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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재 종장에게 보냄(與懶齋宗丈 辛未)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5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5.TXT.0050
나재 종장에게 보냄
무릇 예(禮)는 사덕(四德)주 164)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탕 임금의 '예로써 마음을 다스린 것〔以禮制心〕'과 공자의 '극기복례(克己復禮)'주 165)로 살펴보면 곧 이것은 성리(性理)를 대신한 명칭으로, 좁게 말하면 하나의 일이고 전체적으로 말하면 네 개를 포함하니, 인(仁) 자와 체용(體用)을 같이 할 만합니다. 그러므로 성인이 성리의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인하여 절문과 의칙의 예를 만들었습니다. 예악형정(禮樂刑政)은 비록 똑같이 교(敎)주 166)라고 이르지만 총괄적으로 말하면 예교(禮敎)입니다. 편안히 거하여 가르침이 없는 것을 예교가 없다고 하니,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노릇 하는 것은 예 때문이라고 말하고, 또 예를 잃으면 금수가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예(禮)라는 한 글자는 사람과 짐승의 큰 구분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성왕이 중시하였고 군자는 삼갔습니다. 한번 세운(世運)이 쇠퇴한 뒤로 천하가 모두 오랑캐가 되어 우리나라의 예의도 이미 망해버렸습니다. 오직 우리 간재 선사께서 도학을 밝히고 예교를 주된 임무로 삼아서 천하의 퇴폐한 풍속을 바꾸려고 하셨는데, 우리 종장께서 예를 신중히 다스리고 예를 상세히 강론하여 문하의 최고가 되셨으니, 이것은 일문의 공론이고 우리 가문의 영광입니다. 그 얼마나 행운입니까? 스승이 돌아가신 후로 의리가 꽉 막혀서 선사께서 예를 숭상한 법문이 뒤따라 아무것도 없는 데주 167)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이원재(李遠齋)가 마침내 부친상을 당한 손자를 성혼시키기에 이르렀으니, 진실로 이른바 천하에 있지 않은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라에 정법이 있으니 이것은 다시 의논할 것이 없고, 사마공이 이미 여덟 글자의 단안(斷案)을 두었으니, 제가 어찌 쓸데없는 말을 하겠습니까? 다만 가슴 아픈 것은 선사가 돌아가신지 10년도 되지 않았는데 훌륭한 제자에게서 이런 변고가 있다는 것이고, 또 한스러운 것은 동문이요 오랜 벗이 구덩이에 빠졌는데 구하는 것을 먼저 일삼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선사께서 살아계셨다면 어찌 변란이 이 지경에 이르렀겠습니까? 중당(中堂)이 처의 기년복 상중에 납폐(納幣)하자 선사께서 강사(講社)에 죄목을 게양하고, 경복(卿服)을 받기 전에 재혼하자 책벌이 지엄하여 두려움으로 생병이 날 정도에 이르렀으니, 당일의 법문이 돌아보면 어떠했습니까? 옛날을 감상하며 오늘을 슬퍼하니 더욱더 돌아가신 것이 한탄스럽습니다. 또 만약 원재에게 간쟁하는 벗 한사람이 있었다면 또한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겠습니까? 어른께서는 옛날 제가 간언하여 동성(同姓)의 결혼을 막은 일을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이것은 온 나라의 성행하는 풍속이요 선현이 행한 바인데도 오히려 예가 아니라고 하니, 어른의 평소 정론에 위반되고 끝내는 누가 되는 연고를 면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충심을 바쳐 숨김이 없는 것과 어른의 의를 들으면 즉시 감복하는 것은 실로 옛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이제 이공은 옛 친구이며 문생인데 힘써 간하는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이루라고 권한다 하니, 또한 유독 무슨 마음이란 말입니까? 그 명이 좋지 않음이 애석하기만 합니다. 이미 지나버린 일을 어찌 반드시 종이에 드러내 쓰겠습니까마는 다만 나이든 선비이고 노숙한 유자인데도 이와 같다면 학문을 하는 몇몇 후진들이 다시 예로써 옛것을 회복하는데 힘씀이 없을 것이고, 고을 풍속을 도도히 이끄는 자가 장차 유자를 핑계대고 서로 짐승의 영역으로 함께 돌아갈 것입니다. 저는 비록 보잘 것 없는 필부이지만 세도를 염려하는 마음이 없다고 할 수 없으니, 비록 말하지 않고자 한들 되겠습니까? 어른은 학문을 다스리는 전문가로 평생의 정력이 전부 이 예에 있으니, 염려하는 바가 어찌 나머지 사람에게 비하고 말겠습니까? 이 설을 다른 사람에게 고하지 않고 어른께 고하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깊이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주석 164)사덕(四德)
유교에서 사람이 행해야할 가장 기본덕목으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말한다.
