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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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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암 김장준영에게 올림(上炳菴金丈(駿榮) 癸卯)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2.TXT.0017
병암 김장준영에게 올림
보내주신 편지에서 《논어》의 '재아(宰我)가 상(喪)에 대해 물은 장(章)'주 69)에서 《논어의의(論語疑義)》에서 경원보씨(慶源輔氏)는 윤 씨가 재아의 허물을 말하지 않은 것주 70)을 실수라 하였는데,주 71) 이것이 의심스럽다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의보씨는 윤 씨의 뜻을 알지 못한 것 같습니다. 윤 씨는 단지 물음을 제기한 본뜻만 말했을 뿐이요, 말이 옳고 그른 것까지는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이점은 주자가 이 설을 재아(宰我)가 질문한 것의 아래에 두고 전장(全章)의 아래에 두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의보씨의 설과 같다면 주자의 제설(諸說)에서 재아의 과실에 말한 것은 분명하고도 엄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왜 윤 씨 설을 취했겠습니까?
자하(子夏)의 문인소자장(門人小子章)주 72) 권하주(圈下註)에서 퇴계와 우암의 두 학설은 서로 다릅니다.주 73) 대개 퇴계는 '비위(非謂)' 두 글자가 '말(末)이 곧 근본(本)이다'까지 그친다고 보았으니 이는 정자설(程子說)의 후 네 개의 조주 74)에서 리(理)를 본(本)으로 여기고, 사(事)를 말(末)이라 인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자안설(朱子按說)》에서는 "네 조목은 모두 정조(精粗) 본말(本末)이 그 나뉨은 비록 다르지만 그 이치는 동일함을 밝혔다."고 했으니, '조말(粗末)'이라고 말한 것은 《소학》을 가리킨 것이고, '정본(精本)'이라고 말한 것은 《대학》을 가리킨 것입니다. '리는 하나'라고 말한 것은 《소학》과 《대학》의 소이연(所以然)을 가리킨 것이 명백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암이 '비위(非謂)' 두 글자로써 본(本)과 통한다고 한 것은 이곳에서 보면 아마 맞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석 69)《논어(論語)》……장(章)
재아가 묻기를 "삼년상은 기년만 하더라도 너무 오래한다고 할 것입니다. 군자가 삼년 동안 예를 행하지 않으면 예가 반드시 무너지고, 삼년 동안 음악을 익히지 않으면 음악이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묵은 곡식이 다 없어지고 새 곡식이 오르며, 불씨 만드는 나무도 바뀌어지니, 1년이면 그칠만합니다."라 하자 공자는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것이 너에게는 편안하느냐?"라 하니, 재아는 "편안합니다."라 하였다. 공자는 "네가 편안하다면 그리 하거라. 군자는 거상할 때 맛있는 것을 먹어도 달지 않으며,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거처함에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니, 네가 편안하면 그리 하거라."라 했다. 재아가 밖으로 나가자 공자는 "재아의 인하지 못함이여, 자식이 태어나서 3년이 지난 뒤에야 부모의 품을 벗어나게 된다. 삼년상은 온천하의 공통된 상이니, 재여는 3년의 사랑이 그 부모에게 있었는가?〔宰我問, "三年之喪, 期已久矣. 君子三年不爲禮, 禮必壞, 三年不爲樂, 樂必崩. 舊穀旣沒, 新穀旣升, 鑽燧改火, 期可已矣." 子曰, "食夫稻, 衣夫錦, 於女安乎?" 曰, "安." "女安則爲之! 夫君子之居喪, 食旨不甘, 聞樂不樂, 居處不安, 故不爲也. 今女安則爲之!" 宰我出. 子曰, "予之不仁也! 子生三年, 然後免於父母之懷. 夫三年之喪, 天下之通喪也, 予也有三年之愛於其父母乎!〕"라고 하였다. 《논어(論語)》 〈양화(陽貨)〉
