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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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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재 이장에게 답함(答遠齋李丈 乙丑六月)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5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5.TXT.0026
원재 이장에게 답함
저는 어른과 26년간의 동문인데 시비(是非)의 대관(大關)을 당하여 마치 보통 사람들 보는 듯 하면서 의심을 쌓아놓고도 질문하지 않으니, 하늘이 반드시 싫어할 것입니다.주 85) 근래에 비로소 윤달에 보내신 편지를 받아 읽어보니, 나쁜 오진영과 반목하여 이별했다는 말을 들었으나 아울러 그가 죄에 대하 수복하는지의 여부를 묻지 않으시니, 덕이 있는 자는 분명 이러한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괴상히 여겼습니다. 얼마 있다가 다시 어른께서 오진영과 이미 수교를 하고 근심스러운 일과 사모하는 일에 대해서 하성(下誠)의 예(禮)를 감당함이 없다면, 또한 세세한 이유를 알아 스승을 속였으나 이전 일을 후회한다하니 사람이란 진실로 쉽게 알 수 없다는 것을 한탄했습니다. 이 같은 일이 있고 아울러 어른이 유서를 방치하여 잊어버렸다고 의심하며 말하는 것은 반드시 그렇다고 보증할 수 없어서 스스로 이전에 힘써 보호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없다며 스스로 부끄러워했습니다. 아, 어른이 만약에 동문의 보통사람이라면 어찌 반드시 색언이 이 지경에 이르렀겠습니까? 돌이켜 보건대 평일에 스스로 기약한 것은 말하는 것마다 명도와 율곡선생의 고명함에 해당했고, 구하고자 한 것은 일마다 중용(中庸)의 지극한 선(善)이었습니다. 성리(性理)를 전문으로 한 것은 호론(湖論)과 낙론(洛論) 상의 견해라고 스스로 믿지 아니한 적이 없었습니다. 덕성의 순수함과 언동의 법칙이 있음에는 또한 선사가 말한 적도 있고, 사람들이 이간질 하는 것도 없으니, 누가 간옹 문하에 노숙한 사람이요, 호남의 중망(重望)이라 여기지 않으리오? 마땅히 뛰어난 견해와 밝은 마음과 의연한 의리와 확연한 변론이 있어서, 뭇사람의 어리석음을 열어 밝히고, 뭇사람의 감정을 복종시키고 사문을 주도하고 세도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받은 유서에 근거해서 책의 발간을 인정하는 의론을 방지하지 못했고, 둘째로는 다섯 사람이 연재를 축출한다는 말을 하여서 뭇사람을 대할 수 없었고, 셋째로는 오진영이 세 사람을 꾸짖은 비난과 세 가지 설의 오류에 대해서 직접 글을 써서 명확히 한 것도 없는데 다시 사람들에게 말하고 행하설(杏下說: 은행나무 밑에서 한 말)이 전적으로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였습니다. 마침내 털고 깨끗이 씻어버렸으니, 처음과 끝이 어긋나고 언사가 맞지 않아서 권형(權衡)이 있는 곳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오직 어른이 노숙인이고 중망을 받았기 때문에 후진의 젊은 사람들이 바라보며 법칙으로 삼았습니다. 시비가 뒤섞이고 곡직이 전도되어 어지럽고 어수선하여주 86) 수습을 할 수 없습니다. 어른을 위해서 답답해하고 세도를 위하여 근심합니다. 전옹(全翁)을 속여서 세상과 화합하고 사랑을 취한 것은 김평묵(金平默)의 제문이 바로 이것이고, 선사를 인의(認意)와 인교(認教)로 속인 것은 음성 오진영의 필설(筆舌)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나 김 씨가 어찌 일찍이 스스로 전옹을 속인다 말하고, 오진영 또한 일찍이 스승을 속인다고 스스로 말했겠습니까? 그러나 김 씨의 속이는 말은 은밀하여 알기가 어려웠는데도 선사가 오히려 그를 참새처럼 쫓아버렸습니다. 오진영의 속임수는 직설적이고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에 변명하여 비호하는 자와 아부하며 당이 되는 자가 있었으니, 또한 이상합니다. 