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열람
  • 디렉토리열람
  • 유형분류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
  • 간재선생에게 올림(上艮齋先生 辛酉正月)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2.TXT.0006
간재선생에게 올림
전옹(임헌회)의 비(碑)와 작(爵), 그리고 시호(謚號)의 일에 대하여 지령(志令)이 서병갑(徐柄甲)에게 답한 선생의 편지를 근거로 모르고 있던 것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는 증거로 삼고서 "듣기에 오 모씨가 최근에 작과 시호에 관한 편지를 써서 다시 변론하였으며, 스승이 이미 견해를 바꾸었거늘 제자가 다른 견해를 펼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 하였습니다.
선생의 그 편지는 단지 두 공께서 자신을 사랑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뜻이거늘, 누가 견해를 바꾼 단안(斷案)으로 삼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편지 중에 '나를 부추겨 세워주고 나를 시원하게 해주었다'는 등의 구절은 아마도 지나치게 중시하고 기분 좋아한 실수가 있으니, 오로지 편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타인을 책망해서는 안 됩니다.
김제환(金濟煥)이 삭직을 당한 후에 즉시 자결하지 않고 수개월 늦춰 죽은 것은 너무 부끄러움을 모르는 짓입니다. 그러나 지령(志令)은 비록 삭직을 당하여 시간을 끌었더라도 끝내는 자결하였으니 의사(義士)가 되기에 부족하지 않다고 여기고서 신후문자(身後文字)를 써주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또 나에게 "간옹이 '삭직을 당한 후 자결했다고 하여 절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라 말한 것을 들었는데 너무 심한 처사인 듯하다."고 말하였습니다. 삭출되는 욕됨을 당하여 자결한 열부에 관한 글이 《약재집》에 실려 있는 것을 보면, 그는 이런 의리를 주장함에 매우 힘썼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배반하는 맹달(孟逹)주 15)과 달리, 일찍이 안록산(安祿山)이 안고경(顏杲卿)을 회유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끝내 절개를 세워주 16) 주자로부터 칭송을 받은 일을 기록했다면, 이것에 대해서는 마땅히 다시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또 삭직을 당하고 스스로 자결한 자가 군자에게 칭송을 받지 못한 것은 삭직을 당하고 죽지 않은 자와 똑같이 절개를 잃어 군자에게 버림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아무런 이로움이 없는데 자신의 몸을 죽이겠습니까? 장차 머리를 깎은 학자가 뻔뻔한 낯빛으로 정좌하여 성인의 경전을 담론하는 자가 세상에 즐비함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혹 저 사람(김제환)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누가 기꺼이 의리로 대항하여 굽히지 않아서 머리를 억지로 깎는 치욕을 취하겠습니까? 장차 의리를 잊고 욕됨을 참아서 구차하게 몸뚱이를 보호하려 하는 무리가 천하에 흘러넘침을 보게 될 것이니, 저 쇠한 세상에서도 해가 됨이 도리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항상 마음속에 의심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대가 나를 위하여 스승에게 질문할 수 있는가.'라고 운운한 것은 이미 지령에게 들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히 여기에서 모두 아룁니다.
○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매번 선비가 삭직을 당하여 죽지 않은 것과 부인이 강제로 욕을 당했는데 죽지 않는 것은 본래 논의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부끄러움을 알고 분함을 품어서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즉시 자결하는 자는 그 선비의 생도들이 사숙에서 제사지내고, 부인의 자손들이 별실에다 제사를 지내되【이렇게 하면 대접하는 것이 박하지 않고 후하다 말할 수 있다】 성묘(聖廟)와 현원(賢院)의 제향에서 합독(合櫝),주 17) 부조(祔祖)주 18)의 예에는 참가할 수 없으니, 이렇게 헤아려 처리하는 것이 정밀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내가 일찍이 내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처한 경우를 설정하여 생각을 해봤는데, 당시의 잘못된 행위가 비록 본심에서 나온 것은 아닐지라도 몸을 훼손한 것은 훼손한 것이고, 몸을 더럽힌 것은 더럽힌 것이다. 어찌 천지 사이에 올바르게 설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후인들이 비록 내치지 않으려 하더라도 그 귀신이 스스로 감히 버젓이 성현의 반열과 조상의 제향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나의 마음은 이와 같다. 그러므로 이를 미루어 다른 사람에게 적용했을 따름이니, 일부러 이것 때문에 각박하게 의론을 전개하여 인의의 성(性)을 손상시키려 한 것은 아니다.