주석 165)극기복례(克己復禮)
안연(顔淵)이 극기복례(克己復禮)를 통하여 인(仁)을 이루는 조목을 물었을 때, 공자가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라고 답하였다. 《논어(論語)》 〈안연(顔淵)〉
주석 166)예악형정(禮樂刑政)은 비록 똑같이 교(敎)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장 "하늘이 명하신 것을 '성'이라 이르고 성을 따름을 '도'라 이르고 도를 품절해 놓음을 '교'라 이른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에 대해 주자가 "'수'는 품절함이다. 성과 도가 비록 같지만 기품이 혹 다르기 때문에 과불급의 차이가 없지 못하다. 이에 성인께서 사람과 물건이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인하여 품절하여 천하에 법이 되게 하시니, 이것을 일러 '교'라 한다. 예악형정과 같은 등속이 이것이다.〔修, 品節之也. 性道雖同, 而氣稟或異, 故不能無過不及之差. 聖人因人物之所當行者而品節之, 以爲法於天下, 則謂之教, 若禮樂刑政之屬是也〕"라고 말하였다.
주석 167)아무것도 없는 데
원문의 '오유(烏有)'는 '무엇이 있느냐'는 뜻으로, 사물이 아무것도 없는 것을 말한다. 한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허부(子虛賦)〉에 나오는 자허, 오유선생, 망시공(亡是公)이라는 가공의 세 인물에서 유래한 말이다.
與懶齋宗丈 辛未
夫禮爲四德之一。 然以湯之以禮制心, 孔子之克己復禮, 觀之, 便是性理之代名, 而偏言一事, 全言包四, 可與仁字同體用也。 故聖人因性理之所當行者, 制節文儀則之禮焉。 禮樂刑政, 雖均謂之敎, 而總言之則禮敎也。 逸居無敎, 謂無禮敎也。 故曰人之爲人禮也。 又曰禮失則入於禽獸。 然則禮之一字, 乃人獸之大分也。 是以聖王重之, 君子謹之。 一自世運之衰, 天下皆爲夷狄, 而吾東之禮義, 亦已淪亡矣。 惟我艮齋先師, 闡明道學, 以禮敎爲主務, 思以易天下之敗俗。 而吾宗丈治禮之謹, 講禮之詳, 爲門下最, 此一門之公論, 宗族之光榮, 何其幸歟? 山頹以來, 義理晦塞, 至於先師尙禮之法門, 從而歸於烏有之鄕。 李遠齋之見稱於人者, 乃至成昏喪父之孫, 眞所謂天下事無所不有者也。 國有正法, 此不復論, 司馬公, 已有八字斷案, 吾何贅說? 但所可痛者, 先師瞑目, 不出十年, 乃有此變於高第弟子也, 又可恨者, 同門久要陷於坑塹, 而不能先事拯救也。 若使先師而在世, 豈變之至此? 中堂妻朞中納幣, 揭罰於講社, 受卿服前再卺, 責罰至嚴, 至於恐惧生病, 當日法門, 顧何如也? 感古悲今, 益切云亡之歎。 且使遠公有爭友一人, 又豈至此? 宗丈不記昔年澤述之諫, 止同姓昏事乎? 此則擧國之成俗, 先賢之所行, 猶以爲非禮, 而違反於宗丈平日定論, 而終不免爲累故也。 澤述之獻忠無隱, 尊之聞義卽服, 實無愧乎古人矣。 今李公知舊門生, 不惟無力諫者, 乃反勸成云, 亦獨何心? 惜乎, 其命之不好也。 事係旣往, 何必形於紙墨? 但老士宿儒, 而若此, 則若干後進之爲學者, 無復以禮復古之可勉。 鄕俗之滔滔者, 將藉口於儒者, 而胥同歸於禽獸之域矣。 區區雖無似匹夫 亦不可謂無世道慮也, 則雖欲無言得乎? 宗丈是亂學專門, 平生精力, 盡在於此, 其所憂慮, 豈止餘人比也? 此說之告不於他而於宗丈焉, 伏惟有以深諒之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