이제 어른이 오진영을 용서하고 보호하며 협력하고자 하는 것은 선사의 홍화(弘和)를 체득하고 절도에 맞게 하는 것이니,【선사의 홍화를 체득하고 절도에 맞게 한다는 것은 보내온 편지의 말이다.】 선사께서 그 해에 김 씨를 비난한 일이 얼마나 힘들었기에 홍화를 버리고 좁아서 절도에도 맞지 않는 일을 행했겠습니까? 이것은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공자가 옹저(癰疽)와 척환(瘠環)을 주인 삼았다면주 87) 어떻게 공자가 될 수 있으며, 만약에 선사가 인의(認意)와 인교(認敎)를 두었다면 어떻게 선사가 되었겠습니까? 어른이 아니면 오진영의 속이는 문장을 분별하겠습니까? 옹저의 속임수는 당시 호사자(好事者)의 설인데도 맹자가 오히려 통렬하게 비난을 했으니, 만약에 이 속임수가 공문(孔門)에 사숙한 항렬에서 만들어졌다면 맹자가 악을 미워하는 엄격함으로 그들과 화해하여 잘 지내는 것을 강구하고 위로하고 축하하는 예를 행하지 않은 것은 필연적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속임수를 인가하는 일은 옹저와 척환의 일에 비할 때 크기의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날 뿐 만이 아니니, 어른의 이번 일은 더욱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어른이 중용으로 자처한 것인데도 감히 이해하지를 못하고 깊이 의심을 하니, 두텁게 가려서 밝히기 어려운 경우입니다. 비록 그러할지라도 중용을 능히 하기 어렵고 백성이 능히 한 자도 드물다는 것은 공자도 일찍이 여러 번 탄식한 것입니다. 어른께서 비록 명철할지라도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만, 염려스러운 것은 호광(胡廣)처럼 직언하지 못하는 전철주 88)을 밟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 생각하여 뒤를 선하게 함으로써 사모하고 사랑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영광이 있게 해주신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충심을 말함에 간혹 직언으로 감정이 상하고 간절하게 들어주는 여부는 어른의 판단에 달려있습니다. 비록 감히 반드시 하지 않더라도 만약에 간곡하게 헤아리지 아니하여 먼저 저촉하여 범한 것이 있다면 목 베임을 당한다면 어찌 감히 다시 충간의 말을 하겠습니까.
삼가 들으니, 어른이 "옛날에 유서를 함께 받은 사람이 10여 명 되는데 지금 기억하는 사람은 김종희(金鐘熙)와 유영선(柳永善)이다."라고 말했다 합니다. 어른과 정재는 나이가 모두 많아서 둔 데를 잊어버렸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나이 어린 김 씨와 유 씨도 잊어버려 내놓지 않는 것입니까? 옛날에는 참을 인(忍) 자를 백여 번 쓴 이가 있었는데, 지금은 잊을 망(忘) 자를 쓰는 이가 10여 명이 있으니, 괴상할 뿐입니다.
주석 85)천염지(天厭之)
공자가 위(衛)나라 영공(靈公)의 부인으로 음란한 행위가 있었던 남자(南子)를 만나자 자로(子路)가 기뻐하지 않으니, 공자가 "내가 만약 잘못된 짓을 하였다면 하늘이 나를 버리시리라, 하늘이 나를 버리시리라.〔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라고 맹세했던 고사가 있다. 《논어(論語)》 〈옹야(雍也)〉
주석 86)민민(泯泯)
어리석어 이치에 어두운 모양, 물이 넓고 맑은 모양을 말한다.
주석 87)옹저(癰疽)와 척환(瘠環)을 주인 삼았다면
《맹자(孟子)》 〈만장 상(萬章 上)〉 주자의 주에 의하면, 공자가 노나라 사구를 하다가 노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가셨다가 다시 위나라를 떠나 송나라로 갔는데, 송나라 대부인 사마상퇴(司馬向魋)가 공자를 죽이려 하므로 공자가 화를 피하려고 미복 차림으로 송나라를 떠나 진나라에 이르러 사성정자(司城貞子)를 주인으로 정하신 것이다. 맹자의 말은 공자가 이렇게 곤액을 당하고 있는 때에도 주인 삼을 사람을 가리셨는데, 하물며 제나라나 위나라에서 아무 일도 없을 때에 어찌 옹저(癰疽)나 척환(瘠環)을 주인으로 정하는 일이 있었겠느냐는 말이다.
