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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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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선명에게 보냄(與朴善明 已卯)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3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3.TXT.0015
박선명에게 보냄
일전에 저를 찾아주셨는데 제가 아픈 와중에 심수(尋數)주 41)를 일삼는 것을 보고 "사업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지만 어찌 몸을 보호할 것을 생각지 않는가?"라고 깨우쳐주셨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저를 아끼는 마음은 깊지만 저를 깊이 알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업(事業)'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마땅히 행해야 할 도에 나아가는 것을 '사(事)'라 하고, 고유한 덕을 완성하는 것을 '업(業)'이라고 하니, 이것은 우리 유자(儒者)의 사업입니다. 드러낼 만한 공명을 '사(事)'라 하고, 칭송받을 만한 이익과 은혜를 '업(業)'이라고 하니, 이것은 세속의 사업입니다. 우리 유자의 학문을 통하여 사업을 이룬다면, 비록 천지에 높이 내걸만한 공리(功利)가 있다고 할지라도 단지 그것이 도덕이 된다는 측면만을 보기 때문에 굳이 사업이라고 일컬을 필요는 없습니다. 세속적인 견해에 기반하여 사업을 이룬다면, 비록 무리에서 뛰어나고 세상에 높은 도덕이 있다고 칭송받더라도 결국은 공리적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사업 역시 훌륭하다고 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그러므로 도덕으로 마음을 삼는 사람은 사업이 그 속에 있고, 사업으로 마음을 삼는 사람은 도덕과 멀리 떨어지게 되니, 처음에는 단지 한 생각의 차이이지만 끝내는 천리나 멀어지게 됩니다.
저는 비록 무능한 사람이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저의 마음은 도덕에 있지 사업에 있지 않습니다. 지금 형님께서는 제가 몇 권의 문장을 짓는 것을 사업으로 삼는다고 생각하고, 또 사업을 중시하고 성명(性命)을 경시하는 자인 듯하다고 생각하면서 저를 걱정하고 일깨워주시는데, 천하에 어찌 도에 뜻을 두면서도 책을 써서 이름을 전하기 위하여 부친의 유지를 생각하지도 않고 불효를 범하는 자가 있겠습니까. 제가 이 때문에 "저를 깊이 사랑하지만 저를 깊이 알지 못하시는 것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또한 옛날부터 충효로 큰 절개를 드러내고, 영웅으로 큰 이름을 날려 그 사업이 당세에 빛난 자가 어찌 한정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랜 세월 지나면 침체되어 쉽게 사라지니, 문장은 또 작은 것이라 더욱 전해지기 어렵고 사라지기 쉽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육일거사(六一居士) 구양수(歐陽脩)가 이미 언급했으니,주 42) 제가 비록 어리석지만 역시 이런 일은 하지 않습니다.
또 극대화하여 말한다면, 성현의 위대한 사업이라고 할지라도 후천세계에서는 당연히 그 이름을 알지 못할 것이니,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업으로 이름을 전하려고 하는 것은 모두 망령된 짓입니다. 비록 그러하지만 성현이 사업으로 자신을 위하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까닭은, 전해지는 것이 있다 하여 그것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전해지는 것이 없다 하여 그것을 그만두는 것도 아닙니다. 역시 단지 "마땅히 해야 할 도에 나아가는 것을 사(事)라고 하고, 고유한 덕을 완성하는 것을 업(業)이다."라고 하여, 오직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성(性)을 따르고 자신이 마땅히 가야할 길을 따를 뿐이므로 비록 버리고 떠나고 싶더라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빈부와 귀천, 병건(病健)주 43)과 우락(憂樂)주 44)을 막론하고 모두 마땅히 사업을 행할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여 대성(大成)하면 성인이 되고, 그 다음으로는 현인이 되고, 작게 이루면 사(士)가 됩니다.
지금 제가 비록 가난하고 병이 들었지만 감히 게을리 하거나 중단하지 않고, 여전히 연구하여 기록하는 노력을 일삼는 것은 조금이라도 도에 대한 견해를 진척시켜 대략이나마 죽기 전에 도에 나아가고 덕을 이루는 사업을 축적하여 끝내 삼가고 조심하는 선비가 되는 것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일 뿐입니다. 저 구구하게 문자로 이름을 전하는 것이 무슨 사업이 될 만한 것이 있다고 병중에 이 일로 정력을 다 써서 목숨을 보존하지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겠습니까? 다만 예로부터 붕우 간에 지기(知己)가 되는 일은 참으로 드문 일이고, 세상이 또 사업의 진위에 대해 어두운 것도 오래되었으니, 형님께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 슬픕니다! 저는 비록 마음이 사업에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 유자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사업 같은 경우에는 어찌 끝내 마음이 없겠습니까?
앞으로 붓 하나로 천성(千聖)이 도통을 서로 전한 뜻주 45)을 밝히고, 천고에 시비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안건을 결정하며, 올바름을 해친 이단(異端)과 잡류(雜流)의 해친 글들을 분별하고, 패제(悖弟)와 적자(賊子)들이 윤리를 상실한 죄를 성토할 것입니다. 아울러 예의를 숭상하고 재화를 뒤로 하며 외교관계를 닦고 전쟁을 종식하는 논설로 옛것을 끌어다 지금을 증명하고, 이치를 따지고 지난 자취를 증험하여, 그것을 입언하고 책으로 지어 일세를 깨우치고 천하에 배포한다면, 아마 조금은 이미 어두워진 도를 밝히고 이미 망가진 윤리를 부지하며 이미 혼란스러워진 세상을 구원하고 이미 곤궁해진 백성의 고통을 완화해 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선비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바로 오늘날 저의 뜻입니다. 그러나 헐벗은 가난은 그 형세가 갖가지로 괴롭히고 필력도 없으며, 또 도와서 함께 이루어줄 동지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망망한 천지에서 배회하며 홀로 서서 긴 한숨만 쉴 뿐입니다. 심기가 촉발되어 감정이 일어나 말을 함부로 하여 형님의 눈을 더럽혔습니다. 부디 죄라고 여기지 않으시겠습니까?
