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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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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심 전장에게 보냄(與鍊心田丈 乙亥)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5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5.TXT.0070
연심 전장에게 보냄
요새 들으니, 상중에 있는 박현암(朴玄岩)이 김용승(金容承)을 초치하여 자기 조고의 묘갈문을 받는다고 하니 사문의 일이 날마다 그릇되어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안 북쪽의 여러 공들이 이미 음성의 적도 골수당과 화합하고, 이 박현암이 또 스승을 배반한 사람에게 묘갈문을 받으니, 의리(義理)와 시비(是非)가 혼란하여 뒤집힌 것이 하나같이 이 지경에 이른단 말입니까? 일전에 사견(士狷)과 함께 백천재(百千齋)에 며칠간 머무를 때, 편지를 써서 박현암에게 이 일을 그만두라고 하였습니다. 창암(蒼岩) 어른이 선사에게 열복(悅服)주 200)하여 성심으로 섬긴 것은 실로 문인들이 미치지 못하는데, 이처럼 스승을 존경한 덕이 있는 분의 행적을 스승을 배반한 자로 하여금 쓰게 한다면 어찌 잘못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성이 믿음을 받지 못하고 말이 쓰이지 못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비록 그러할지라도 이 일은 반드시 부안 북쪽의 여러 공들이 열어준 것이라 아니할 수 없으니,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여러 공들이 앞에서는 무함을 성토하고 뒤에서는 일을 같이 하니, 사람들이 이를 보고, 어찌 여러 공들이 어제는 그르나 오늘은 옳다고 여겨 간옹이 조금은 그럴 뜻이 있었나 의심하고 이것이 김용승이 물러나와 스스로를 결백하게 한 것이라고 여겨서가 아니겠습니까? 옛날에 박현암이 우리 어른과 변론할 때, 옆에서 자세히 들었는데, 이런 뜻이 있는 듯했습니다. 일이 만약 이렇게 나간다면 창암 어른이 죽은 뒤의 일만 낭패일 뿐만 아니라, 선사를 위해 무함을 변론하는 것도 어찌 가일층 어려워지지 않겠습니까? 애통하고 애통합니다.
주석 200)창암(蒼岩)이 선사에게 열복(悅服)하여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칠십 명의 제자가 공자에게 열복(悅服)하였다.〔七十子之服孔子也〕"라는 말이 나오고, 또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공자가 시서예악을 교재로 가르쳤는데, 제자가 대개 삼천 명에 이르렀으며, 그중에서 육예를 몸으로 통달한 사람이 72인이었다.〔孔子以詩書禮樂敎 弟子蓋三千焉 身通六藝者七十有二人〕"라는 말이 나온다.
與鍊心田丈 乙亥
今聞玄岩朴哀, 延致金容承, 受其祖考墓文云, 師門之事, 可謂日益非矣。 扶北諸公, 旣和同陰賊之骨黨, 此哀又謁文於陪師之人, 義理是非之混倒, 一至於此乎? 日前, 與士狷留百千齋數日, 爲喩此哀, 止此事爾。 蓋蒼岩丈之悅服先師而誠事之, 實門人之不及, 以若尊師之德, 令倍師者狀之, 則豈不誤乎? 而誠不見孚, 言不見用, 以至於此, 夫何言哉? 雖然此事未必非扶北諸公啟之也, 何也? 諸公前討誣而後同事, 人之見此, 豈不以諸公爲昨非今是, 而疑艮翁之不免些意, 是容承之退出自潔也乎? 向此哀與吾丈辨論時, 從傍細聽, 似有此意矣。 事若出此, 非但蒼丈身後事之狼狽, 爲先師辨誣者, 豈不一層加難矣乎? 痛矣痛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