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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재 소장학규에게 답함(答悅齋蘇丈學奎 ○甲子)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5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5.TXT.0008
열재 소장학규에게 답함
지난 달 찾아뵌 것은 사실 몇 년간 벼르던 끝에 나온 것인데, 인연이 사람과 어긋나 공교롭게도 출타를 하시어 그리운 마음에 한없이 방황하였습니다. 그래도 오히려 운곡(雲谷)주 34)의 풍물이 옛날의 경관 그대로이고 명덕정(明德亭)주 35) 위의 상쾌한 기운이 사람 품을 파고드는 것을 보고 고인의 빼어난 운치를 손을 내밀면 바로 움켜쥘 수 있을 듯하였으니, 이것이 이미 사람의 뜻을 조금은 강하게 해주었습니다. 얼마 후에 아드님 형제의 안내를 받아 서실로 들어갔는데, 첫째 아드님은 정성스러워 사람을 흡족하게 하고 둘째 아드님은 명민하여 기뻐할 만하였으니, 군자의 전형과 고가(故家)주 36)의 훌륭한 집안 교육이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공경하고 흠모케 하여 마침 높으신 가르침을 입지 못한 것 때문에 크게 탄식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렇게 편지와 아름다운 시주 37)를 당일로 오롯이 보내주셨으니, 정의가 중하고 의리가 바르며 풍격이 아름답고 뜻이 깊어서 깜짝 놀라고 감탄하였습니다. 이에 외람된 생각으로 지난번에 만약 하룻밤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이런 귀중한주 38) 글을 얻어 영원히 산속의 보물로 만들 수 있었겠습니까? 이어 생각하니, 시생과 우리 어른은 선대에 가까운 친척이었고 선친과는 연세가 같았습니다. 부친을 여읜 뒤로는 친소와 귀천을 구분하지 않고 선친과 연세가 같은 분이 있다는 것을 들으면 번번이 서글퍼지며 부모를 끝까지 봉양하지 못한 슬픔주 39)이 흘러나왔습니다. 하물며 우리 어른과 같은 위치에 계신 분이겠습니까? 매번 우리 어른께서 술이 반쯤 취해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의리와 이익을 담론하고 고금을 논평하시는 것을 볼 적마다 풍치와 언론의 풍부함이 선친과 거의 엇비슷하다고 가만히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말하기를, "우리 부친이 살아계시면 아직도 이 어른처럼 건강하시고 아직도 이 어른과 함께 선비들 사이에서 주선할 수 있으셨을텐데." 하였으니, 저도 모르게 줄줄 눈물이 흐르려 했습니다. 말이 여기까지 이르고 보니 우리 두 집안의 친분과 정의는 평상시에 실제로 상상하던 것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또 제가 다행히 우리 어른과 함께 구산옹주 40)의 문하에 출입했고, 또 다행히 시비가 뒤섞인 날을 당하여 잡아 지키는 것이 우리 어른과 같았으니, 마침내 선대의 친밀한 정의가 이에 더욱 친밀해짐을 알았고, 또한 본 바가 서로 부합하는 것이 선대의 우의로 맺어진 두 집안의 행복임을 이로써 알았습니다. 이런 점에 나아가 노소간에 간극이 없는 믿음과 피차 서로 격려하는 도를 구한다면 또한 그것이 실제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연히 《맹자》의 "문왕은 기주에서 태어나 필영에서 죽었으니, 서이 사람이다.〔文王 生於岐周 卒於畢郢 西夷之人也〕"주 41)라고 한 부분을 읽었는데, 제가 여기에 보충하여 "간옹은 완산에서 태어나 부안에서 죽었으니, 호남사람이다."라고 하겠습니다. 호남은 진실로 간옹의 도학이 처음 시작하여 끝을 맺은 땅입니다. 그러므로 돌아가신 후에 이런 망극한 무함을 당하신 것에 대해 완주에는 우리 어른과 여러 분들이 계시고 부안에는 창암과 함재 및 여러 분들이 계시는 만큼 한 조각 마음을 단단히 먹어 일생토록 부처님 같은 은혜를 갚고 큰 붓으로 훤히 밝혀 백세토록 사설(邪說)을 막아서 간옹의 도로 하여금 언제라도 의지할 것이 있게 해야 하니, 하늘의 뜻이 어찌 우연히 그리되겠습니까. 삼가 강성한 힘을 더욱 떨쳐 백번 부러져도 회피하지 않고 아홉 번 죽어도 후회하지 않아서, 맹세코 호남 한 지역이 영원히 후세에 할 말이 있도록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못난 시생도 마땅히 하풍(下風)에 달려가 함께하여 영광이 있도록 하겠습니다.