주석 41)심수(尋數)
심행수묵(尋行數墨)의 준말로, 책을 보는 일을 말한다.
주석 42)육일거사(六一居士)……언급했으니
구양수는 "삼대와 진한으로부터 책을 저술한 사람이 많은 이는 백여 편에 이르렀고 적은 이도 삼사십편에 되었다. 이런 사람들을 이루 헤아릴 수가 없지만 흩어지고 사라지며 닳아 없어져서 백에 한둘도 보존되지 못했다. …… 결국에는 초목·금수·중인과 함께 똑같이 사라지는 데로 귀결되니, 말에 의지할 수 없음이 대체로 이와 같다.〔自三代秦漢以來, 著書之士, 多者至百餘篇, 少者猶三四十篇. 其人 不可勝數, 而散亡磨滅, 百不一二存焉. …… 而卒與三者, 同歸於泯滅, 夫言之不可恃也〕"라고 하였다. 〈송서무당남귀서(送徐無黨南歸序)〉
주석 43)병건(病健)
병든 것과 건강한 것을 말한다.
주석 44)우락(憂樂)
근심하는 것과 즐거운 것을 말한다.
주석 45)천성(千聖)이 도통을 서로 전한 뜻
순(舜) 임금이 우(禹) 임금에게 제위(帝位)를 물려주면서 말한 '유정유일 윤집궐중(惟精惟一允執厥中)'을 줄인 말로,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에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하게 하고 한결같이 하여야 진실로 그 중도(中道)를 잡을 것이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하였다. 주자(朱子)는 유정(惟精)은 지(知) 공부, 유일(惟一)은 행(行) 공부에 소속시키고, 이 16자(字)를 '천성상전지법(千聖相傳之法)'이라 하여 도통(道統)의 원조로 높였다.
與朴善明 已卯
日前委顧, 見弟病中有事尋數, 喻"以成事業則然矣, 獨不念保身乎?" 窃以爲愛我則深, 而知我則淺也。 夫事業有兩般, 進當行之道之謂事, 成固有之德之謂業, 此吾儒之事業也。 功名可著之謂事, 利惠可稱之謂業, 此世俗之事業也。 由吾儒之學而成事業, 則雖有掀天揭地之功利, 但見其爲道德, 而不必稱以事業也。 由世俗之見而成事業, 則雖稱有出類高世之道德, 究不出功利之念, 而事業亦不足壯矣。 故以道德爲心者, 事業在其中; 以事業爲心者, 去道德遠, 而只此一念之間, 終至千里其遙矣。
弟雖無似, 乃若其心則在於道德, 不在事業。 今兄認我爲著得幾卷文字作事業, 而又重事業而輕性命者然, 悶慮而戒喻之, 天下安有欲著書傳名, 而不念親遺, 用犯不孝之志道者乎? 吾故曰: "愛我則深, 而知我則淺也。"
且自古忠孝大節ㆍ英雄大名, 其事業足以耀當世者何限? 然久則寢寢以易泯, 文章又其小者, 尢傳難而泯易也。 六一翁已言之, 弟雖癡呆, 亦不為是。
又極而言之, 雖聖賢之大事業, 在後天地, 亦應不知其名。 夫人之於世, 欲以事業傳名者, 皆妄也。 雖然, 聖賢之所以以事業自爲與教人也, 則不爲其有傳而作之, 爲其無傳而輟之, 亦惟曰: "進其當行之道之謂事, 成其固有之德之謂業。" 惟其率自家固有之性, 而循自家當行之路, 故雖欲舍去而不得也。" 是以不問貧富貴賤ㆍ病健憂樂, 皆當有行事作業之地。 如此而大成則聖, 其次則賢, 小成則士。
今弟雖貧病之中, 不敢怠忽間斷, 隨分有事於竆研記劄之功者, 欲以少進一斑之見, 畧資進道成德之事業於未死之前, 終不失爲謹飭之士爾。 彼區區文字傳名, 何足爲事業, 而以此弊精疲力於病中, 至於不保身命乎? 但從古以來, 朋友間知己, 固已鮮矣, 世又昧於事業之真假也久矣, 宜乎, 兄之有此言也。 嗟呼! 悲夫! 弟雖非心在事業者, 若吾儒自在之事業, 則豈終無心?
盖將以一筆, 明千聖道統相傳之旨, 決千古是非未定之案, 辨異端雜流害正之書, 討悖弟賊子喪倫之罪, 并以尚禮儀後貨財修交好息戰爭之說, 援古證今, 質理驗跡, 立之言而著之書, 喻一世而布天下, 庶少得以闡已晦之道, 扶已斁之倫, 救已亂之世, 紓已困之民, 此正今日士子當行之事, 正今日弟之志也。 而赤立之貧, 其勢百掣, 筆亦無之, 並無同志助成者。 茫茫天地徘徊獨立, 只有喟然長吁而已。 觸機生感, 漫說瀆覽, 幸不以爲罪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