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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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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족숙(族叔) 가암(可庵) 김낙필(金洛弼) 노인에게 올림(上老可庵叔洛 ○丁巳)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5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5.TXT.0018
족숙(族叔) 가암(可庵) 김낙필(金洛弼) 노인에게 올림
천시(天時)는 인력으로 머물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예제(禮制)는 선왕이 정한 것입니다. 입었던 삼베옷이 칡베옷으로 바뀌고 깔고 앉았던 거적이 흙으로 바람을 막은 방으로 바뀌니, 가슴을 쓸어내리며 개탄하면서 다만 처음 상을 당했을 때처럼 아픈 마음이 절실할 뿐입니다. 이러한 때에 편지를 받았는데, 지극히 정성스럽게 위문해 주셔서 감격하고 또 눈물을 흘렸으니, 완연히 얼굴을 뵙고 속마음을 호소한 것 같았습니다.
화양(華陽)을 왕복하는 천리 길을 아무 탈 없이 편안하셨다 하니, 소식을 듣고 매우 위로가 되고 다행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두 분 황제의 영령에 술잔을 올리며 쇠망한 나라가 이미 아득해졌음을 통탄하고,주 61) 대로(大老 송시열)의 묘소에 절을 올리며 통서가 계승되지 않음을 걱정하셨을 것입니다. 두루 주밀하게 주선하는 것을 바라보시던 끝에 감회가 슬프고 생각이 유유하여 응당 동지로 말할 만한 사람이 있으셨을 터인데, 문하에서 듣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조카의 여묘살이는 선친의 뜻을 잇기 위한 것이라 억지로 힘써 미봉이나 하는 것이 과도하게 칭찬을 입으니 이미 너무도 부끄러워 땀이 흐르는데, 문조(門租 문중 재산)를 내어 여묘살이의 식량을 지급해 주시기까지 하시니 더욱 뜻밖이라서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종족 중에 어려움을 당한 자가 허다한데 유독 조카에게 베풀어 주시는 것은 반드시 예를 집행함에 있어 근사한 명분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있어 염치를 무릅쓰고 받는다면 정당히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 것이 부끄럽고, 끝까지 사양한다면 이미 어른의 뜻에서 나와 여러 사람들의 논의로 정해진 것인 만큼 집안 자제의 도리 상 감히 공손치 못한 거절주 62)을 할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이에 거듭 반복해서 생각한 끝에 한 가지 방안을 얻었습니다. 족숙께서 이 일을 주장하신 것은 아마도 조카인 저를 사적으로 사랑해서가 아니라 다만 이것으로 격려할 거리를 삼아서 능하지 못한 것을 더욱 힘써 그 끝을 신중히 마치도록 하려는 것이고, 또한 집안의 후배들이 조금이라도 본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것은 실로 온 집안의 족속들을 가르치는 공적인 일입니다. 제가 비록 못났으나 감히 지극한 뜻을 받들어 부응할 것을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보내주신 식량과 돈을 이미 삼가 절하고 받았습니다. 다만 마땅히 이 몸을 더욱 공경히 하여 혹시라도 어긋남이 없게 함으로써 보답하지 않는 보답주 63)을 삼겠습니다.
주석 61)두 분……통탄하고
두 분 황제는, 화양의 만동묘에 명나라 의종과 신종의 시위를 배향했으므로 의종 황제와 신종 황제를 가리킨다. 풍천(風泉)은 《시경(詩經)》의 〈비풍(匪風)〉과 〈하천(下泉)〉을 가리키는데, 모두 제후국의 사람들이 주(周) 나라를 생각하여 지은 시이다. 여기서는 망한 명나라를 가리킨다.
주석 62)공손치 못한 거절
《맹자(孟子)》 〈만장 하(萬章下)〉에, "존귀한 분이 물건을 줄 경우 '그분이 이 물건을 취한 것이 의일까 불의일까?' 생각하여 의에 맞은 뒤에 받는다면, 이것을 공손치 못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거절하지 않는 것이다.〔尊者賜之 曰其所取之者 義乎不義乎 而後受之 以是爲不恭 故弗卻也〕"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주석 63)보답하지 않는 보답
원문의 '불보지보(不報爲報)'는 《능엄경(楞嚴經)》의 "이 심신을 가지고 세상의 중생을 받드는 것, 이것을 이름하여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 한다.〔將此心身 奉塵刹 是則名爲報佛恩〕"라는 구절의 주석에 "성과를 얻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은 부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지만 이것을 보답으로 삼으니, 이것이 보답하지 않는 보답이다.〔得聖果度衆生, 無與於報佛, 而以此爲報, 此不報之報也〕"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대개는 벼슬하여 헌신하는 것이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나 비방을 받고 일을 그르쳐 임금에게 심려를 끼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벼슬에서 물러나 소란을 야기하지 않는 것이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된다는 의미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직접적인 보답이 아닌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이 됨으로써 보답하겠다는 뜻이다.
上老可庵叔洛 ○丁巳
天時, 非人力所留, 禮制, 是先王所定。 麻變而爲葛, 苫變而爲垔, 撫膺慨然, 只切如新之痛際, 承下狀, 問訊周摯, 以感以泣, 宛若拜顏訴懷也。
華陽之駕往返千里, 無擾利稅, 聞甚慰幸。 竊想, 酹二帝之靈, 痛風泉之旣邈, 拜大老之墓, 憂統緒之無繼。 觀瞻周旋之餘, 悵然者懷, 悠然者思, 應有可以語同志者, 恨未獲聽於門下也。
姪之廬墓, 爲繼先志, 而勉強彌縫者, 過蒙獎贊, 已極報汗, 至於出門租給廬粮, 尤料外, 而不敢當者。 凡宗族間遭艱者許多, 而獨施於姪者, 必以其近似乎執禮也。 於此而冒受, 則愧非其人, 欲固辭, 則旣已出自尊意, 而定于僉議, 門子弟道, 有不敢爲不恭之卻者。 反覆思惟, 乃得一說, 叔主此擧也, 蓋非私愛於姪, 特以此爲獎勵之資, 使益勉未能, 克愼其終, 且令門內後輩, 得以少有效法, 此實敎誨闔族之公也。 顧雖無狀, 敢不思所以奉副至意乎? 故下送粮錢, 謹已拜領。 第當益衹厥身, 罔或違戾, 以爲不報之報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