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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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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구에게 답함(答金聖九 庚辰)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4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4.TXT.0026
김성구에게 답함
오궁(五竆)주 76)과 병마가 함께 도모하고 합세하여 온갖 근심을 끌어다가 이 몸을 공격하여 답답한 심정은 감옥에 들어간 듯하고 숨이 끊어져서 황천에 있는 것 같아 살아있는 모습이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더구나 세상의 변란이 더욱 심하여 날마다 들리는 얘기는 차마 듣지 못할 것들이니, 원컨대 빨리 죽는 게 낮을 듯합니다. 뜻밖에 이때에 욕되게도 생사를 묻는 편지를 받으니, 그 즐거움은 마치 칠흑 같은 방안에 앉아 있다가 한줄기 서광을 보는듯합니다. 근래에 좋은 일 중에 어떤 것이 이보다 나은 것이 있겠습니까. 하물며 다시 책을 읽으며 옛날에 배운 것을 보충한다는 등의 말이 있어 또 그 날마다 독실하게 힘쓰는 낙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 혼탁한 퇴조 속에서 또한 크게 경발됩니다. 근래에 벽촌으로 옮겨 가서 고요하게 익히고 한가로이 수양하며 부모와 처자식이 모두 편안하여 마을의 택한 때와 의를 얻었다는 것을 알았으니, 어찌 이루 다 흠앙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또한 작년 봄부터 소나무 숲속에 흙집을 짓고 황량한 밭 사이에 마를 심어 먹으려 했는데, 하필이면 큰 가뭄을 만나 먹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송진을 먹고 물을 마시면서 세월을 보내고 서실 속에 숨고 책속에 몸을 숨겨서 집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고 있었는데, 우연히 그대가 벽촌을 점쳐 사는 의리와 부합되어서 다행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물으신 옛사람은 생사와 우환에 대해 두 마음을 가지지 않고 수양의 꺼리로 삼는 다는 것이 어찌 크게 헤아릴 만큼 별도의 공부가 있겠습니까. 단지 두 마음을 먹지 않을 뿐이니, 두 마음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단지 이것만 있는 것을 알고 다른 것이 있는 것을 모른다는 것을 말합니다. 요임금과 부열의 재주로도 만약 조금만 그 도를 굽혔다면, 어찌 그들이 밭도랑과 판자로 성을 쌓는데서 곤란을 겪었겠습니까. 오직 그들은 도리를 보았고 이해는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끝내 그 덕을 수양하여 완성을 했습니다.
즉 밭도랑에서 김을 매고 판자로 성을 쌓아도 편안하게 여겨 장차 몸을 마칠 듯하고 조금도 도를 굽혀 이익을 구하는 마음이 없는 것, 이런 것이 바로 공부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저의 용렬하고 비루함으로 혼란이 극에 달해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때를 당했으니, 비록 굶어 죽어 그 시체가 골짜기에 나뒹굴더라도 큰 다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양하여 덕을 이루는 것은 비록 감히 바라지는 못할지라도 혹여 차라리 옥이 되려다 깨질지언정 온전한 기왓장이 되지 않는 방법을 얻었기 때문에 이 방법만 보고 이것만 힘쓰고 있는데 마침 굽어 물어주신 편지를 받아서 질문을 올리니, 잘 모르겠으나, 고견은 어떠합니까?
주석 76)오궁(五窮)
사람을 궁하게 만드는 지궁(智窮), 학궁(學窮), 문궁(文窮), 명궁(命窮), 교궁(交窮) 등 다섯 종류의 궁귀(窮鬼)로, 당(唐)나라 한유(韓愈)의 〈송궁문(送窮文)〉에 보인다.《창려집(昌黎集)》 권36
答金聖九 庚辰
五竆二竪, 同謀合勢, 請援百憂, 攻此一身, 鬱鬱如入獄中, 奄奄若在泉下, 絕無生。況加以世變益甚, 日聞所不忍聞, 惟願速死之爲幸。乃以此時, 辱崇牘問死生, 其爲欣慰, 如坐漆室, 得一線曙光。近來佳況, 孰加於此? 矧復有佔畢簡編, 補綴舊聞等語, 則又知其有日有所事, 胡不慥慥之樂? 其於昏頹警發, 亦大以審。近已移占僻村, 習靜養閒, 奉率俱安。尢得擇里之時義, 豈勝欽仰? 賤子亦自昨春, 築土室於萬松裏, 荒田間種薯爲食, 適值大旱, 無薯可食。獨餐松飲水以度日, 藏書室中, 藏身書中, 不出戶外一步, 自幸偶與賢座占僻之義, 相合也。所詢古人之不貳心於死生憂患, 用作玉成之資者, 豈有別項工夫如盛料哉? 亦只是不貳心, 不貳者何? 只知有此, 而不知有他之謂也。夫以大舜傅說之才, 若少屈其道, 則豈其困於畎畒版築乎? 惟其所視者道理, 而不見利害, 故卒至於玉成其德。即此安於畎築, 而若將終身, 少無屈道求利之心者, 乃是工夫也。況以吾之庸陋, 當亂極無前之時, 雖眞至於餓死而填溝壑, 可謂優幸, 玉成之德, 雖不敢望, 或得爲寧爲玉碎, 不爲瓦全之道, 故見此方, 以此自勉, 而適承俯問, 舉而奉質, 未知高見云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