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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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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재 족속에게 올림(上涵齋族叔 丁丑)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5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5.TXT.0045
함재 족속에게 올림
어제 뵈었을 때 "종학자(從學者)를 시켜 김세기(金世基)의 흉문(凶文)을 변론하는 통문을 띄우겠다." 하신 말씀을 받들었습니다. 이것이 비록 조카가 망극한 무함을 받은 것을 안타깝게 여겨 그리 하신 것이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고 여깁니다. 조카가 처음부터 주장한 의리는 단지 스승의 무함을 변론하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지금 김세기의 글이 비록 흉악하나 무함 당한 것은 저 자신이니, 조카가 주장하는 의리에 있어서는 변론하지 않을 바에 있습니다. 또한 그가 무함한 것이 '사람이 거상(居喪)에 예가 없다'고 말한 것인데, 처음부터 그 사람의 부상(父喪)과 모상(母喪)의 선후를 알지 못했으니, 그가 여러 가지 없는 사실을 얽고 날조한 상황은 이 점에 나아가 알 수 있는 만큼 또한 변론할 것도 못됩니다. 또한 오진영이 제멋대로 구는 사람이 된 까닭은 모두 '이기기를 힘쓴다〔務勝〕'는 두 글자에 있습니다. 스승을 끌어다가 무함을 증명하여 인가(認可)를 성토하는 사람을 이기고, 검사국에 고소하여 무함을 변론하는 사람을 이기고자 종학자로 하여금 흉악한 무함을 지어내게 하면서, 이와 같은 글의 종류를 여러 차례 인쇄하여 배포했습니다. 내가 원수를 갚고자 한다면 그가 스승을 무함하고 원고를 어지럽히고 선비를 화에 빠뜨린 것 외에도 다시 허다한 죄악의 확실한 증거와 실제로 범한 것으로 모두 들 수 있는 것이 없지 않습니다. 진실로 소인과 더불어 악다구니를 하며 보루를 마주하여 서로 다투고 허물을 본받아 이기기를 힘쓰는 것이 부끄러워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나라 왕 부견(符堅)이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저 사람이 학대하면 나는 인으로써 하고, 저 사람이 폭력을 쓰면 나는 의로써 하고, 저 사람이 급박하게 하면 나는 관대하게 하여 매번 서로 반대가 되게 한 이후에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주 146) 하였으니, 이 말은 먼저 내 마음을 얻은 것인 데다가 이미 종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전기진(展璣鎭)이 비록 음성의 오진영을 편들었던 사람이나 오히려 "호남의 문자는 일의 이치를 밝히는 것을 주로 하고, 음성 쪽의 문자는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을 주로 한다."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히 바뀌지 않을 공론입니다. 부견이 도를 알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이와 같이 했는데, 하물며 우리들은 매사에 반드시 십분 지당한 도를 구하고자 함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어제 하신 말씀을 따를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삼가 어른의 견해도 그렇게 여기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흉악한 글에 첨부되어 있는 '오진영이 서병갑(徐柄甲)에게 보내려 했던 편지'가 곧장 선사를 무함하기를 가면 갈수록 더욱 심하게 한 것에 이르러서는 통렬하게 변론하지 않을 수 없을 뿐입니다.
주석 146)저 사람……있다
이 말은 대부분은 유비가 한 말로 기록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홍재전서(弘齋全書)》, 권113, 〈한소열(漢昭烈)〉에 "그러므로 '조조가 다급하게 하니 나는 너그럽게 하고, 조조가 포악하게 하니 나는 어질게 하고, 조조가 속임수로 하니 나는 진실되게 하겠다.'고 하였는바, 이렇게 매양 조조와 반대되게 해야 일을 이룰 수 있었으니, 이것은 가장 좋은 방책이다.〔故曰操以急吾以寬, 操以暴吾以仁, 操以譎吾以忠, 每與操反, 事乃可成, 此策之善也〕"라고 기록되어 있다.
上涵齋族叔 丁丑
昨拜時承喩以"令從學者, 發通辨世基凶文", 此雖憫姪受誣罔極而然。 然竊以爲不必然也。 蓋姪之從初主義, 只辨師誣而已。 今世文雖凶, 所誣者此身, 則其於姪之主義, 在所不辨, 且其誣也, 謂"人居喪無禮", 而初不知其人父喪母喪之先後, 則其諸構虛揑無之狀, 卽此可見, 而又無足辨矣。 且也震泳之所以爲無狀人者, 都在'務勝'二字。 援師誣證以勝討之人, 告訴檢局以勝辨誣之人, 使從學者作爲凶誣, 如此文之類, 累度印布。 我欲報復, 則彼之誣師亂稿禍士以外, 更有許多罪惡眞贜實犯, 非無可以幷擧者。 誠爲恥與小家惡口, 對壘較爭, 效尤務勝, 而不爲之也。 秦王符堅與其臣語曰: "彼以虐, 吾以仁, 彼一暴, 吾亦義, 彼以急, 吾以寬, 每每相反然後, 事乃可成。" 此可謂先獲我心, 而亦已所從事者也。 以故田璣鎮雖以右陰者, 猶曰: "湖南文字, 主明事理, 陰邊文字, 主功擊人。" 此乃自然不易之公論也。 符堅未爲知道而猶如此, 而况吾輩每事必欲求十分至當之道乎! 昨日之敎, 有不得從者, 以此, 伏想尊見亦以爲然也。 至於凶文所附震泳擬與徐柄甲書, 是直誣先師之愈往愈甚者, 不可不痛辨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