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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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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재와 나재 익용에게 올림(上涵齋·懶齋 益容 ○辛未)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5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5.TXT.0042
함재와 나재 익용에게 올림
삼가 들으니, 두 어른이 근래에 삭발하여 원수를 갚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논의를 가지고 오래도록 결론을 내지 못해 이로 인해 꺼리고 싫어하게 되어 장차 갈라설 지경이라 하니,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한기와 구양수가 《주역》 〈계사전〉에 대해서와 사마광과 범중엄이 종률(鍾律)에 대해 또한 서로의 의론의 크게 차이가 났다고 말할 수 있는데, 송나라 조정에서 한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린 분으로는 먼저 이 네 분을 꼽으니, 옛사람으로 뜻을 같이한 분들도 이견(異見)이 있음을 면하지 못한 것은 오래 되었습니다. 동이(同異)를 다투다가 원수처럼 틈이 생기는 것은 말세의 누추한 선비들의 습관입니다. 삭발을 하여 부모의 원수를 갚는 것은, 다만 기미에 임하여 모습을 바꾸기를 마치 산승(山僧)이나 성조(城朝)주 142)【한나라 때 죄를 짓고 삭발 당해 복역하는 자를 일컫는 명칭이니, 오늘날의 징역과 같다.】의 모습처럼 해서 상대방이 모르게 하여 손을 쓰려는 데서 나온 것이고 절대 다른 뜻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비단 함재어른만 옳다고 할 뿐만 아니라 저 또한 옳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기미에 임하여 모습을 바꾼 데에서 나오지 않고 혹 오랑캐에 물들어 기세를 타려는 의도에서 나왔다면 비단 나재 어른만 불가하다 할 뿐만 아니라 저 또한 불가하다 말할 것입니다. 원수를 갚는 것은 큰 의리이니, 원수를 갚지 못하면 자식이 아닙니다. 기미에 임하여 반드시 어쩔 수 없다면 삭발뿐만 아니라 오랑캐의 옷을 입고 오랑캐의 말을 한다 하더라도 또한 어찌 불가하겠습니까? 중화와 오랑캐는 큰 경계이니, 몸을 한 번 잃으면 또한 자식이 아닙니다. 만약 오랑캐에게 붙어 절개를 굽혀서 원수를 갚았다면 삭발은 우선 놔두고 비록 높은 관과 넓은 띠를 보존한들 또한 어찌 옳겠습니까? 함재어른이 비록 복수의 대의를 주장하시지만 중화와 오랑캐의 구분은 익히 들으셨을 것이니, 몸을 잃어 오랑캐가 되는 것은 반드시 옳다고 하지 않으실 것이며, 나재 어른이 비록 중화와 오랑캐의 큰 경계를 주장하시지만 원수를 갚느냐 안 갚느냐와 사람이냐 짐승이냐가 판가름 나는 것에 대해 분명 기미에 임해 모습을 바꾸는 것까지도 아울러 허락하지 않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두 어른이 얼굴을 맞대고 토론하되 뜻을 양보하여 자기 견해를 밝히고 마음을 비워 상대의 말을 다 하게 한다면 자연 마땅히 환연히 서로 풀릴 것입니다. 피차가 모두 이치에 맞는 견해를 지닌 만큼 길은 달라도 결론은 같음이 되는 데에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니, 어찌 거듭 글을 보내고 편지를 보내며 서로 낮추려 하지 않아서 마침내 비루한 선비들이 논쟁하다가 원수가 되는 풍조로 귀결되는 지경에 이른단 말입니까? 강론은 의리를 밝혀 덕에 나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하신다면 어찌 의리를 손상시키고 덕을 어기는 꼴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조상도 같고 스승도 같아 의리가 타인과는 유별함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번연히 생각을 바꾸어서 서로 자신을 낮추기를 게을리 하지 마시고 자신의 도를 힘써 다하여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사지 않도록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주석 142)성조(城朝)
한나라 때의 형벌 이름이다. 형기는 4년이며, 아침 일찍부터 성을 쌓는 노역을 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의 명칭은 성단(城旦)인데, 조선 태조(太祖)의 개휘(改諱)인 '단(旦)'을 휘하여 동의이자(同義異字)인 '조(朝)'로 바꾼 것이다.
上涵齋·懶齋 益容 ○辛未
竊伏聞二丈近以削復當否之論, 久未歸一, 因成嫌隙, 將至乖離, 是何說也? 韓歐之易繫, 馬范之鐘律, 亦可謂大議相差, 宋朝之同心爲國, 先數四公, 古人同志之不免有異見尙矣。 至於爭同異, 而成仇隙, 乃末世陋士之習也。 削髪復父讐, 但出於臨機變形, 若山僧城朝【漢時有罪髡役者之名, 若今之懲役。】之樣, 使彼不知, 得以下手, 絶無他意。 則非但涵丈之謂可, 澤述亦曰可也。 若不出於臨機變形, 而或出於染夷乘勢之意, 則非但懶丈之不可, 澤述亦曰不可也。 蓋復讐, 大義也, 讐不復則非子, 臨機而必不得已。 非惟削髪, 加以夷服夷語, 亦何不可? 華夷, 大防也, 身一失則亦非子。 如附夷屈節, 而讐可得復, 削髪且舍, 雖保峨冠博帶, 亦何可也? 涵丈雖主於復讐大義, 華夷之分則聞之熟矣, 失身爲夷, 必不謂可; 懶丈雖主於華夷大防, 讐之復否, 人獸之判, 必不幷與臨機變形而不許也。 若得二丈對面講討, 遜志以明己見, 虛心以盡人言, 自當煥然相釋, 彼此俱有理到之見, 而不害爲殊塗同歸也。 何至連篇累牘, 不肯相下, 竟歸於陋士辨爭仇隙之風也哉? 夫講論, 所以明義進德也, 如此則豈非適所以傷義乖德乎? 而况同祖同師, 義別他人? 竊願幡然改圖, 相下不倦, 務盡己道, 而毋貽人笑若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