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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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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사람에게 보냄【대신 지음】(與人【代作】)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4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4.TXT.0050
어떤 사람에게 보냄【대신 지음】
지난번에 옷을 남겨 이별을 하고주 115) 날마다 '화문'이라고 쓰여 있는 기를 바라보니, 아뢰면 들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근래엔 일을 도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간혹 외도에 종사한다 하니, 과연 그런 것입니까? 제가 들은 것이 진짜인가 잘못들은 것입니까? 잘못 들은 것이라면 진실로 다행인데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우리 현자가 일생의 좋은 몸뚱이를 그르치는 것이니, 어떻게 현친에게 달려가겠습니까? 오직 온 집안의 세의는 모두 골육의 휴척과 일체의 통양과 서로 관련되어 있는데, 마치 무관한 것처럼 보아서 일거리라고 여기지 않는다면 이것은 발이 차가운데 심장이 다친 것을 진휼하지 않고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저 인자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것으로 무엇이 이것보다 심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크게 소리치며 자신이 불에 타고 물에 빠진 것처럼 하여 빨리 구할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삼가 깊이 헤아려 들어주기 바랍니다. 도는 하나일 뿐입니다. 하나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인의 도는 이런 것일 뿐입니다. 지극한 효제는 신명에게 통하고 정성과 올바름의 극치에서 천하가 다스려져 화평하며 격물치지를 다하여 만리를 훤히 알게 되고, 인을 행하여 천수를 얻고 천명에 짝하여 복을 가져서 큰 덕을 이루어 하늘이 배양해주는 것을 획득하니, 이것이 이른바 성인의 도입니다. 편안하려고 하는 자는 이 도를 편안히 여길 것이고, 이익을 얻으려는 자는 이익 되게 여길 것이고, 힘쓰려 하는 자는 이것을 힘쓰려 할 것입니다. 이것을 벗어나 도를 하려 한다면 별도의 다른 도를 하는 것이니, 우리가 말하는 도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도는 하나일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천하가 생겨난 지 오래되어서 도 밖에 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도를 배워서 오차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실제는 그르지만 옳은 것 같은 것이 있고, 비록 참됨을 혼란시키더라도 이치에 가까운 듯한 것은 그것이 옳은 것 같고 이치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도를 배우고 싶으나 방향이 헷갈리는 자들이 그것이 참된 것인가 의심하면서도 달려가니, 이것이 진실로 이단이 사람을 미혹시키는 방법입니다. 오늘날 이른바 태을교라는 것이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 중에 정말로 이치에 가까워 옳은 것 같은 것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방법으로 속이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문장은 열여섯 자의 주문이고 그들의 방법은 단지 7일간 암송하면 위로는 천문에 통하고 아래로는 지리를 살피며 중간으로는 인사를 다할 수가 있고 동시에 재앙들이 눈 녹듯 사라지고 봉록이 냇물처럼 모인다는 것입니다. 삼재를 관통하여 통달하고 재앙을 제거하여 경사를 맞이하는 것이 어찌 인정의 지극한 바람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이런 이치가 있다면 위로부터 성현이 어찌 고생하며 이처럼 지극히 간단하고 빨라서 쉽게 천하의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것을 버리고, 반드시 연구하고 찾아서 밝음을 구하고 오래도록 축적하고 덕을 숭상하여 상서로움을 불러오고 경사를 맞이하는 일을 하겠습니까? 이것은 옳은 것과 비슷한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정말로 전혀 옳지 않습니다. 또 이치에 가깝지 않을 뿐 아니라 정말로 크게 이치를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이단은 그들과 짝할 수도 없으니, 요술 중에서도 가장 잡된 것일 뿐인데, 현자는 진실로 도에 뜻이 없는 자가 아니고, 식견의 밝음이 또 추향에 어두운 자가 아닌데, 어쩌면 그리도 도가 아닌 그물에 걸려 곤액을 당하면서도 깨닫지 못한단 말입니까. 참으로 괴이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크게 음특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 근거도 없이 인형을 만들어 놓고 이를 빙자하여 무리를 불러 재산을 편취하는 자루로 삼고 있는데도 세상의 몽매하고 어리석으며 몰지각한 사람들이 그 그물에 걸려들어 그들의 재물창고가 되고 있습니다. 바로 왕법에서 이른바 좌도를 끼고서 사람을 미혹시키는 자들이니 죽여서 용서하지 못할 자들입니다. 현명한 그대들은 법도가 있는 자제로서 어찌 차마 친히 그 당에 들어가겠습니까? 상제와 선령이 위에서 바라보고 있고 성훈과 왕법이 책에 밝게 펼쳐져 있으니, 우러러 보고 굽어 생각하여 어찌 두려워할 줄을 모릅니까? 《시경》에서 말하기를, "화락한 군자여, 복을 구하는 것이 삿되지지 않구나."주 116)라고 하였고, 《서경》에서는 "하늘이 내린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어도 스스로 만든 재앙은 피할 수가 없다"주 117)라고 하였습니다. 옛 현인은 몸을 망치는 술책은 그 실마리가 하나는 아니지만 잡술을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망한다고 했으니, 화복의 사이에서 취하고 버릴 것은 확연합니다. 무릇 이 변변찮은 말은 모두 폐간에서 나왔으니, 만약에 믿지 않는다면 날마다 달려가고 달마다 뛰어간다 하더라도 마이동풍으로 흘려 들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며 강호의 고기처럼 서로 잊어버릴 것입니다. 신경을 쓰고 뜻을 세워서 답장의 편지를 보내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주석 115)옷을 남겨……이별하고
당(唐)나라 한유(韓愈)가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있을 적에 친하게 지냈던 노승 태전(太顚)과 작별하면서 자신의 의복을 남겨 주었다(留衣服爲別)는 이야기가 그의 〈여맹간상서서(與孟簡尙書書)〉에 실려 있다.