주석 70)윤……하였는데
윤씨가 말하길, "상기(喪期)를 줄여야 한다는 말은 지극히 어리석은 자도 말하기를 부끄러워한다. 그런데 재아는 성인의 문하에서 직접 배운 자로서 이것을 여쭤본 것은 마음에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감히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라 했다.〔尹氏曰: "短喪之說, 下愚且恥言之, 宰我親學聖人之門, 而以是爲問者, 有所疑於心而不敢强焉爾."〕 《논어집주(論語集註)》 〈陽貨〉
주석 71)실수라 하였는데
慶源輔氏曰: 尹氏說固忠厚. 然宰我之失, 終在但其致問之時, 猶出於情. 實較之, 後世匿情行詐, 而口不相副者, 則猶為無隠耳.〕 《논어집주대전(論語集註大全)》 〈양화(陽貨)〉
주석 72)자하(子夏)의 문인소자장(門人小子章)
자유가 말하길, "자하의 제자들은 물 뿌리고 청소하며, 응대하고 진퇴하는 예절을 당해서는 괜찮으나, 이는 지엽적인 일이요, 근본적인 것은 없으니, 어찌하겠는가?"라 했다. 자하가 그 말을 듣고서 "아! 언유의 말이 지나치다. 군자의 도에 어느 것을 먼저라 하여 전수하며, 어느 것을 뒤라 하여 게을리 하겠는가? 초목에 비유하면 구역으로 구별되는 것과 같으니, 군자의 도가 어찌 이처럼 속이겠는가? 처음과 끝을 구비한 것은 오직 성인이시다."라 했다.〔子游曰, "子夏之門人小子, 當洒掃應對進退, 則可矣, 抑末也. 本之則無如之何?" 子夏聞之, 曰, "噫! 言游過矣! 君子之道, 孰先傳焉? 孰後倦焉? 譬諸草木, 區以別矣. 君子之道, 焉可誣也? 有始有卒者, 其唯聖人乎!"〕 《논어(論語)》 〈자장(子張)〉
주석 73)퇴계와 우암의 두 학설은 서로 다릅니다
이것은 《논어집주(論語集註)》 〈자장(子張)〉에서 정자가 "蓋與第一條之意, 實相表裏, 非謂末卽是本, 但學其末而本便在此也."라고 한 말에 대해, 퇴계는 '非謂'가 '末卽是本'까지 걸린다고 보았고, 우암은 '本便在此也'까지 걸린다고 보았던 것을 말한다.
주석 74)정자설(程子說)의 후 네 개의 조
또 말하길, "청소하고 응대하는 것은 곧 형이상(形而上)의 일이니, 이치에 대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오직 근독(謹獨)에 있는 것이다."라 했다. 또 말하길 "성인의 도는 다시 정(精)과 조(粗)가 없으니, 물 뿌리고 청소하며 응대하는 일로부터 의리를 정밀히 깨달아 입신(入神)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관통(貫通)하면 단지 한 가지 이치일 뿐이다. 비록 쇄소응대(灑掃應對)의 일이라도 다만 그 소이연(所以然)이 어떠한가를 찾아보아야 한다."라 했다. 또 말하길 "모든 사물에는 본말(本末)이 있으나 본(本)과 말(末)을 나누어 두 가지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쇄소응대(灑掃應對)가 바로 그러한 일이니, <여기에도> 반드시 소이연(所以然)이 있다."라 했다. 또 말하길 "쇄소응대(灑掃應對)로부터 올라가면 곧 성인(聖人)의 일에 도달할 수 있다."〔又曰: "灑掃應對, 便是形而上者, 理無大小故也. 故君子只在謹獨." 又曰: "聖人之道, 更無精粗, 從灑掃應對與精義入神, 貫通只一理. 雖灑掃應對, 只看所以然如何." 又曰: "凡物有本末, 不可分本末爲兩段事. 灑掃應對是其然, 必有所以然." 又曰: "自灑掃應對上, 便可到聖人事."〕라고 하였다. 《논어집주(論語集註)》 〈자장(子張)〉
上炳菴金丈(駿榮) 癸卯
下示《論語》宰我問喪章, 疑義輔氏雖以尹氏不言宰我之過爲失, 然恐輔失尹之意也。 蓋尹氏只說發問之本意而已, 未及說得失也。 觀朱子置此說於宰我問之下, 而不置於全章之下, 則可知矣。 若如輔說, 則凡朱子諸說, 說宰我之過者, 可謂明且嚴矣, 而何以取尹說也?
子夏之門人小子章圈下註, 退尤二說之異。 蓋退溪之以非謂二字止於末即是本看者, 以程子說後四條, 認理爲本, 認事爲末。 然朱子按說曰: "四條皆以明精粗本末, 其分雖殊, 而理則一", 則其云粗末者, 是指小學也, 其云精本者, 是指大學也。 其云理則一者, 是指小大學之所以然者, 可謂明白矣。 然則尤菴之以'非謂'二字通本, 便在此看者, 恐得正義, 未知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