, 又可知矣。 劉元城攻小人太強, 以至萬死之域, 可謂已甚。 元祐, 諸賢, 憂蔡之難制, 至於罪之以詩句, 則可謂已甚。 東漢之黨人, 是過涉之滅頂者, 可謂已甚。 而朱子論元祐人物, '以元城爲中, 而罪蔡以詩句, 不以爲非。' 又至謂使我當東漢, 必陷於范滂陽球之禍, 至於按唐仲友則狀, 至六上條列四十, 而不自以爲已甚, 何哉? 凡此皆以事關大義。 人犯大罪, 不如此, 不足以明義理於天下, 防禍患於後世, 而有所欠於本分, 故也。 誠非夫夫淺腹眯眼之所能窺測也。 蓋聞, 師生者, 萬法之源。 然則師倫一斁, 萬法皆斁, 勢所必至。 近日之事, 事關師生之大倫。 人犯亡師道之大罪, 視孔孟朱三聖賢時, 事有大焉而非細者, 不其明乎? 澤述也, 見理未徹, 養氣未充, 其於不仁之惡, 實未知, 其無所欠於本分。 然竊以所受乎三聖賢者揆之, 謂加乎本分而歸之已甚, 則誠不知其所喩也。 且吾只據有事以來, 彼之言與事, 誣犯之大者, 而論之而已。 未嘗有幷及他事, 悉擧纎細, 如罪蔡按唐之爲者。 則雖度以夫, 夫常情之見, 宜亦不謂之已甚也, 審矣。 自惟人之所以爲學, 只是欲斷斷然惟是之求。 而惟理之從欲求, 從理而有一毫顧念於死生禍福毀譽利害之間, 則是猶適越而北轅, 欲入而閉門, 而卒無有成之理。 自負爲學之初心, 而誤了一生, 豈不可哀? 此年以來, 見得此理, 徹底守得此志, 到頭庶有一副所得可籍手, 以見先聖先師於地下, 而無愧矣。 未知吾丈聞此, 又以爲如何也。 仍念丈之愛我者如此其厚, 而我不思所以報之, 則是受人恩而負之者, 我豈忍爲? 丈之德性和厚自是天禀, 而斂其豪豁之氣, 忍其空乏! 此學, 蓋五十年子茲矣, 雖其泛愛之仁, 休休然, 有長者之風, 大德之閑, 亭亭然, 有君子之操。 然至於義理精切, 斬釘截鐵去處, 未甚致力, 竊恐如此放過則是非之源, 所差不細, 而積學之效, 難以收得也。 至若近日議論, 合下所見如是, 非有所顧念, 而然循論究實, 亦爲之有是懼焉, 故已嘗奉勸以簡出入 親經傳, 管取晩年識明行高, 卓然有立之效, 而未見採聽, 甚所憫然。 今則賊疾彌留, 竊恐年雖少丈, 溘然則先, 故敢畢言之, 噫非吾丈旣爲先人之友, 又忝秦晉之親, 而非凡他同門之地, 安敢以此進之也? 倘有以諒此深心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