주석 116)화락한……않구나
《시경(詩經)》 〈한록(旱麓)〉에 나온다.
주석 117)하늘이……없다
《서경(書經)》 〈태갑(太甲)〉에 나온다.
與人【代作】
自頃畱衣爲別, 日望華門書旆, 是啓似聞。比者, 不惟不是之圖, 反或從事於外道, 其果然乎? 否乎? 吾之所聞, 果眞耶? 誤耶? 誤也誠幸矣, 如其不誤, 誤吾賢一生好箇身子, 何走於賢親? 惟通家誼均, 骨肉休戚一體痛癢相關, 若秦瘠之視, 而不以爲事, 則是足寒而不恤心傷, 唇亡而不知齒冷。其爲不仁不智, 孰甚於此? 是以不免大聲疾呼, 若焚溺之在己, 而思捄拯之急也。幸深諒而敬聽之。夫道一而已矣。一者何? 聖人之道是已。孝弟之至, 通于神明, 誠正之極, 天下治平, 格致之盡, 萬理洞然, 行仁而得壽, 配命以膺福, 以致大德成, 而獲天栽培, 此所謂聖人之道也。安焉者, 安此者也, 利焉者, 利此者也, 勉焉者, 勉此者也。外此而爲道, 則乃別爲一端之道, 非吾所謂道也, 故曰道一而已。蓋自天下生久, 道外之道, 非曰無之, 皆因學道而差者也, 故雖實非而有似是者, 雖亂眞而有近理者, 以其似是而近理也, 故欲學道而迷方者, 疑其爲眞而趨之, 此固異端之惑人者然也。乃若近日所謂太乙敎者, 果何謂者耶? 其中果有近理而似是者乎? 則無怪其可欺以方, 今也則不然。其文則十六字呪咀, 其功則單七日誦讀, 便可以上通天文, 下察地理, 中盡人事, 幷災疹雪消福祿川臻。夫通貫三才, 除殃延慶, 豈不是人情之至願? 茍有此理, 從上聖賢何苦, 舍此至簡至捷, 易遂天下之願者, 必令研索而求明, 積累而崇德, 俾作降祥餘慶之地耶? 是則非惟無似是者而已, 直是萬不是矣。非惟不近理而已, 直是大悖理矣。異端非其倫, 乃妖術之最雜者耳, 賢固非無志於道者, 識解之明, 又非昧於趨向者何? 其困於非道之罔, 而不悟也, 絕可怪也, 此蓋一種大陰慝無狀人, 白地作俑藉此, 爲嘯黨騙財之柄, 而世間太蒙騃, 沒覺人被其籠罩, 而爲之作財庫爾。正王法所謂挾左道而惑人者, 殺無赦者。賢以法拂子弟, 胡忍親入其黨? 上帝先靈, 臨之在上, 聖訓王法, 昭布方冊, 仰瞻俯思, 寧不知懼?《詩》云: "愷悌君子 求福不回"《書》曰: "天作孽猶可違, 自作孽不可逭。" 昔賢有言, 亡身之術, 不一其端, 好雜術者必亡, 禍福之間, 取舍之塗判矣。凡此蕘言, 出自肺肝, 如不見信我, 日斯邁而月斯征, 馬牛之風, 不相及矣, 江湖之魚, 將相忘矣。留神是企, 回音重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