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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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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산 김장복한 에게 올림(上志山金丈(福漢) ○庚申)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3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3.TXT.0001
지산 김장복한 에게 올림
제가 일찍이 들으니, 선비 중에 인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나라의 대부 가운데 현명한 이를 섬긴다주 1)고 합니다. 사람은 본래 현명한 사람과 현명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니 그 대부 가운데 현명한 사람이 있다고는 기필할 수는 없고, 현명함에도 분수(分數)가 있으니 그 현명함이 완벽히 구비되었다고는 기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대부의 신분이면서 현명함이 없는 자라면 참으로 어찌할 수 없거니와, 혹시라도 현명하기는 하지만 그 현명함이 완벽히 구비되지 못한 자가 있다면 마땅히 그 나라에서 섬길만한 사람을 택하여 섬겨야 할 뿐입니다. 만일 현명한 대부가 여기에 있는데 우뚝히 큰 절개를 지니고 학문까지 겸비하고 있다면 그 현명함은 어찌 한 나라에서만 찾기 어려울 뿐이겠습니까? 거의 한 시대에 짝할 자가 드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비 가운데 이 나라에 살면서 이와 같은 현명한 이를 모시게 된다면 어찌 하나의 큰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위아래가 전도되고 멸망한 나라주 2)의 산천의 경관이 달라진 이후로 중화의 문화권에서 태어났어도 오랑캐 행실을 하고, 벼슬을 하면서도 효경(梟獍)주 3)같이 하는 자는 참으로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간혹 고가(故家)의 세족으로 옛 음덕을 누리면서 명망을 지닌 자도 끝이 선한 자가 드물게 되었습니다. 거센 바람이 천리에서 불어오면 풀들이 이리저리 쓰러지고, 장강이 백 번 굽이치면 파도는 출렁출렁 뒤로 물러가건만, 오직 문하(門下)께서 나라를 위하는 일념이 단사(丹沙)처럼 찬란하여, 굳은 절개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어 백 번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고, 임천(林泉)에서 도를 강론하되 머리가 셀수록 더욱 돈독히 하니, 우뚝 유문(儒門)의 영광(靈光)이 되었습니다. 지난날 이른바 절개를 지니고 학문을 갖추고 있어 한 세대의 현자가 되었다고 한 경우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니 나라 안의 지식인들이 누군들 높은 산처럼 우러러보고 동량처럼 믿으면서 현자를 섬기는데 마땅한 분을 얻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저처럼 어리석은 사람조차도 이에 의지하여 타고난 성품이 민멸(泯滅)되지 않았으니, 이 때문에 자나 깨나 어르신을 우러러 사모한 지 여러 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난과 근심에 얽매이고 압박당하여 멀리 노닐려던 큰 뜻이 사그라들어 거의 다 사라진 채 목을 빼고 서쪽을 바라보면서 때때로 길게 탄식만 하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일전에 찾아뵙고 통자(通刺)하였으니 참으로 숙원을 이룬 것이고, 넉넉히 포용해주심을 입고 후하게 계발을 받은 것은 생각지도 않은 일이라 몹시 감격스러웠습니다. '무실(務實)'주 4)이란 두 글자를 내려주신 것은 참으로 제 자신의 증상에 꼭 맞는 훌륭한 처방이므로 더욱 가슴에 새기고 싫증내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저는 삼가 마음속으로 감탄한 바가 있으니, 명분만 좇고 실질을 잊는 것이 선비들에게 나타나는 보편적인 문제이지만, 이런 현상이 오늘처럼 심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심(心)과 성(性)에 대하여 같다고도 하고 다르다고도 하면서 능사(能事)가 이미 끝났다고 말하지만, 존심양성(存心養性)주 5)에 대해서 말하면 아무것도 모르면서 입으로 쏟아내는 웅변은 황하물이 터진 것과 같고, 붓으로 써내는 씩씩한 글은 찬란하게 문장을 이룹니다. 그러나 그 평소의 말과 행동주 6)을 돌아보면 대부분 비난받을 만한 것들입니다. 이윤(伊尹)ㆍ주공(周公)의 사업과 관중(管仲)ㆍ제갈량(諸葛亮)의 정치에 대하여 손가락으로 손바닥을 가리키듯, 땅에 그릴 듯이 훤히 알아 실책이 없는 듯 하지만 작은 일에 대한 조처를 살펴보면 맞는 것이 없습니다. 속수(束脩)주 7)의 예를 행하고 명첩을 지니며, 스승과 벗을 좇을 때는 예절을 법도에 맞게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 형제들 사이에 예의를 베풀 때에는 크게 잘못합니다. 이것은 모두 근래 선비들의 폐단에 대한 대략인데 문하께서 깊이 걱정하여 바로잡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우둔한 저를 돌아볼 때, 세상 유자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점은 부족하고, 근심할 바의 폐단은 본래부터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재주는 없고 병폐만 있는 경우이니, 천하의 버릴 물건입니다. 비록 그러할지라도 또한 어찌 자포자기하고서 현명한 가르침에 마음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오직 더욱더 저를 엄격히 가르쳐 마침내 성취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깊이 바랍니다.
