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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백에게 답함(答金周伯 辛卯)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3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3.TXT.0019
김주백에게 답함
어제 편지에서 권씨가 저를 보러온다고 하였다가, 잠시 후에 다시 "호남과 영남의 시비를 따지는 말을 야기한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므로 그만둔다"고 말했는데, 그 말이 매우 가소롭습니다. 맹자께서 "시비를 올바르게 가리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주 49)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주자께서도 "학문을 하는 것은 단지 잘못을 없애고 옳은 것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다."주 50) 하셨으니, 옳은 것과 잘못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 있더라도 시비를 가릴 수 있는데, 하물며 저에게 있는 경우에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모든 일이 이와 같은데 하물며 부모나 스승과 관계된 일에 있어서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만약 제가 기꺼이 사람답지 않은 사람주 51)이 되어서 학문을 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만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찌 오진영이 스승을 무함한 죄를 성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권순명은 30년 동안 오진영을 존경하고 믿으면서 나를 배척하여 "오진영에게 스승을 무함한 죄를 억지로 더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한테 와서 화해를 하자고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만약에 종전에 저지른 큰 잘못이 그릇되었음을 깨달았다면 어찌 입을 열어서 목구멍을 보이는 것처럼 분명하게 어제가 그르고 오늘이 맞다고 말하지는 않고, 반대로 시비를 서로 질문함에 밑바탕이 폭로될까 두려워하여 독을 남긴 채 봉투를 봉함하는 것처럼 가리고 막아 원한을 숨기고 타인을 벗하는주 52) 데에 귀착되는 것을 꺼리지 않습니까? 이것이 어찌 선비의 마음 씀씀이이겠습니까? 공자께서는 "분별하지 않을지언정 분별하면 분명하지 못한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주 53)고 하였습니다. 지금 기왕에 오고자 한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니, 피차간에 할 말을 다하고 논의를 다하여 의리를 끝까지 완벽하게 규명하고서 깨끗한 곳에 몸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미 후회하는 마음이 싹튼 기미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니,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린단 말입니까? 아! 오늘날 학문을 익히는 것이 참으로 이와 같단 말입니까? 이상할 따름입니다. 어제 만났을 때 자리가 좀 멀었고, 말하기는 병중이라 더욱 어려워 자세하게 전달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에 다시 편지를 보내오니 삼가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주석 49)시비를……아니다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측은지심은 인의 단서이고, 수오지심은 의의 단서이고, 사양지심은 예의 단서이고, 시비지심은 지의 단서이다. 사람이 이 사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체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으니, 이 사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자신을 해치는 자이고, 자기 군주가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군주를 해치는 자이다.〔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知之端也 人之有是四端也 猶其有四體也 有是四端而自謂不能者 自賊者也 謂其君不能者 賊其君者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석 50)학문을……것이다
주희는 "학문하는 것은 다만 정성을 다하고 오래도록 견디면 얻지 못함이 없을 것이니, 굳이 딴 생각하여 앞뒤를 잴 필요가 없다〔爲學只要致誠耐久, 無有不得, 不須別生計較, 思前算後也〕"라고 하였다. 《주자대전(朱子大全)》 권60 〈답임숙공(答林叔恭)〉.
주석 51)사람답지 않은 사람
앞에서 말한 시비를 올바르게 가리는 마음이 없는 사람을 지칭한다.
주석 52)원망을……벗하는
공자는 "말을 잘하고 낯빛을 좋게 꾸미며 지나치게 공손하게 함은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또한 부끄럽게 여긴다. 원망을 감추고서 그 사람과 사귀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또한 부끄럽게 여긴다.〔子曰, 巧言令色足恭,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匿怨而友其人, 左丘明恥之, 丘亦恥之〕"라 했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주석 53)분별하지……않는다
《중용장구(中庸章句)》의 제20장 "배우지 않을지언정 배우면 능하지 못하거든 그대로 버려두지 말며, 묻지 않을지언정 물으면 알지 못하거든 그대로 버려두지 말며, 생각하지 않을지언정 생각하면 터득하지 못하거든 그대로 버려두지 말며, 분변하지 않을지언정 분변하면 분명하지 못하거든 그대로 버려두지 말며, 행하지 않을지언정 행하면 독실하지 못하거든 그대로 버려두지 말아서, 남이 한 번에 능하거든 나는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나는 천 번을 하여야 한다. 과연 이 도에 능하면 비록 어리석으나 반드시 밝아지며 비록 유약하나 반드시 강해진다.〔有不學 學之 不能不措也 有不問 問之 不知不措也 有不思 思之 不得不措也 有不辨 辨之 不明不措也 有不行 行之 不篤不措也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果能此道矣 雖愚必明 雖柔必剛〕"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答金周伯 辛卯
昨枉喻以權欲來見我, 而旋復曰"恐其惹出湖嶺是非說, 則沒滋味, 故罷之", 其言極可笑。 孟子不云乎? "無是非之心, 非人也。" 朱子不云乎? "爲學只要去非求是。" 是與非在人, 猶當是之非之, 况當於我者乎? 凡事猶然, 况事關父師者乎? 使我甘作非人而不欲爲學則已, 不然, 安得不討吳誣師之罪乎? 權則三十年來尊信吳也, 斥我謂"勒加吳以誣師之罪矣。" 今欲來我而親和者, 何意? 如云覺其從前鑄錯之非也, 則何不分明說昨非今是, 若開口而見咽, 反慮是非相質, 底蘊畢露, 欲掩覆遮攔, 若留毒而封皮, 不憚爲匿怨友人之歸? 是豈士子之用心乎? 孔子曰: "有不辨, 辨之, 不明不措。" 今既欲來則正好, 彼此極言竭論, 以究義理十分到頭, 立身於潔凈之地。 不此之爲, 坐失悔心已萌之機, 更待何時? 鳴呼! 今之講學, 固如是歟? 可異也已。 昨唔時, 坐次稍遠, 語音病中益艱, 未由詳達。 茲復書申, 伏惟諒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