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열람
  • 디렉토리열람
  • 유형분류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4
  • 김성구에게 답함(答金聖九 丁卯)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4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4.TXT.0018
김성구에게 답함
제가 생각할 때 오늘날 선비가 법도를 바꾸는 것은, 한 사람의 입장으로 말하면 진실로 인사의 실수이지만, 천하의 입장에서 말하면 또한 운수와 관련이 있으니 인력으로는 간여할 수가 없습니다. 그 부형이 된 자들은 비록 자기 혼자 이런 일을 당한 것 같지만 사실은 천하의 공통된 근심입니다. 그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 진실로 방지하고 막는 방법을 다해야 하고, 이미 그렇게 되어서 돌이킬 수 없다면 또한 이치대로 순응하여 처리할 바를 알아야 합니다. 그대 동생의 일과 같은 경우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의 가슴 속에는 본디 하나의 춘추대의와 같은 사업이 있어서 사람들이 들을 만한 점이 충분히 있으니, 결단코 도도하게 시류를 쫓는 자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유문(儒門)의 영광(靈光)주 63)인 지산(志山 김복한(金福漢)) 선생을 아버지로 삼고 국사(國士)로 촉망받는 김노동(金魯東)을 형으로 삼았는데도 이런 일이 있었으니, 이것은 그대 동생이 생각하지 못하여 생긴 실수이고 그대가 마음을 어떻게 가누어야 할지 모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비록 그러하더라도 선친의 신령이 지하에서 인도하고 그대의 동생이 밝게 깨달을 것이니, 저는 그가 번연히 생각을 바꾸어서 구업(舊業)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장차 오래지 않을 것임을 장담합니다. 그대는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약 빠른 시일 내에 그가 마음 돌리는 것을 보지 못한다면, 성현이 마음이 바르지 못한 것을 경계한 것이 있고 '부모는 오직 자식의 병을 근심한다.'주 64)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다만 마땅히 나의 정성을 쌓아서 감동을 시켜야 할 뿐이고 결코 계속 애태우면서 성정의 바름을 잃어 혹여 건강을 손상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대가 조금이라도 이 점을 소홀히 한다면 위로 선영감(先令監)이 부탁한 중대함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또한 그대가 식견이 높고 수양이 두터워서 반드시 맞닥뜨린 거슬림으로 인하여 원대한 사업을 방해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또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서로 친애함이 깊은 까닭에 멀리 염려한 것입니다. 부디 잘 살피고 나무라지 마십시오. 그대 동생에 대해 몇 마디 충고를 하여 이렇게 아울러 동봉하여 보내니, 이는 교제의 우의로 볼 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도를 닦으며 행적을 숨긴지라 얼굴을 뵐 길이 없음에 바람결에 슬퍼합니다.
근래에 이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철거된 사액서원을 다시 세운다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은 "이미 조정의 명으로 철거되었는데 임금이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 다시 세우는 것은 매우 온당치 않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도의 흥망은 나라의 흥망보다도 중요하니, 도의 흥기를 바란다면 나라가 망한 것으로 혐의를 삼아서는 안 된다."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새로 세우는 것은 괜찮지만 다시 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니, 또 어떤 사람이 "옛 서원도 오히려 이미 철거되었다는 이유로 감히 복구하지 못하는데, 새로 세우는 것을 더욱 어찌 감히 할 수 있겠는가. 또 새 서원을 허락하고 옛 서원을 금지한다면 이것은 근래의 현인은 후대하고 선대의 현인은 박대하는 것이니 옳겠는가?"라고 합니다. 이 일은 어떻게 판단해야만 중도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훼철된 서원에서 단을 차려 제향을 지낼 때에 제관(祭官)을 요청받아도 일찍이 가서 참석하지 않았으니, 서원을 복구하는 것은 어찌 논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적이 의심되는 것이 있습니다. 근세 유문(儒門)의 대가(大家)에서 많이들 새 서원을 창건하여 근래의 현인을 받들어 모시는데 비난하는 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유독 선현의 서원에 대해서만 감히 복구하지 못한다면 어찌 치우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새로 창설하는 것과 아울러 모두 옳지 않아서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되고, 유문이 거행한 바가 비난을 받지 않은 것을 예법에 타당하다고 여깁니까? 제대로 알려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주석 63)영광(靈光)
세상에 얻기 어려운 훌륭한 사람이나 물건을 비유한다.
주석 64)부모는……근심한다
맹무백(孟武伯)에 효도를 묻자, 공자는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걱정한다.[父母唯其疾之憂]"라고 하였다. 《논어》 〈위정(爲政)〉
答金聖九 丁卯
竊以爲今日士子之改度, 自一人而言, 固人事之失也, 自天下而言, 則亦運氣之關, 而非人力所與。爲其父兄者, 雖若自我獨當, 其實天下之通患也。未然之前, 固當盡防杜之道; 既然而不可回, 則亦可以理遣而知所處矣。若令弟之事, 又有異焉。蓋其胸中亦自有一副《春秋》一般事業, 足以聽聞於人者, 決非滔滔趍風者比。然以儒門靈光志山先生爲父, 以國士屬望金魯東爲兄而有此, 則是令弟不思之失, 而宜足下之不知爲心也。雖然, 先靈之所冥誘, 令弟之所明悟, 吾知其幡然改圖, 能復舊業者, 將非久也, 足下可勿慮矣。如未及早見其回, 聖賢有有所不正之戒、父母唯憂之訓, 但當積吾誠而致其感而已, 決不可一向焦灼, 有失性情之正而或致損攝之歸也。若足下少忽於此, 則非所以上念先令監付託之重也。吾又知足下識高而養厚, 必不以所遇之拂逆妨遠大之業。然猶且云然者, 以其相愛也深, 故獻慮也遠, 庶可知照不讁? 令弟許有數語忠告, 茲幷胎往, 是在情契, 不得不然。道修跡蟄, 欲面無由, 臨風沖悵。
近日此省多人, 復立既撤之賜額院。有云"既以朝令撤, 而幸其無君而復設, 大未安者", 有云"道之興亡, 重於國之興亡, 欲道之興, 不以國亡爲嫌者"。有云"新設可也, 復設未可"者, 則又有云"舊院尚以既撤, 而不敢復, 則新設尢豈敢乎? 且許新而禁舊, 則是厚近賢而薄先賢, 其可乎"者。未知此事如何評斷, 則得其中乎? 澤述則於毀院壇享祭官之請, 不曾往參, 則其復院也, 又何論? 然竊有所疑者, 近世儒門大家, 多新創院宇, 尊奉近賢, 而未見有非議者, 獨於復先賢之院也不敢爲, 則豈不爲偏乎? 抑幷與新創者, 非是而不可, 以儒門所行未見非議, 爲得當於禮法耶? 示破之爲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