주석 34)운곡(雲谷)
열재 소학규가 거주했던 완주군 용진면 상운리 운곡을 가리킨다.
주석 35)명덕정(明德亭)
위치는 미상이다. '명덕(明德)'은 대학의 "명명덕(明明德)"에서 그 의미를 취한 것이다.
주석 36)고가(故家)
여러 대에 걸쳐 벼슬하며 살아온 집안을 말한다.
주석 37)편지와 아름다운 시
원문의 '혁제(赫蹄)'는 옛날에 글씨를 쓰는 데 썼던 폭이 좁은 비단을 뜻하는 말인데 종이의 이칭으로 쓰이기도 하고 여기서는 상대방의 편지를 뜻하며, 경십(瓊什)은 상대방이 지은 시나 문장을 높여서 일컫는 말이다.
주석 38)귀중한
원문의 '백붕(百朋)'은 많은 재물을 뜻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소학규가 지어서 보낸 시를 칭송하여 말한 것이다. 붕(朋)은 화폐의 단위이다. 《시경(詩經)》 〈청청자아(菁菁者莪)〉에 "이미 군자를 만나 보니, 나에게 백붕을 주신 듯하네.〔旣見君子 錫我百朋〕" 하였다.
주석 39)부모를……슬픔
원문의 '육아(蓼莪)'는 《시경(詩經)》 소아(小雅) 편명인데,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살아생전에 효도하지 못한 자식의 슬픈 심경을 읊은 시이다.
주석 40)구산옹(臼山翁)
구산은 간재 전우의 호 가운데 하나이다.
주석 41)문왕은……사람이다
《맹자(孟子)》 〈이루하(離婁下)〉에서는 "순임금은 제풍에서 태어나 부하로 옮겼다가 명조에서 죽었으니, 동이의 사람이다. 문왕은 기주에서 태어나서 필영에서 죽으니 서이의 사람이다.〔孟子曰, "舜生於諸馮, 遷於負夏, 卒於鳴條, 東夷之人也. 文王生於岐周, 卒於畢郢, 西夷之人也〕"라고 했다.
答悅齋蘇丈學奎 ○甲子
客月拜門, 實出於累年經擬之餘, 而緣與人違, 巧值駕外, 徊徨眷戀。 猶見雲谷風物, 不改舊觀, 明德亭上, 爽氣襲人, 高人逸韻, 若可挹取, 此已稍強人意。 旣而令似兄弟, 延入書室, 一哥誠欵洽人, 二哥明敏可喜, 君子典型, 故家詩禮, 又令人欽豔, 不須以適違尊誨, 大致於邑。 矧茲赫蹏瓊什, 卽日耑賜, 情重而義正, 格佳而意深, 驚喜感幸。 私竊以爲向使不失一宵之陪話, 安能獲此百朋之手筆, 永作山中之寶哉? 仍念侍生之於吾丈, 先世切戚也, 先人同庚也。 一自失怙以來, 不分親踈貴踐, 聞有與先人同庚者, 輒惕惕動蓼莪悲, 况如吾丈地哉? 每見吾丈酒半酣揮白鬚, 談說義利, 揚扢古今, 暗想風致言論恰恰, 與先人或相上下, 自語於心曰: '吾親而在者, 尙能如此丈之康健, 尙能與此丈周旋於章掖間。' 不覺泫然乎欲淚興。 言到此兩家契誼之, 非比平常, 實際可想。 且澤述幸而與吾丈同出臼門, 又幸而當此是非混淆之日, 所執與吾丈同, 乃知先戚之誼, 於是乎益密。 又以知所見之相符, 兩家先誼之幸福也。 卽此而求之, 老少無間之孚, 彼此相勉之道, 又可知其實際也。 偶誦孟子之言, 曰: "文王生於岐周, 卒於畢郢, 西夷之人也。" 澤述足之, 曰: "艮翁生於完山, 卒於扶風, 湖南之人也。" 湖南, 固艮翁道學, 成始成終之地。 故旣沒而遭此罔極之誣, 在完而有吾丈諸公, 在扶而有鬯涵諸公, 寸心斷斷, 報佛恩於一生, 大筆晳晳, 距邪說於百世, 俾艮翁之道, 始終之有賴, 天意豈偶然哉? 伏願益奮大壯之力, 百折不回, 九死靡悔, 誓使湖南一區, 永有辭於來許, 則侍生之無似, 亦當奔趍下風, 而與有榮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