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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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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율부제윤에게 답함(答羅栗夫濟潤 ○戊辰)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4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4.TXT.0047
나율부제윤에게 답함
수백마디의 말을 적어 보내주셔서 사설이 천지에 가득하고 강상이 땅에 떨어진 것을 한탄하고 성리의 설을 밝혀 구하는 것으로 근본적인 급선무라고 했는데, 저는 그렇게는 여기지 않습니다. 오늘날 세도가 무너지고 혼란한 것은 진실로 천수의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자의 허물이라 한다면 사실 근자에 제가들이 리기의 명목으로 동이를 다투고 문호를 분별하여 싸움질만 서로 하고, 윤리를 바르게 하고 은의를 돈독히 하며 예교를 숭상하고 염치를 소중히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뜻을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비들은 실행능력이 없다라고 말하기에 이르렀으니, 우리 유도는 존중받지 못하고 고을에는 선한 풍속이 없어지고 훌륭한 인재들은 버려졌습니다. 이런 폐단을 구하는데 뜻을 둔 자라면 마땅히 전후를 징계하여 거짓을 버리고 참으로 돌아올 겨를조차 없습니다. 현자들은 의론과 쟁변으로 언덕을 태우는 불을 끄려 하니, 이것이 어찌 솜옷을 묶어 기름을 부어 달려가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또 인물성동론은 원만하지 않고 인물성이론은 미진하다고 말하니, 이것은 호락의 제현들이 수백 년 동안 미결한 공안인데주 111) 오늘날 현자들은 쉽게 한마디 말로 양비론을 펴고 있으니, 저는 양가의 제현들이 황천에서 다시 일어나면 항복의 깃발을 세우려 할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대 편지의 논설은 비록 자세하고 인용한 근거가 비록 많을지라도 그 귀착점을 따져보면 인물일원의 성과 부제의 성은 똑같이 품부 받았을 때에는 한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하늘이 만물을 낳았을 때 한 근본으로 되게 한 것이 만약 보내온 편지의 말과 같다면, 이것은 근본을 둘로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품부 받았을 때 개개가 같은 시간이 아니라 하지만 잠시 한순간의 선후도 없습니까? 일원성을 받았을 때 부제의 성은 어떻게 그 사이에 용납되며 부제의 성을 받을 때에는 일원의 성이 어떻게 그 곁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흡사 위연(魏延)과 양의(楊儀)주 112)가 똑같이 재상부에 있어서 마침내는 의견이 서로 갈라진 후에 그만두었다는 것과 같습니다. 비록 머리와 발을 나란히 하여 본령을 둘로 만들려고 하더라도 할 수 없는 것이니, 낙론의 학자들이 놀랄 뿐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막혀서 통하지 않는 것은 또한 호론학자의 분층(分層)주 113)이 오히려 말이 되는 것만 못합니다. 그대의 견해는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주석 111)호락(湖洛)……공안인데
낙하(洛下, 한성)와 호중(湖中, 충청도) 사는 학자들이 펼친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논쟁을 말한다. 이 논쟁은 1678년,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이 유배지에 있는 송시열(宋時烈, 1607~1689)에게 《중용(中庸)》 수장(首章)의 의문을 제기한 〈상우재중용의의문목(上尤齋中庸疑義問目)〉에서 촉발된 조선후기 최대의 논쟁이다. 대체로 낙하(洛下)에 사는 학자들은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지지하였고, 호중(湖中) 학자들은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주장하였는데 '호락논쟁(湖洛論爭)'이라고도 부른다. '인물성이론'을 주장한 호학파의 대표인물 한원진(韓元震, 1682~1751)은 '인물성동(人物性同)'을 주장하는 낙학파의 논리에 대해 '인수무분(人獸無分)', '유석무분(儒釋無分)', '화이무분(華夷無分)'의 논리라고 비판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낙학파에서는 '사람과 물의 본성이 다르다는 인물성이(人物性異)의 논리를 인정하게 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본성도 다르다는 논리가 가능하게 되고, 그렇다면 선인과 악인은 각자의 본성을 따른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으므로 이것이 도덕을 더욱 어지럽히는 주장이다. 성은 같고, 다만 기질의 편전(偏全)이 다를 뿐이다.'라는 요지로 대응하였다.
