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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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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구에게 답함(答金聖九 丁卯)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4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4.TXT.0019
김성구에게 답함
편지를 받은 지 이미 60일이 되었습니다. 편지에서 매미가 이제는 적막하여 소리가 없고 시물도 이미 변했다고 했으니, 인생도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옛날에 회옹(주희)이 매미소리를 듣고 여백공(여조겸)을 그리워하고 다시 세월이 유수 같다고 한탄한 것주 65)은 진실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갈대에 흰 이슬이 내렸다주 66) 한 것이 바로 이때이니, 시인이 내 마음을 먼저 알아챘음을 깨달았습니다. 멀리 생각할 때 신령한 골짜기를 점쳐 옮겨가 은둔하여 고반을 잊을 수 없다는 것주 67)을 기뻐한 것이고 벌단주 68)의 자신의 힘으로 먹고69)69) 자신의 힘으로 먹고 : 《시경(詩經)》 〈벌단(伐檀)〉에 "끙끙 박달나무를 베어 왔거늘 하수 물가에 버려두니, 하수가 맑고 또 물결이 일도다. 심지 않고 거두지 않으면 어찌 벼 300전을 취할 것이며, 수렵하지 않으면 어찌 너의 뜰에 매달려 있는 담비를 보겠냐고 하니, 저 군자여, 공밥을 먹지 않도다.〔坎坎伐檀兮 寘之河之干兮 河水淸且漣 不稼不穡 胡取禾三百廛 不狩不獵 胡瞻爾庭有縣兮 彼君子兮 不素餐兮〕" 하였다.
사는 것을 달게 여긴 것이니 그대의 학력이 이에 굳세졌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더욱 길이 막혀 한탄을 느끼게 되니, 시인이 친히 경험했던 것입니다. 나의 생계는 가을인데도 봄처럼 식량이 떨어져 죽어서 구렁에 나뒹구는 것은 기대하지 않고 망각하지 않아도 바로 여기 있으니 우스울 뿐입니다. 물으신 영재에게 의탁한다는 것은 근심이 끝이 없어 제자를 바라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학사에 있는 젊은이 중에서 구해보면 계란을 보고 새벽에 울 닭을 구하는 것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바둑소리를 들으면서도 고니를 잡을 생각을 하는 자도 있고, 날카롭게 나갔다가 재빨리 물러나는 자도 있으며,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하는 자도 있어서, 3년 동안 온 마음으로 오로지 하는 자는 적으니, 어떻게 이른바 맡길 수 있는 것이 있겠습니까. 매번 귀 학사의 학자를 떠올려볼 때 고상한 뜻과 법도 있는 행동으로 떨치고 닦아서 정해지고 행동에 법도가 있어서 변동이 있지 않습니다. 총괄적으로 말하면 배우는 자는 뜻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실상도 천루하고 가르치는 기술도 매우 소홀합니다. 추론하여 말하면 가르치는 자가 기술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세상의 국면도 이미 바뀌어 위에서 권면하고 징계하는 것이 없습니다. 권면하고 징계하는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향인이 이를 매우 천시함에 이르렀고 부모도 미워함에까지 이르렀으니, 시세가 이와 같음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매번 스스로 생각할 때 오늘날 넓은 소매와 상투는 훗날에 깎이고 좁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보증하기 어렵고, 오늘날 암송하고 읽는 책은 훗날 방언이 되지 않는다고 보증하기 어려우니, 우리가 가르치는 것은 꼭 원수에게 무기를 빌려주고 도둑에게 쌀을 싸다 주는 격입니다. 나 또한 장차 그만두는 것이 옳겠습니까. 갑자기 다시 스스로 해명하길, 《예기》에는 이르지 않은 것은 억측하지 말라는 문장이 있고, 《논어》에는 믿지 못할 사람을 억측하지 말라는 교훈이 있으니, 오늘 일은 오늘 해야 되는데 또한 이것을 만약 그만둔다면 독서하는 자와 종자는 끊어질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 시세에도 불구하고 그가 오히려 머리를 굽히고 구하러 왔으니, 또한 특이합니다. 다시 힘써 서로 함께 이와 같이 하여 몇 년을 지냈는데도 피차간에 보충되는 것이 없었으니, 부끄러워 땀이 납니다. 그대가 이미 시험한 하나의 묘책을 보여주셔서 저로 하여금 종사토록 하면 어떠하겠습니까.
서원은 복원이든 신설이든 할 것 없이 모두 부당합니다. 오늘 보내신 편지에서 하신 말씀은 매우 바르니, 제가 일찍이 단을 설치하여 제향하는 것에 참가하지 않은 것도 이런 뜻입니다. 일찍이 《연재집》을 보았는데 서원의 유지(遺址)에서 단을 설치하여 제향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선사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제 두 문하의 사람들이 대부분 복원한 서원의 제사에 참여했다고 들었는데, 이것은 또 무엇 때문입니까?
