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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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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극경에게 답함(答吳極卿 己卯)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3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3.TXT.0025
오극경에게 답함
편지를 주고받음에 진실로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것 같으니, 어떤 즐거움이 이 같으며 어떤 행운이 이와 같겠습니까. 또한 왕래하는 편지의 내용이 으레 하는, 안부를 묻는 한가한 말이 아니고, 모두 배움에 관한 설명과 예에 관한 논의이니, 그 공부는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고 그 도움은 덕행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편지에서 "하늘이 앞서지도 않고 뒤지지도 않게 우리 두 사람을 똑같은 세상에 태어나도록 한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으니 단지 한때의 기쁨과 다행만이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도라고 하는 것은 천하의 공론이니 의론이 맞지 않아 구차하게 대답하지 않는 경우가 있거니와 보내신 편지에서 염려하신 어긋나는 폐단이 있겠습니까. 무릇 세상에서 도를 논하다가 끝내 서로 어긋나는 것은 모두 사적인 것입니다. 일종의 사설(邪說)이 도를 해치고 세상을 재앙에 빠뜨리는 것은 이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맹자는 이를 막으라는 가르침을 내리고 주자는 그 사람을 목 베라는 교훈을 주었습니다주 88). 이제 저의 허약한 자질로 맹자와 주자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는 스승을 무함한 자의 사설(邪說)을 변박(辨駁)하고자 했는데, 변박을 미처 완벽히 하기도 전에 제 자신이 먼저 재앙에 걸려들었습니다. 그러나 마음만은 굳세게 의리를 밝히고 스승을 보호하는 데에서 나오고 일찍이 한 터럭이라도 사적인 의도와 객기가 있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뜻을 함께하는 벗들과 더불어 고금의 일을 논하고 의심스럽고 불명확한 내용을 강론했는데, 비록 한두 가지 다름이 있었지만 어찌 감히 대번에 사적인 의도와 객기를 부려서 불평을 야기하여 어긋남에 이르렀겠습니까. 제가 비록 못났지만 결단코 그런 사람이 아니니 우려하지 마십시오.
계배(繼配)의 별독별탁(別櫝別卓)은 감히 퇴옹이 맞지 않다고 말거리를 찾는 것이 아니고, 또한 초배(初配)와 차별이 있다고 말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세속 사람들이 삼취 이후에 별독별탁하는 것은 실제로 차별에서 나왔으니 이것은 예가 아닙니다. 퇴옹이 조처한 바와 세속이 행하는 것이 뜻은 비록 같지 않을지라도 어찌 세속 사람들이 선현에게 핑계대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저는 처음부터 이 점을 염려하여 말한 것일 뿐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가례증해(家禮增解)》에서 인용한 퇴계의 설이 정도가에게 준 편지와는 서로 상반된다는 것은 이 설명 중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어머니 같은 경우는 아마도 《예기》 〈내칙(內則)〉에 이른바 '시아버지가 죽으면 시어머니는 늙은 것이다'라는 것으로, 이미 주부의 일을 며느리에게[於婦] 맡겼을 것이니, 아마도 상복을 입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고, 마지막에는 《예기》 〈상복소기〉에 근거하여 "그 남편이 비록 이미 죽었다 하더라도 그 처[其妻]는 또한 마땅히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부(於婦)'라고 할 때의 부(婦)에 해당하는 자는 남편을 따라 상복을 입는 자가 아닙니까? 또 '기처(其妻)라고 할 때의 처(妻)에 해당하는 자는 이미 늙어버린 시어머니가 아닙니까? 형은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어머니와 조모가 모두 살아계시지 않은 이후에 처가 마땅히 남편을 따라 상복을 입는다는 뜻은 이 설명 속에 있습니까? 자세히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사계(김장생)가 이 설명을 본 것 또한 저 견해와 같습니다. 여기에 기록하여 올립니다.
우리들은 세상의 막대한 예절에 대해 오히려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하는데, 어찌 작고 작은 것을 살피겠습니까? 깨우쳐 주신 것은 이런 것들인데 저의 견해도 그렇습니다. 다만 우연히 《퇴계집》을 보다가 이런 의문을 제기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심력이 미칠 수 있는 것은 먼저 한두 가지를 행하여 옛것을 점차 회복하는 계기로 삼으니, 우리들은 또한 이런 의미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논의한 포은의 일은 제 설명에 대하여 간혹 문답이 맞지 않은 것이 있거나 간혹 다른 사람의 말을 다하지 못한 것이 있을 수도 있으니, 이른바 편지는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잠시 놓아두었다가 만나서 토론할 수 있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주석 88)맹자는……주었습니다
《맹자(孟子)》 〈공손추 하(公孫丑下)〉편에서는 "능히 양묵을 막을 것을 말하는 자는 성인의 무리이다〔能言距楊墨者, 聖人之徒也〕"라 했고, 주자의 《맹자집주(孟子集註)》에서는 "사설이 정도를 해치는 것은 사람마다 공격할 수 있는 것이며 반드시 성현만이 하는 것이 아니니, 《춘추(春秋)》의 필법에 난신적자는 사람마다 죽일 수 있는 것이며 사사만이 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蓋邪說害正, 人人得而攻之, 不必聖賢, 如春秋之法, 亂臣賊子, 人人得而誅之, 不必士師也〕"라고 했다.
答吳極卿 己卯
書往書來, 眞朝暮遇也, 何喜如之! 何幸如之! 又其所以往來者, 非例寒暄間言語, 而皆學說禮論, 功存竆格, 而資成德行者。 則來喻"天之不先不後, 而生吾兩人於并世者, 似不偶然, 而非但爲一時之喜幸也。" 盖道者, 天下之公論, 論不合而不茍然唯諾, 則有之焉, 有來喻所慮乖張之弊也? 凡世之論道, 而終至於乖張者, 皆私也。 若乃一種邪說, 足以害道而禍世者, 則不在此限, 故孟子有言距之訓, 朱子有人誅之教。 今以弟之孱劣, 誤學孟朱, 欲辨誣師者之邪說, 辨未及盡, 而身先嬰禍。 然其心則斷斷然出於明義而閑師, 不曾一毫使得私意客氣也。 况與同志之友論古今講疑晦也, 雖有一二異同, 何敢遽用意氣, 致不平而至乖張乎? 弟雖無狀, 决非其人, 勿慮焉。
繼配之別櫝別卓, 非敢索言退翁之未當, 亦非謂有差別於初配。 但以世俗人之三娶以後, 別櫝別卓則實出於差別, 是非禮也。 退翁所處, 世俗所行, 意雖不同, 安知世俗人之不藉口於先賢乎? 區區從初以是爲慮而言之, 非有他意也。 增解所引退溪說之與答鄭道可書相反者, 即於此說中見之矣。 始曰'若其母, 恐所謂舅沒則姑老, 已付主婦之事於婦矣, 疑若不當服。' 終據喪服小記, 而曰'其夫雖已死, 其妻亦當服。'
於婦之婦字, 非從夫服者乎? 其妻之妻字, 非已老之姑乎? 兄於何見得? 母若祖母, 俱不在然後, 妻當從夫服之意, 於此說中乎? 願更詳之也。 沙溪之看此說, 亦如鄙見者, 茲錄呈。 吾輩於世莫大之節, 猶惧不守, 何察察於小小? 所喻是矣, 鄙見亦然。 但偶見《退集》而發此疑問爾。 然心力可及者, 先自一二行之, 以爲復古之漸, 吾輩亦不可忘此意也。 所論圃隱事, 於鄙說或有問答不值者, 或有不盡人言者, 所謂書不如靣者此也。 且可閣置, 以俟面討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