주석 112)위연(魏延)과 양의(楊儀)
위연은 촉(蜀)의 장수로 여러 번 군공(軍功)을 세웠지만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이 되었으나, 제갈량 생전에는 그의 단점을 알아 절대로 독단적인 행동을 못하도록 했다. 양의(楊儀)는 제갈량이 병이 깊어진 뒤 훗날을 부탁한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제갈량이 죽은 뒤 위연(魏延)을 공격하여 죽이는 공을 세웠다.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양의전(楊儀傳)〉
주석 113)호론학자의 분층(分層)
'인물성이론'을 주장한 호학파의 대표인물 한원진(韓元震, 1682~1751)은 "리는 본래 하나이지만 형기를 초월하여[超形氣] 말한 것이 있고, 기질에 인하여[因氣質] 이름한 것이 있고, 기질과 섞어서[雜氣質] 말한 것이 있다. 형기를 초월하여 말한다면 태극의 명칭이 바로 그것으로서 만물의 리는 동일하며, 기질에 인하여 이름한다면 건순오상의 이름이 바로 그것으로 인간과 사물의 성이 같지 않으며, 기질과 섞어서 말한다면 선악의 성이 바로 그것으로서 사람마다[人人] 물마다[物物] 다르다. 세 가지 말로 성현들이 성을 논한 설을 미루어 본다면,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는 천만 가지의 말들이 '일치되었다가 백가지로 다양하고, 길이 달라도 동일한 곳으로 귀결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른바 '기질에 인하여 이름하였다'는 것은 음에서 음되는 리를 가리켜 순(順)이라 이름하였고, 양에서 양되는 리를 가리켜 건(建)이라 이름한 것이다. 그렇지만 또한 혼명청탁한 기를 섞어서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건되고 순되는 것이 비록 다르지만 본래 선한 리는 그대로 있다. 목에서 인을 가리키고, 금에서 의를 가리키는 것도 의미가 모두 이와 같다. 바라건대 여기에 주시하여 비판하는 데에만 힘쓰지 말았으면 한다.〔理本一也, 而有以超形氣而言者, 有以因氣質而名者, 有以雜氣質而言者. 超形氣而言, 則太極之稱是也, 而萬物之理同矣, 因氣質而名, 則健順五常之名是也, 而人物之性不同矣, 雜氣質而言, 則善惡之性是也, 而人人物物又不同矣. 以此三言推之於聖賢論性之說, 則千言萬語, 或異或同者, 庶見其爲一致而百慮, 殊塗而同歸矣, 所謂因氣質而名者, 於陰指其爲陰之理而名之曰順, 於陽指其爲陽之理而名之曰健. 而亦未甞以氣之昏明淸濁者而雜言之, 故其爲健爲順雖不同, 而其爲本善之理則自若矣, 於木指仁, 於金指義, 義皆如此. 幸望於此更加揩眼, 而毋徒以叱斥爲務也〕"라고 말하였다.
答羅栗夫濟潤 ○戊辰
示及累數百言, 歎邪說之懷襄, 網常之掃地, 欲講明性理之說, 而扶救之, 謂是本原之急務, 竊以爲未然也。今日世道之壞亂, 固關於天數之變。然其可咎於儒者者, 則實以近日諸家, 以理氣之名目, 爭同異分門戶, 矢石相尋, 其於正倫理, 篤恩義, 崇禮敎, 重廉恥, 不甚致意。以至士無實行, 吾道不尊, 鄉無善俗, 棄敗良才。有志捄弊者, 正宜懲前毖後, 棄虛反實之不暇也。賢者乃欲以議論爭辨, 救燎原之火, 是何異於束縕灌油而赴之也? 且謂人物性同之論, 是未圓人物性異之說, 亦未盡, 此是湖洛諸賢, 數百年未決公案, 今賢者, 容易以一言而兩非之, 吾未知兩家諸賢, 復起九原, 其肯竪降旛也。蓋來喩論說雖詳, 引據雖多, 要其歸, 則人物一源之性, 不齊之性, 同受於稟賦時, 一義也。天之生物也, 使之一本, 若如來喩, 則是非二本而何? 且稟賦之際, 非單單只一時間, 而更無一瞬息先後者乎? 受一源性之時, 不齊之性, 何得以容其間? 受不齊性之時, 一源之性, 何得以參其傍乎? 恰如魏延楊儀同在相府, 畢竟乖張而後已。雖欲齊頭拜腳而爲二本領, 亦不可得矣, 非惟洛家之所駭。然其窒碍不通, 又不如湖家分層之猶可說去也。未知盛見又以爲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