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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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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구노동에게 보냄(與金聖九 魯東○庚申)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4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4.TXT.0001
김성구노동에게 보냄
저는 일찍이 그대가 순씨(筍氏)의 용주 1)이며 사씨(謝氏)의 보배주 2)라고 들었는데, 진실로 묘령(竗齡)의 영재로서 그 재주와 뛰어난 식견과 돈독한 행실이 이와 같이 탁월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를 채워 전진한다면 사씨의 보배나 순씨의 용도 비루할 것이니 어찌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유문(儒門)에서 석진(席珍)주 3)을 중시하고 문명의 세계에서 현룡(見龍)주 4)을 우러르니, 한 집안의 경사스러운 복은 굳이 축하할 필요도 없고, 축하할 만한 것은 세도(世道)에 다행스럽다는 것입니다. 아, 도가 천하에 밝혀지기 어려운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지나치고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하여 중도를 행하는 사람을 얻기 어렵고, 의론의 동이(同異)가 부류에 따라 달리하여 공평한 마음을 지닌 사람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과불급의 차이 때문에 대도가 실행되지 못하고, 의론의 동이에 대해 자신을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정밀한 의리가 항상 어둡습니다. 지금 그대는 치우치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은 재주로 편당도 없고 치우침도 없는 마음을 보존하고 있으니, 도를 밝히는 일에 있어서는 절반 넘게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나 중도를 행하는 사람도 또한 학문을 좋아해야 하고, 공평한 마음을 지닌 사람도 또한 반드시 견해를 올바르게 해야 합니다. 자질은 아름다운데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 큰 도를 깨우치기 어려우니 이것이 근심거리이고, 마음은 공평한데 견해가 바르지 않으면 쇳덩이를 은이라 부르게 되니 이것이 두려운 점입니다. 그렇다면 재주가 치우쳐 중도를 잃은 자, 스스로 옳다고 하여 이치에 어두운 자와 더불어 똑같이 도를 밝힐 수 없는 데에 귀결됩니다. 학문을 좋아하는 것은 견해를 바르게 하는 바탕이 되고 견해가 바른 것은 학문을 좋아한다는 증거입니다. 학문을 좋아하여 하나의 이치도 궁구하지 않음이 없는 수준에 이르고, 견해가 바르게 되어 터럭만큼도 오차가 없는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도를 밝힌 지극한 공이요, 우리 유자들의 능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일생의 많은 일들 중에서도 큰일이니 힘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감히 힘쓰기를 바라니 그대는 이를 도모하기 바랍니다. 저 같은 사람은 학문을 논하자면 빙산의 일각처럼 초라하고 그림속의 떡처럼 실질이 없으며, 그 병폐를 말하자면 구멍이 백 개이고 상처가 천개입니다. 외람되게 교유하게 되었으니, 경계의 말을 기다릴 겨를도 없어야 합니다. 다만 그대에게 일시의 금란지교(金蘭之交)주 5)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세한송백(歲寒松柏)주 6)을 의탁하기 때문에 참람됨과 망령됨을 깨닫지 못하고 먼저 작은 정성을 바쳐 애오라지 종신토록 학업을 권면하고 과실을 바로잡고자 했습니다. 너그럽게 헤아리고 꾸짖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석 1)순씨의 용
후한(後漢) 순숙(荀淑)의 여덟 아들인 순검(荀儉), 순곤(荀緄), 순정(荀靖), 순도(荀燾), 순왕(荀汪), 순상(荀爽), 순숙(荀肅), 순전(荀專)을 가리킨다. 이 여덟 사람이 모두 재덕(才德)이 출중하였기 때문에 당시에 팔룡(八龍)이라고 일컬었다. 《후한서(後漢書)》 권62 〈순숙열전(荀淑列傳)〉이후 다른 사람의 재주 있는 자제를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주석 2)사씨의 보배
동진(東晋)의 재상 사안(謝安)의 자질들을 비유한 말이다. 진(晉)나라 때 큰 문벌을 이루었던 사안이 자질(子姪)들에게 "어찌하여 사람들은 자기 자제가 출중하기를 바라는가?" 하고 묻자, 조카 사현(謝玄)이 "비유하자면 마치 지란(芝蘭)과 옥수(玉樹)가 자기 집 뜰에 자라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한 데서 유래한 말로, 훌륭한 자제가 많음을 뜻한다. 《진서(晉書)》 권79 〈사현전(謝玄傳)〉
주석 3)석진(席珍)
좌석 위에 앉아 있는 보배[席上之珍]라는 뜻으로, 아름답고 뛰어난 재주와 학문이 있는 유자(儒者)를 뜻하는 말이다. 《예기(禮器)》 〈유행(儒行)〉에 "선비는 자리 위의 보배를 갖추어 두고 나라의 초빙을 기다린다.〔儒有席上之珍, 以待聘〕" 하였다.
주석 4)현룡(見龍)
아직 뜻을 얻지 못한 인재를 상징한다. 《주역(周易)》 〈건괘(乾卦)〉 구이효(九二爻)에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아야 이롭다.〔見龍在田, 利見大人〕" 하였다.
주석 5)금란지교(金蘭之交)
《주역(周易)》 〈계사전 하(繫辭傳下)〉에서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하니, 그 날카로움이 쇠를 절단한다. 마음을 함께하는 말은 그 향기로움이 난초와 같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라고 하였다.
주석 6)세한송백(歲寒松柏)
추운 계절을 꿋꿋이 견뎌내는 절조(節操)를 말한다. 추운 계절에도 늘 푸른 송백처럼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켜 나간다는 말이다.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알 수 있다.〔子曰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彫也〕" 하였다.
與金聖九 魯東○庚申
僕曾聞足下爲荀氏之龍、謝氏之寶, 實未圖竗齡英材, 超識敦行, 若是其卓卓也。充此而進, 謝寶荀龍, 陋矣奚道? 儒門之席珍是重, 文明之見龍是仰, 一家慶福不須賀, 所可賀者世道幸。鳴呼, 道之難明於天下也久矣。知愚之過不及也, 而中行之難得, 同異之殊倫也, 而公心之罕覯。過不及之差也, 故大道不行; 同異之自是也, 故精義常晦。今足下以不偏不倚之材, 存無黨無偏之心, 其於明道也, 思過半矣。然中行矣, 又須好學; 公心矣, 又須正見。質美而不好學, 則大道難聞是患; 心公而見不正, 則喚鐵作銀可畏, 其與偏材之失中、自是之昧理者, 同歸於不能明道一也。蓋好學者, 所以爲正見地也; 見正者, 乃好學之驗也。好學而至於無一理之不究, 見正而至於無一毫之或差, 然後始可謂明道之極功、吾儒之能事。此是一生大小大事, 不容不加勉者, 故敢以仰勗, 惟足下圖之。至如僕者, 論其學則氷山畵餅, 語其病則百孔千瘡, 既蒙辱交, 宜俟箴砭之不暇, 而特於足下不欲以一時之金蘭相擬, 惟歲寒之松柏是託。故不覺僭妄, 先效微忱, 聊作終身業勸過規之地, 惟冀恕究不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