지산이 이미 '어찌 이익이 없는데 몸을 죽이겠는가.'라고 말하고, 다시 어찌 '의리로 대항하여 굽히지 않고 욕됨을 취하겠는가.'라고 했으니, 진실로 이와 같다면 저 사람의 자결은 부끄러운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오로지 포상을 받고 싶은 생각에서 나왔을 따름이니 또한 어찌 숭상하겠는가."
주석 15)맹달(孟達 ?~228)
자는 자경(子敬)이다. 삼국 시대 촉한의 장수로, 부풍군 사람이다. 관우(關羽)의 원군 요청을 무시하여 관우가 죽자, 위나라에 항복해서 조비의 총애를 받아 신성(新城)을 지키고 있었는데, 이때 그는 촉을 배반한 척하였지만 실제로는 오(吳)와 연결하고 촉과 굳게 맺고서 중국(中國)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제갈량이 북벌을 시작하면 내응하기로 한 밀약이 탄로 나자, 다시 위나라를 배반하였고, 후에 사마의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주석 16)안고경(顔杲卿, 692~756)
중국 당나라 현종(玄宗) 때의 충신이다. 상산군(常山郡)의 태수(太守)로 있을 때 종제(從弟)인 안진경(顔眞卿)과 함께 안녹산(安祿山)의 반란군에 맞서 싸웠으나, 성이 함락되자 안녹산에게 붙잡혔고, 그를 크게 꾸짖고 낙양(洛陽)으로 압송된 뒤 죽임을 당했다.
주석 17)합독(合櫝)
부부의 신주를 나무로 짠 궤에 함께 넣어두는 것을 뜻한다.
주석 18)부조(祔祖)
죽은 자의 신주를 선조의 신주 곁에 합사하는 것, 또 합사하고 지내는 제사를 뜻한다. 합사에서는 소목(昭穆)의 순서에 맞추게 된다.
上艮齋先生 辛酉正月
全翁碑爵謚事, 志令據先生答徐柄甲書, 爲幡然改悟之證, 而曰 : "聞吳某近以爵謚當書, 復有所辨, 師既改見, 而弟子異論, 何也?" 蓋先生此書, 只謝二公相愛之意, 孰謂其幷作改見之案也? 然書中扶竪我, 灑濯我等句, 恐或失之太重太快, 不可專以不悉書責人也。
金濟煥見削後, 不即自裁, 遲緩數月而死之者, 已極無恥。 而志令以為雖則見削, 竟至自裁, 則不失爲義士, 既許其身後文字。 且謂小子曰 : "聞艮翁謂'見削自死, 不成爲節義,' 似涉已甚。" 而以刪出見辱自裁之烈婦文字, 於《約齊集》觀之, 其主此義也更力矣。 然反覆無狀之孟逹, 嘗著祿山帶之顏杲卿, 以終能立節, 見褒於朱子, 則此合有更商者矣。 且見削自死者, 不見褒於君子, 則與見削不死者, 均之爲失節, 而見棄於君子一也。 孰肯無所益而殺其身哉? 將見髠薙學子, 靦然危坐談聖經者, 比肩於世矣。 其或與彼人相關。 又孰肯抗義不屈, 取勒削之辱哉? 將見忘義忍恥, 茍容保軀之徒, 滔滔天下矣, 其爲衰世之害也, 反或不少矣。 此尋常蓄疑于中者, 君可爲我稟質于臯比云云, 既有所聞于志令者, 故敢此具白。
○ 先生答書曰 : "愚每謂士之被削婦之強辱而不死者, 本不足言矣。 唯其知恥懷憤, 而不淹晷刻, 即地自裁者, 其士之生徒, 祀之私塾, 婦之子孫, 祭之別室【如此則其待之, 亦可謂不薄而厚矣】, 而不得與於聖廟賢院之享, 合櫝祔祖之禮, 是其裁量不可謂不精矣。 愚嘗設以身處其地而思之, 當時之失, 雖非本心, 毀形則毀形, 汙身則汙身矣。 柰何立於天地之聞乎? 故不得以不死矣。 後人雖欲勿降, 然其鬼自不敢偃然入於聖賢之列, 祖考之享矣。 自己之心如此。 故推之以施於人爾, 非故爲是刻核之論, 以自傷其仁義之性也。 志山既謂孰肯無所益而殺身, 再謂孰肯抗義不屈而取辱, 信如此, 言彼之自裁, 非發於羞恥之心, 乃專出於褒賞之意爾, 亦何足尚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