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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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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촌 임장에게 답함(答讓村林丈 乙亥)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5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5.TXT.0055
양촌 임장에게 답함
삼가 답장을 받고, 음성의 오진영을 배척하는 의리가 이전처럼 변하지 않음을 잘 알았으니 노성(老成)의 정견은 진실로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합니다. 다만 김씨의 일주 176)에 대해서는 치밀하게 살피지 못하여 관계되는 것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보아서 법으로 삼아야 할 것은 간옹 선사가 아닙니까? 가평의 김평묵(金平黙)이 매옹(梅翁)의 제문주 177)을 씀에 분명히 '문인소자'라고 일컬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간덩이를 내놓고 입을 멋대로 놀려서 기롱하고 폄하하며 업신여기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선사께서 그를 인식하기를 매옹 문하의 배반한 졸개로 여겼습니다. 하물며 이제 여흥의 김용승이 선사에 대하여 살아계실 때는 순전히 스승으로 섬겼으나 돌아가신 뒤에는 사우(師友) 관계에 끼어넣었으며, 살아계실 때는 '문인소자'로 일컬었으나 돌아가신 이후에는 문인소자라 일컫지 않고 자칭 '문하의 한광〔門下韓狂〕'주 178)이라고 하였으며, 살아계실 때는 "망극한 은혜를 받았다." 하더니 돌아가신 뒤에는 "학업을 받아 제자가 된 적이 없다." 하였으니, 가평의 김평묵과 비교할 때 경중이 어떠하겠습니까? 종합하면, 〈백천재기(百千齋記)〉 의 내용 중에 있는 "도의를 보존하지 못하면 선생도 바꿀 수 있다."와 "그대의 조부가 우암이 된다면 내가 윤증이 될 수 있다."는 말들이 그의 주된 견해입니다. 삼가 자세하게 살피시고 정밀하게 처리하셔서 師生(사생)의 윤리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주석 176)김씨의 일
김씨는 김용승(金容承)을 말하는 것으로, 처음에는 오진영을 성토하는 쪽에 가담했으나 뒤에 배반한 자이다. 김씨의 일이란 김용승이 간재 묘소에 올린 〈망고현천문(望告玄阡文)〉의 내용이 문제가 된 것을 말하는데, 전일중(田鎰中)이 쓴 이에 대한 변척과 김택술(金澤述)이 그 내용을 조목조목 나누어 문제를 지적한 글이 《사백록(俟百錄)》권2 〈승문변척(承文辨斥)〉에 실려 있다.
주석 177)매옹(梅翁)의 제문
매옹은 호가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을 말한다. 김평묵의 《중암집(重菴集)》에 〈제홍여장문(祭洪汝章文)〉이 실려 있는데, 간재가 이 제문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주석 178)문하의 한광(韓狂)
한광의 김용승의 호이다. 〈망고현천문〉에 "문하인 한광 김용승은"이라고 쓴 것을 말한다.
答讓村林丈 乙亥
伏承下覆, 仰認斥陰之義, 無替如前, 老成定見, 固應如是。 但於金事, 未甚致察, 關係不小。 蓋吾輩所視以爲法者, 非艮翁先師乎? 嘉金之祭梅翁文, 明明稱'門人小子' 然以其有放膽肆口, 譏貶嘲侮之詞, 故先師認以爲梅門叛卒。 矧今驪金之於先師, 生前純師之, 沒後師友間之; 生前稱'門人小子,' 沒後不稱而自稱'門下韓狂'; 生前謂'受罔極之恩', 而沒後謂'未嘗受業爲弟子', 其視嘉金輕重爲何如也? 總之百千齋記言中, "道義不存, 先生可易。", "君祖爲尤菴, 然後吾爲尼尹。"之說, 爲其主見矣。 伏乞細審精勘, 以明師生之倫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