주석 88)호광(胡廣)처럼 직언하지 못하는 전철
여섯 임금을 섬기는 동안 후한 예우를 받았으나 임기응변에 능했을 뿐 직언을 하지 않아 세상 사람들이 "천하의 중용(中庸)을 지녔다."고 놀렸다. 《후한서(後漢書)》 권44 〈호광열전(胡廣列傳)〉
答遠齋李丈 乙丑六月
澤述於吾丈, 二十六年同門, 當此是非大關, 若視同恒人, 蓄疑而不質, 天必厭之。 近始奉讀扐月下章, 蒙喩以與震賊合其睽離, 而并不問其服罪與否, 已怪其有德者之未必有言。 旣而又聞丈與震已修, 其於憂戀, 無任下誠之禮, 則又知其細故, 誣師噬臍前事, 而竊歎人固未易知者。 有如此而并以疑丈之忘置遺書云者, 未保其必然, 而自愧乎從前之力護無他也。 噫, 丈若同門平常人, 則何必索言至此也? 顧乃平日之自期者, 言言是明道栗谷之高明也, 所求者, 事事是中庸之至善也。 性理專門, 則未嘗不自信其爲湖洛以上之見也。 至於德性之溫粹言動之有, 則又先師之所稱道, 而人無間然者矣, 孰不以為艮門老成, 湖南重望也? 宜其有卓然之見, 皦然之心, 毅然之義, 廊然之辨, 可以開群蒙服衆情, 主斯文裨世道者。 而始之不能據所受遺書 以防認刊之議, 再之旣發五人黜練之言, 而不能對衆中之, 震詰三之斥, 震三說之繆, 罔手筆明的也, 而復對人說, 杏下說不可謂全無。 終而拂拭之, 洗濯之, 始終參差, 言事枘鑿, 莫測其權衡之所存。 惟其丈之爲老成重望也, 故後進少輩, 視以爲則。 是非混淆, 曲直顛倒, 泯泯棼棼, 莫可收拾。 竊爲長者悶之, 爲世道憂之。 夫誣全翁, 以諧世取寵者, 金平默祭文是也, 誣先師, 以認意認敎者, 陰震之筆舌是也。 然金何嘗自言誣全翁, 震亦何嘗自言誣艮翁? 然金之誣語, 隱而難知也, 先師猶逐之若鳥雀。 震之誣, 直而不諱也。 乃有分疏掩護者, 阿附爲黨者, 其亦異哉。 今丈之恕震而欲保合者, 爲體先師之弘和, 而中於節度【體先師弘和, 中於節度, 來書語】, 則先師當年之斥金也, 何苦棄却弘和 而行此隘陋不中節之事乎? 此區區所未解也。 若主癰疽瘠環, 何以爲孔子? 若有認意認敎, 何以爲先師? 非丈辨震誣文乎? 夫癰疽之誣, 時人好事者說, 孟子猶痛斥之, 若使此誣, 造自孔門私淑之列, 以孟子惡惡之嚴, 其不與之, 講修和好, 而行吊哀賀廢之禮, 必矣。 而今認誣之於癰瘠, 大小之差, 不啻霄壞, 則丈之此擧, 尤區區所未鮮也。 凡此皆丈之所自處以中庸者, 而敢以未鮮獻疑甚矣, 厚蔽之難開也。 雖然中庸之難能而民鮮, 孔子之所嘗屢歎。 丈雖明哲, 恐不可易言, 則所可慮者, 非胡廣之塗轍乎。 幸加再思善後, 使慕愛者, 與有光焉如何? 言出赤心, 或傷直, 切聽否, 在尊裁。 雖不敢必, 如不曲諒先以觸犯見誅, 豈敢復進忠諫之言哉?
竊聞丈言, 昔年同受遺書者十餘人, 而今可記者, 金鐘熙, 柳永善。 丈與靜齊 年皆耆老, 猶可曰忘置, 金柳之年少者, 亦皆昏忘而不出耶? 古有忍字百餘, 今有忘字十餘, 可恠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