어떤 학인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하는데 만약 삭발하여 모양을 바꾸면 소원을 이룰 수있지만 중화와 오랑캐의 경계를 무너뜨릴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삭발하면 원수는 보복하겠지만 오랑캐가 되고, 삭발하지 않으면 중화의 모습은 보존하겠지만 불효자 된다고 말하니, 이 사람의 의리에 처함은 어떻게 해야 옳습니까?
주석 65)엣날에……한탄 한 것은
"수일 이래로 매미소리가 더욱 맑으니, 이를 들을 때마다 고상한 풍모를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數日來 蟬聲益淸 每聽之 未嘗不懷高風也〕" 《주자대전(朱子大全》 권33 〈답여백공(答呂伯恭)〉
주석 66)갈대에……내렸다
《시경(詩經)》 〈진풍(秦風)〉·〈겸가(蒹葭)〉에 "긴 갈대 푸르른데, 흰 이슬이 서리가 되었네. 저기 바로 저 사람이 물 저편에 있도다. 물길 거슬러 올라가나, 험한 길이 멀기도 하네. ……〔蒹葭蒼蒼, 白露爲霜 所謂伊人. 在水一方, 遡洄從之. 道阻且長 ……〕" 한 데서 온 말이다.
주석 67)고반을……없다는 것
산림에 은거하며 안빈낙도하는 은사의 생활을 즐긴다는 말이다. 고반(考盤)은 고반(考槃)과 같다. 《시경(詩經)》 〈위풍(衛風)·고반(考槃)〉에 "산골 시냇가에서 한가히 소요하나니, 현인의 마음이 넉넉하도다.〔考槃在澗, 碩人之寬〕"라는 말이 나온다.
주석 68)벌단
《시경(詩經)》 〈위풍(魏風)〉의 편명(篇名)이다. 이 시의 뜻은 관원이 직무를 태만히 한 채 국록(國祿)을 축내면 안 된다고 풍자한 것이다. 그런데 시 속에는 "심지 않고 수확하지 않으면, 어떻게 벼 삼백 다발을 거두리오.〔不稼不穡, 胡取禾三百廛兮〕"라는 표현이 있는데, 김택술은 이 시구를 단장취의하여 스스로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삶을 긍정하는 근거로 삼은 것이다.
答金聖九 丁卯
奉書已浹六旬矣。書中清蟬, 今寂無聲, 時物既變, 人生安得不然? 昔晦翁之聞蟬而懷伯恭, 復嘆歲月之如流者, 良有以也。蒹葭白露, 此正其時, 方覺詩人之先獲我心。遙想移卜靈谷, 嘉遯自得, 樂考槃之不諼, 甘伐檀之食力, 足下學力, 於是爲壯。尢覺道阻之嘆, 詩人親經歷也。鄙人計活, 秋亦春也, 溝壑之歸, 不待不忘, 而即在好笑。所詢英才可託者, 可見憂無疆, 望弟子之意。然欲求乎鄙社少輩, 則不幾乎見卵而求時者乎? 蓋聽奕而思鹄者有之矣, 進銳而退速者有之矣, 強其所不欲者有之矣, 三年久而一心專者, 亦寡矣, 安有所謂可託與否? 每舉貴社學者, 志尚之定, 動止之法, 以振厲之, 而殊未有動變者。蓋總而言之, 非惟學之者無志, 其實淺陋, 敎術之全疎也。推而言之, 亦非惟敎者之無術, 世局已革, 無有在上而勸懲。非惟無勸懲, 至於鄉人賤之甚, 而至於父母惡之, 時勢如此, 亦柰如之何哉? 每自思今日袖髻, 難保他日不爲薙窄, 今日誦讀, 難保他日不爲侏離, 則吾之所敎, 適所以藉寇兵, 而齎盜糧也。我且已之可乎? 忽復自解曰,《記》有毋測未至之文,《語》有不億不信之訓, 今日事可今日爲之, 且此若已之, 讀書者和種子也絕。且以此日時勢, 渠猶屈首來求, 亦可異也。乃復鼂勉相與, 如此之間, 悠悠數年, 彼此無補, 足爲赧汗。足下幸示以一副妙策於已試之餘, 俾知從事如何?
書院, 不問復設新設, 幷不當。今日來敎甚正, 鄙之曾不參於壇享者, 亦此義也。曾見《淵齋集》, 不許院址壇享, 先師亦然。今聞兩門人多參於復院之祭, 此又何哉?
有學人欲報父讐, 若削髪變形則可得遂願, 而華夷之防又不可毀, 削之則讐雖復, 而陷夷狄, 不削則華雖保, 而陷不孝云云, 此人處義, 如何則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