주석 1)선비……섬긴다
자공이 인(仁)을 하는 방법을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공인(工人)이 자신의 일을 잘 하려면 반드서 먼저 그 기구(器具)부터 예리하게 수리하니, 이 나라에 살면서 대부(大夫) 중에 어진 이를 섬기고 선비 중에 인(仁)한 이를 벗해야 한다〔子貢問為仁, 子曰, 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 居是邦也, 事其大夫之賢者, 友其士之仁者〕"라고 하였다.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주석 2)멸망한 나라
원문의 '風泉'은 《시경(詩經)》의 편명인 〈비풍(匪風)〉과 〈하천(下泉)〉을 지칭하는 것으로, 모두 쇠망하는 나라를 서글퍼하는 감회를 읊은 시이므로 쇠망하는 나라를 걱정하거나 멸망한 조국을 그리워하는 것을 뜻한다.
주석 3)효경(梟獍)
부모를 잡아먹는 새와 짐승을 말한다. 효(梟)는 흉악한 새로,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잡아먹고, 경(獍)은 흉악한 짐승으로 태어나자마자 아비를 잡아먹는다. 은혜와 의리를 저버리고 배신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주석 4)무실(務實)
실제적인 일에 힘쓴다는 의미이다.
주석 5)존심양성(存心養性)
맹자가 말하기를 "그 마음을 다 하는 자는 그 성을 알 수 있고, 그 성을 알면 하늘을 알 수 있게 된다. 그 마음을 보존하여 그 성을 기르는 것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孟子曰, 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 則知天矣. 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라고 하였다. 즉, 인간이 도덕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양심(良心)을 잃지 말고 그대로 간직하여, 도덕 본성을 키워 나가야 함을 의미한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
주석 6)평소의 말과 행동[庸言庸行]
〈문언전(文言傳)〉에서 "구이에서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라고 한 것은 무슨 말인가? 공자가 말하였다 '용의 덕으로 딱 알맞은 자이다. 평상시의 말을 미덥게 하고, 평상시의 행동을 삼가며, 간사함을 막고 정성을 보존하여 세상을 좋게 만들고도 자랑하지 않으니, 덕이 넓어서 교화한다. 《주역(周易)》에서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고 하였으니, 이는 임금의 덕이다.'〔九二曰, 見龍在田利見大人, 何謂也. 子曰, 龍德而正中者也, 庸言之信, 庸行之謹, 閑邪存其誠, 善世而不伐, 德博而化. 易曰, 見龍在田利見大人, 君德也〕" 용언(庸言)과 용행(庸行)은 평상시의 말과 행동을 의미한다. 《주역(周易)》 〈건괘·문언전(乾卦·文言傳)〉
주석 7)속수(束修)
공자가 "속수 이상의 예를 행한 자에게 나는 일찍이 가르쳐 주지 않은 바가 없었다〔自行束脩之以上, 吾未嘗無誨焉〕"라고 하였다. 스승을 처음 만나 가르침을 청할 때 작은 선물을 함으로써 예절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논어(論語)》 〈술이(述而)〉
上志山金丈(福漢) ○庚申
竊嘗聞士之欲爲仁者, 必事是邦大夫之賢者。 夫人固有賢否, 未可必其大夫之有賢, 賢固有分數, 未可必其賢之具備。 使其大夫而無賢者也, 則固無如之何矣, 其或賢而有不具備者, 則只當於是邦中擇其可事者, 事之已矣。 如有賢大夫於此, 卓乎其有大節, 而兼之以學問, 其爲賢也, 豈直一邦而已? 殆一世而寡儔也。 然則士之居是邦而得是賢, 豈非一大幸福也耶?
一自冠屨易位, 風泉異觀, 華產而夷行, 冠紳而梟獍者, 固不足道, 間有故家世族食舊而佩望者, 亦且鮮終。 疾風千里, 靡靡草偃; 長江百折, 滔滔波頹, 惟門下爲國一念, 炳然如丹, 一節終始, 九死靡悔, 講道林樊, 皓首彌篤, 巋然作儒門靈光。 向所謂有節有學而爲一代之賢者, 即其人焉。 凡在域中士類, 孰不山仰樑恃, 幸其事賢之得所也?
至如澤述之蠢蒙者, 賴有不泯彝性, 是以寤寐景慕, 積有年所。 而貧與憂謀, 纏之壓之, 遠遊壯心, 澌滅殆盡, 引領西望, 時發長喟。 日前獻刺, 寔償夙願。 而優蒙容納, 厚受開發, 思出不圖, 固已感沐。 至若務實二字之贐, 實係此身對證之良劑。 尤當佩服無斁。 因此而竊有所感歎于心者, 蓋徇名而忘實, 士之通患, 而未有若近日之甚也。
曰心曰性, 是同是異, 自謂能事已畢。 而以言乎其存養則蔑如也, 口頭雄辯, 沛然河決; 筆下健辭, 爛然成章。 顧其庸言庸行, 則多可訾也。 伊周事業, 管葛政治, 指掌畫地, 若無遺筭, 觀其措諸微事ㆍ細務, 則郎當也。 束脩齎刺, 從師追友, 禮序秩然, 歸而施措唱喏塤箎之間則大謬也。 此皆挽近士弊之大畧。 而門下之所深憂而思矯之也。
自顧鈍拙, 幷乏世儒之所炫耀者, 其所患之弊則固自在也。 是所謂無是才而有是病, 天下之棄材也。 雖然, 亦安敢自處暴棄而不盡心於明訓? 惟乞益加箝錘, 有以卒成之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