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열람
  • 디렉토리열람
  • 유형분류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4
  • 김성구에게 답함(答金聖九 戊寅)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4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4.TXT.0024
김성구에게 답함
두 달이나 답장을 늦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감히 못할 일인데, 하물며 제가 존경하는 그대야 더욱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섣달 그믐날 편지가 온 이후 아프지 않은 날이 없었던 관계로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대체로 가난이 오래 되면 병이 되고 병이 오래되면 더욱 가난해져서 마침내 구제할 길이 없게 됩니다. 저 같은 사람은 말할 것도 못되지만, 그대의 인품과 문벌로도 쌀과 소금을 마련하는 것이 어려워서 이 도시에서 거주하게 되었으니, 세상풍조의 야박함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편지를 읽고 매우 슬프니 무슨 말로 위로하겠습니까. 하늘이 사민(四民)을 낳음에 각각 그 맡은 직책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말하면 사는 농·공·상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비록 농·공·상이라도 모두 마땅히 선비의 마음과 선비의 행실이 있어야 하고, 비록 선비일지라도 또한 농·공·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대순(大舜)은 질그릇도 빚고 농사도 지었으며, 부열(傅說)은 판자로 성벽을 쌓았고, 교격(膠鬲)은 물고기를 잡고 소금을 팔았으며, 태공(太公)은 백정의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 풍속은 그렇지 않습니다. 말에게 꼴을 먹이는 것을 물어보면 청렴한 관리가 되는 것이 막히고, 기장 밭의 참새를 쫓으면 은일로 천거 받는 것이 저지되니, 말을 하매 우습습니다. 이런 폐단이 유행하기 때문에 비록 넓은 학문과 고상한 행실이 있더라도 가난을 없애려고 생계를 경영하기만 하면 대번에 손가락질하며 가혹하게 비평하고, 점점 기금(箕錦)주 74)이 되며, 마침내 선비의 반열에 끼워주지 않고서야 그치니, 매우 어질지 않고 대단히 지혜롭지 않은 것입니다.【최근에 음성의 무리인 정운한(鄭雲翰)과 김세기(金世基) 등이 내가 신해년(1911) 겨울에 황금을 가지고 있다가 도둑이 두려워 베를 사서 돌아온 일을 가지고 장사치라고 손가락질을 하였습니다. 또 더 나아가 상중(喪中)의 일을 억지로 만들어 '거상에 무례하다.'고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을 배척하는 악의에서 나온 것으로 비록 말할 거리도 못되지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또한 말에게 꼴을 먹이는 사람을 막고 참새를 쫓는 사람을 저지하는 의론에서 따오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저가 삼가 생각건대, 오늘날 선비로서 법도를 바꾸어 생계를 경영하는 자는 단지 마땅히 선비의 마음과 선비의 행실을 잃지 않아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고자 해야 하고, 그것을 보는 사람도 마땅히 그가 선비의 마음과 선비의 행실이 있는 것으로 그 이름과 실제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되면 도시와 산림을 어찌 구별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비록 그렇지만 이것은 평범한 사람의 입장으로 말한 것입니다. 그대는 평소 수양이 이미 두터운지라, 저는 그대가 마음을 격동시키고 성질을 인내하여 능하지 못했던 것을 잘하게 되고주 75), 더 나아가 대순과 부열 이하의 성현의 덕업을 완성하기를 희망합니다. 그대가 도모하기를 바랍니다.
주석 74)기금(箕錦)
작은 허물을 부풀려서 다른 사람을 참소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詩經)》 〈항백(巷伯)〉에 이르기를, "조금 문채가 있는 것으로, 이 자개 무늬 비단을 이루었도다.〔萋兮斐兮, 成是貝錦〕" 하고, 또 "조금 벌어진 것으로, 남쪽의 기성을 이루는도다.〔哆兮侈兮, 成是南箕〕" 한 데서 온 말이다.
주석 75)마음을……되고
《맹자(孟子)》 〈고자 하(告子下)〉에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큰 사명을 내리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고통스럽게 하고, 그의 힘줄과 뼈를 수고롭게 하고, 그의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의 몸을 궁핍하게 하여, 그가 행하는 일마다 어긋나서 이루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그의 마음을 격동시키고 그의 성내는 것을 굳게 참고 버티도록 하여, 그가 잘하지 못했던 일을 더욱 잘할 수 있게 해 주기 위함이다.〔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라고 하였다.
答金聖九 戊寅
兩朔稽覆, 他猶不敢, 况座下僕所敬乎? 臘晦報至, 無日不痛, 以至於此。蓋貧久爲病, 病久益貧, 竟不可救。如僕者不足言。以座下人地, 亦縁米盐之艱, 而有此城市之住, 世風薄惡, 即此可見。奉簡戚戚, 何辭而慰? 天生四民, 各有其職。然專言則士可以包農、工、商, 雖農、工、商, 皆當有士心士行; 雖士亦可爲農、工、商也。是故大舜陶稼, 傅說版築, 膠鬲魚盐, 太公皷刀。 特東俗不然。問秣馬而清官枳, 揮黍雀而逸薦沮, 言之可笑。此獘之行, 雖有博學高行, 才涉救竆營生, 輒指摘苛評, 轉成箕錦, 至不齒於衣冠之列而後已, 其爲不仁不知也甚矣。【近日陰黨鄭雲翰ㆍ金世基輩, 以此漢辛亥冬, 帶金畏盜, 買布歸放事, 指爲行商。又輾轉勒作喪中事, 號曰居喪無禮。此則出於擠人惡意, 雖不足道, 其所以有此口者, 亦未嘗不藉於枳問馬、沮揮雀之論也。】 僕竊謂今日士子之變規營生者, 只當不失士心士行, 求不自愧, 人之觀者亦當以其有士心士行而許其名實, 則城市雲林, 何足別也? 雖然, 此以常調者言。若座下則素養既厚, 吾以動心忍性, 增益不能, 進而成舜、傅以下聖賢之德業望之, 惟座下圖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