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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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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암 김장에게 올림(上炳菴金丈 乙巳)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2.TXT.0018
병암 김장에게 올림
저는 일찍이 '군자의 도는 어려서는 배우는 것이니, 자라서는 그것을 행하는 것이다.'주 75)고 들었습니다. 만일 그저 공자ㆍ맹자ㆍ정자ㆍ주자의 책만을 읽고 임금을 요순으로 만들고 백성을 요순의 백성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없다면 아마도 군자라고 부르기에 부족할 것입니다. 근래에《율곡전서》를 읽어보니 그가 나라를 다스리고(經國) 세상을 구제하는(濟世)의 방책에 대하여 큰 일로 삼지 않은 적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궁리와 수신은 경국(經國)과 제세(濟世)의 근본이고, 법령에 관한 문장은 경국과 제세의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이 튼튼하면 가지가 번성하는 것은 필연의 이치입니다. 학자는 마땅히 성현이 저술한 책을 잘 완미하여 천지의 큼, 인물에 대한 분별, 윤상(倫常)의 중요함 등에 대해 힘써 그 극치를 궁구하며, 성현의 행적을 표준으로 삼아 뜻의 진실함과 거짓, 마음의 사악함과 바름, 몸의 닦음과 닦지 못함에 대해 잘못된 점을 제거하고 옳은 것을 이룬다면 치국평천하의 일은 들어다 놓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이 태어난 이래로 인재의 성취는 치우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맹공작(孟公綽)이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등나라와 설나라의 대부는 될 수 없었고,주 76) 자로(子路)는 인(仁)하지는 못하였지만 천승의 나라에 그 군(軍)을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주 77) 율곡이 회재 이언적과 퇴계 이황 두 선생을 논함에 있어 "성리를 논한 책에 대해서는 조예가 깊고 정밀하다"고 말하였고, "오묘한 생각과 정미한 연구는 유현(幽玄)을 꿰뚫어 보았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세상을 구제하는 일에서는 큰 재주는 없다"고 하였고, 또 "스스로 헤아려보건대 재주는 부족했다"고 말했으니,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점을 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궁리 안의 일이고, 궁리를 벗어나서 별도로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선비들은 태극(太極)과 성명(性命)의 깊은 이치에 대해서는 애써 탐구해서 종신의 사업으로 삼지 않음이 없으나 경국과 제세의 방도에 관해서는 '족히 할 만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니, 이것 또한 통유(通儒)가 되기에는 부족한 것입니다. 만약 세상에 현명한 군주가 있어서 사림을 선발하여 등용하고 태평에 이르기를 바란다면, 오늘날 선비 중에 경국과 제세의 방책을 익히지 않은 자가 전부(田賦)를 다스리고 예악을 바르게 하며, 법령을 정하고 권량(權量)을 알맞게 하는 절차에 대하여 장차 어떻게 조처하겠습니까? 옛날에는《소학》에서 육례를 가르쳤고, 공자는 "예에서 도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비록 경제가 쇠잔하고 교육이 느슨해져서 절목의 자세함에 대해서는 다시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남은 제도가 다행히 보존되어 사라지지 않은 것과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하게 하는 방책에 대하여 책을 읽고 일에 응대하는 여가에 별도로 연구하고 강구하면서 다른 날에 재주를 펼칠 수단으로 삼는다면 괜찮을 것입니다. 어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주석 75)군자의……것이다
맹자는 "사람이 어려서 배우는 것은 장성해서 그것을 행하고자 함이다.(夫人幼而學之, 壯而欲行之)"라고 하였다. 《맹자(孟子)》 〈양혜왕 하(梁惠王下)〉
주석 76)맹공작(孟公綽)은……없었고
공자가 말하기를 "맹공작(孟公綽)은 조씨(趙氏)와 위씨(魏氏)의 가로(家老)가 되는 것은 충분하지만 등(滕)나라와 설(薛)나라의 대부(大夫)가 되어서는 안 된다.〔孟公綽爲趙魏老則優, 不可以爲滕薛大夫.〕"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희(朱熹)의 주에 "공작(公綽)은 아마도 청렴하고 욕심이 적으나, 재능이 부족한 자인 듯하다."라고 평하였다. 《논어(論語)》 〈헌문(憲問)〉
주석 77)자로가……있었습니다
맹무백(孟武伯)이 자로(子路)에 대해 묻자, 공자가 "유는 천승의 나라에 그 군을 다스리게 할 수는 있지만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다〔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라고 하였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上炳菴金丈 乙巳
竊聞君子之道, 幼而學之, 欲壯而行之。 若徒能讀孔孟程朱子書, 而無堯舜君民之志, 則恐不足以謂君子也。 近讀《栗谷全書》其於經國濟世之方, 未嘗不把作一件大事。 竊疑窮理修身, 經濟之本也, 章程文爲, 經濟之支也。 本固則支達, 必然之理也。 學者固當玩繹乎聖賢之書, 天地之大, 人物之分, 倫常之重, 務要窮極其致, 準的乎聖賢之行, 意之誠僞, 心之邪正, 身之修否, 務要去彼就此, 則治國平天下之事, 特舉而措之耳。 然自生民以來, 人才之成就, 不能無偏。 是故公綽之不欲, 未可爲滕薛之大夫, 子路之未仁, 能治千乘之賦。 至於栗翁之論晦陶兩先生, 既稱之曰"性理之書深造精微", 曰"妙思精研, 洞見幽玄," 而却曰"無經濟大才," 曰"自度才不足," 自非全體備具者, 終不能免於此也。 然此亦窮理中事, 非外窮理而別爲一事也。 見今之士, 於太極性命之蘊, 無不費力探究, 做終身事業, 而至於經國濟世之術, 則視以爲不足爲, 亦不得爲通儒也。 如使世有賢君選用士林, 期臻太平, 則今之士之不習經濟者, 其於制田賦正禮樂定律令嘉權量之節, 將何以措之? 古者小學教之以六藝之文, 孔子曰"遊於藝," 今雖經殘教弛, 節目之詳, 不可復見, 然其遺制之幸存而未泯者, 及治國安民之策, 於讀書應事之暇, 另加講究, 以爲他日應用之需, 可也。 未知尊意以為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