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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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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치명에게 답함(答魏致明 丙子)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3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3.TXT.0011
위치명에게 답함
세상의 풍파가 날로 급하고 심해져서 우리들의 목숨과 머리카락을 보호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이러한 때에 마음속에 간절하게 생각나는 것은 세상을 같이 살고 있는 동지들뿐입니다. 그러나 이 동지들이 역시 도대체 몇 명입니까? 그대처럼 곤궁함 속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지키면서 선대의 규범을 실추시키지 않고, 창연하게 홀로 참된 본색을 보존한 자는 참으로 얻기 어려우니, 머리를 들고 남쪽 하늘을 바라보면서 매번 관산(冠山)이 멀리 있어 오를 수 없음을 한스러워하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그대로부터 과분한 은혜를 입어 갑자기 적막한 물가에 1폭 10행의 편지를 받아보니, 저를 뜻에 맞는 사람이라 허여하고 또 오래도록 만나지 못한 것을 탄식하셨습니다. 그대는 저와 비교하면 덕으로나 나이로나 진실로 크게 높고 매우 많으니, 어찌 그대가 저를 생각하는 것이 역시 제가 그대를 사모하는 것과 같겠습니까? 또 먼저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하고 위로받은 나머지 부끄러운 마음 또한 심합니다. 이어서 때를 잘못 타고났다는 것과 일생동안 알려지지 못한 것을 슬퍼하셨는데, 때를 만나지 못했다는 탄식은 참으로 동병상련의 일이지만, 알려짐이 없다는 말은 어찌 그대에게 해당되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은 틀림없이 이 고루한 저를 일깨워주기 위하여 비유적으로 말한 것일 뿐일 것입니다.
편지를 받들어 두세 번 읽으면서 반성되고 계발되는 점이 많았습니다. 삼가 일찍이 본말과 시종을 궁구하여 공평하고 정직하게 논해보건대, 사람들의 이른바 '알려짐이 있다'는 것은 도를 기준으로 하지 사업을 기준으로 하지 않으며, 실상을 기준으로 하지 이름을 기준으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부귀하다 하여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빈천하다 하여 감춰지는 것도 아니며, 살아있다 하여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죽었다 하여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 저절로 빈궁과 영달의 밖에 홀로 서서 길이 천지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으로 명예와 실상을 모두 갖춘 사람은 훌륭하여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지만, 실상이 비록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름이 인멸되어 전해오지 않는 자도 또한 어찌 한정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날의 유자는 세상이 혼란하고 길이 막혀 나아가지 못하는 때를 당하였으니, 오랑캐로 변하여 불의한 것을 먹지 않고, 분수를 지키고 도를 익히면서 성현을 따르는 것은 이미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또한 알려진 실상이 있다는 것에 가깝다고 해야지 이름이 없다고 해서 가볍게 여겨서는 옳지 않습니다. 하물며 그대처럼 노성(老成)하여 알려진 명성이 뭇사람과 다름이 있는 분은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제 치발(薙髮)의 재앙은 관계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참으로 기미를 보아 떠나고주 21) 낯을 보아 날아올라주 22) 도리와 형체를 모두 온전히 하며, 웅장(熊掌)과 물고기를 일찍 판별하여 생명을 버리고 의리를 취한다면주 23) 소유하고 있는 명성의 실상이 이것보다 큰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보내준 편지에서 장독(瘴毒)이 사방에서 닥치는 고통과 초목처럼 죽어간다는 한탄은 말할 거리가 못됩니다. 우리들이 목전에 힘써야 할 것은 단지 이와 같은 것뿐입니다. 설사 마을이 잇닿아 있어 아침저녁으로 만난다 하더라도 이 밖에 어찌 더 이상 다른 할 말이 있겠습니까. 삼가 이런 뜻을 토대로 하여 보여주신 옛사람의 시에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어봅니다.

고금의 사람조차도 벗이 될 수 있으니,
남북을 어찌 다시 나누겠는가.
마음과 마음이 똑같이 비추는 곳에는,
편지가 없더라도 또한 소식을 들을 수 있네.

아마 그대의 뜻도 역시 이와 같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석 21)기미를……떠나고
공자가 "기미를 앎이 그 신묘할 것이다. 군자는 위로 사귀되 아첨하지 않고 아래로 사귀되 모독하지 않으니, 기미를 아는 것이다. 기(幾)는 동함의 은미함으로 길(吉)·흉(凶)이 먼저 나타난 것이니, 군자는 기미를 보고 일어나서 하루가 마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知幾其神乎! 君子上交不諂, 下交不瀆, 其知幾乎! 幾者, 動之微, 吉之先見者也, 君子見幾而作, 不俟終日.]〕" 하였다. 《주역(周易)》 〈계사전 하(繫辭傳下)〉
주석 22)낯을……날아올라
새가 사람의 나쁜 표정을 보면 날아올라 피한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사람이 기미를 잘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향당(鄕黨)〉에 "새는 사람의 나쁜 표정을 보면 날아서 빙빙 돌며 관찰한 다음에 내려앉는다.〔色斯擧矣, 翔而後集〕" 하였다.
주석 23)웅장과……취한다면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에 "생선도 먹고 싶고 곰발바닥도 먹고 싶은데, 이 두 가지를 모두 얻을 수 없다면 곰발바닥을 먹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의리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이 두 가지를 모두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리를 취하겠다. 〔魚, 我所欲也; 熊掌, 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 하였다.
答魏致明 丙子
風潮日急, 吾儕之命與髪保, 知有歲日。 此日此懷, 只切念及於并世同志而已。 然此同志, 亦復幾人? 固窮守道, 不墜先範, 蒼然獨葆真色如尊執事者, 誠所難得, 則矯首南天, 每恨冠山之遠莫可攀。
乃以此時, 過蒙尊惠, 一幅十行, 忽墜寂寞之濱, 既許以可意之人, 又歎以積阻顏面。 尊之於生, 以德以齒, 高固相萬也, 何尊之念生, 亦如生之慕尊? 而又先施之也, 感慰之餘, 愧亦深矣。 亦繼以遭遇之不辰ㆍ一生之無聞爲悲, 不辰之歎, 固所同病; 無聞之云, 尊豈有是? 是必警此孤陋, 而比譬言之耳。
奉讀再三, 區區省發多矣。 盖窃嘗究本末始終, 而平正論之, 人之所謂有聞者, 以道不以事業, 以實不以名譽。 不爲富貴而顯, 不爲貧賤而晦, 不爲生而存, 不爲死而亾, 自有獨立窮達之外, 長在天地之間者矣。
古人之名實俱存者, 尚矣勿言, 實雖存而名淹沒無傳者, 亦復何限? 今之儒者, 當世亂途窮無前之日, 不化於夷而食不義, 安分講道與聖賢爲從者, 已是難事, 而亦謂近於有聞之實, 不宜以無名而易之也, 况如尊之老成, 所得自有異衆者乎?
且今薙禍, 所關甚大。 誠能見幾色擧, 理形兩全, 早判熊魚, 舍生取義, 則其爲有聞之實也, 莫大於是。 而來喻瘴毒四至之苦ㆍ草亾木卒之歎, 皆不足言也。 吾儕當下所勉, 只此而已。 縱使接鄉井而唔朝暮, 此外豈復有他哉? 謹將此意, 次所示古人詩曰 :

今昔尙爲友
朔南那更分
心心同照處
無信亦相聞

想尊意亦以為然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