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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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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성부에게 답함(答羅性夫 乙丑)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4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4.TXT.0046
나성부에게 답함
답장을 받들어 읽으니 표현이 깔끔하고 논리가 정연하며 글씨체가 반듯하여 이전 편지와 비교해볼 때 마치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 같지 않으니, 3일 만에 괄목상대한다는 말이 헛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문필은 비록 군자가 숭상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문장은 마음의 소리에서 나온 것이고 필획은 마음의 결정에서 나온 것이니, 마음씀씀이의 경건함과 방자함, 사악함과 올바름을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그대의 존양성찰이 더욱더 진보되었음을 여기에서 그 일단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번 권면할 때에 애오라지 팔이 부러진다는 말주 107)을 진언한 것은 병이 나기 전에 예방하려 했던 것인데, 어찌 병은 큰데 약이 작은 것을 염려하여 강하(江河)나 장맛비와 같은 도움을 찾고 있을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사람을 부끄럽고 송구스럽게 합니다. 오늘날 천하가 부서지고 쇠퇴한 것을 돌아보건대, 어찌 다만 술잔이 새고 이삭이 말라빠진 상태이겠습니까. 저는 바야흐로 그대가 세도(世道)의 강하와 장맛비가 되기를 기대하니, 원컨대 그 덕을 깊게 하고 넓게 하여 미래에 그 은혜를 널리 베풀고, 한번 쏟아서 잠시 적셔주는 효과를 이루고 멈추고자 하지 마십시오. 부채를 내려주신 은혜는 진심에서 우러난 선물이라는 것을 아니, 문강(文强)주 108)처럼 부친의 베개를 시원하게 하는 용도로 사용할 뿐입니다. 제갈량처럼 부채로 삼군을 지휘할 능력은 없고, 또 이것은 용렬한 자가 사모할 수 있는 바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애오라지 부채로 먼지를 가려 스스로 깨끗하게 했던 왕도(王導)주 109)처럼만 하면 될 뿐이니, 어찌 굳이 백원(百原)주 110)이 부채질 하지 않은 것을 고상하다고 여길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로부터 거의 몸을 더럽히게 되지 않는 것은 당신의 선물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주석 107)팔이 부러진다는 말
《춘추좌전(春秋左傳)》 정공(定公) 13년에, 범씨(范氏)와 중항씨(中行氏)가 군주를 치려 하자, 제(齊)나라의 고강(高彊)이 "세 차례 팔뚝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고 나서야 좋은 의사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三折肱, 知爲良醫.)〕"라고 했다.
주석 108)문강(文强)
후한(後漢) 황향(黃香)으로 그의 자는 문강(文強)이고 강하(江夏) 안륙(安陸) 사람이다. 아홉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를 섬기는데 지극히 효성스러워 여름에는 베갯머리에서 부채를 부치고 겨울에는 몸으로써 이불을 따뜻하게 하였다. 《후한서(後漢書)》 권80 〈문원열전(文苑列傳)〉
주석 109)왕도(王導)
동진(東晉) 때 사람인 유량(庾亮)은 자가 원규(元規)인데, 국구(國舅)의 신분으로 세 조정에서 잇달아 벼슬하여 권세가 막중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대부분 그를 붙좇았다. 그러자 왕도가 이를 불만스럽게 여기고 있던 차에 유량이 있는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 티끌이 일자, 문득 부채를 들어 서풍을 막으면서 말하기를 "원규의 티끌이 사람을 더럽힌다.〔元規塵汚人〕" 하였다. 《진서(晉書)》 권65 〈왕도열전(王導列傳)〉
주석 110)백원(百原)
백원산(百原山)인데, 여기서는 소옹(邵雍)을 이른다. 하남성(河南省) 휘현(輝縣) 서북에 있는 산으로, 송(宋)나라 소옹이 젊었을 때 은거하여 성정(性情)을 수양하고 학문을 닦았던 곳이다. 그는 백원산에서 《주역(周易)》을 읽고 정좌(靜坐)을 하곤 했는데 한겨울에도 화롯불을 쪼이지 않고 한여름에도 부채질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答羅性夫 乙丑
奉讀惠覆, 辭理潔整, 筆法楷正, 視前書若不出一人手者, 信乎三日刮目之非虛語也。文筆雖非君子之所尚, 文, 心聲; 筆, 心畫, 可以觀用心之敬肆邪正。近日高明存省之越進, 即此而見其一斑也。曩者奉勉, 聊進折肱之言, 欲其病前之防, 孰謂其以病大藥小爲慮, 而求江河霖雨之益哉? 令人慙悚。顧今天下之破残蕭索, 豈但漏巵枯苗而已哉? 吾方以高明期世道之江河霖雨, 願深廣其德, 而普厥施乎將來, 愼毋欲一注乍霑之奏效而止也。便面之惠, 認出心貺, 文強之凉枕已矣。無及武侯之指揮三軍, 又非庸碌者之所得慕想, 則聊以遮塵自潔, 若王導可爾, 何必以百原之不扇爲高哉? 從茲而庶不爲汶汶之歸者, 非高明賜耶? 多謝多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