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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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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재선생에게 올림(上艮齋先生 庚申)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2.TXT.0004
간재선생에게 올림
노사(蘆沙)가 명덕(明德)을 논하면서 본심으로 그 이름을 정하고, 물을 담는 소반과 음식을 담는 그릇을 비유주 12)로 삼고서 "기의 정상(精爽)이다."라 말했고, "분명 이것은 기로서 말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명덕을 기의 범주(氣分)에 소속시킨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데, (노사는) 명덕은 기이므로 기를 밝히는 학문이라고 배척한 것은 어째서입니까?주 13) 이는 아마도 단기지설(單氣之說)을 비난한 것입니다. 그러나 단기지설 역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호흡의 출입과 기혈의 승강을 명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감로(甘露)가 보리(來牟-來麰)이다'주 14)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비난을 당하는 것이 진실로 마땅합니다. 만약 주장하는 바의 명덕의 명목을 다만 심의 기에 소속시킬 수 있어도 성의 리에 소속시킬 수 없다고 하는 자에 대해 단기(單氣)의 죄를 억지로 가하여 배척한다면, 노사는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노사연보(蘆沙年譜)》를 보니 "박영수에게 답한 편지에서 '명덕을 단기로 보는 설을 반박한다.'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 본래 편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배척한 것은 저곳에 있지 이곳에 있지 않습니다. 다만 명덕을 곧바로 리라고 하거나 리기의 합이라 하여, 심에 나아가 성을 가리키는 것에 대해서 노사도 심히 배척한 것이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는 헐뜯은 것입니다. 노사가 세상의 도를 걱정한 것은 오로지 저기에만 있고 여기에는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점은 《연보》중에서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거늘 선사(先師)의 공정한 혜안으로도 끝내 편견을 지닌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러나 《연보》의 실수가 다만 하나는 들고 하나는 버린 것이니 오히려 크게 해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 묘지명에 이르러서 기의 정묘함과 거침(精粗)을 구분하지 않고, 곧바로 '명덕은 기이다'라고 생각한 것은 쇠를 은이라 부르는 것처럼 잘못된 것입니다. 그 《전집》중에 "기의 정상은 분명히 기이다" 등의 구절은 어떻게 구분하여 처리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문인과 자손들의 마음을 진실로 알 수 없습니다.
주석 12)물을……비유
기정진은 "'명덕은 단지 기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겠는가?' 말하였다. '기물(器物)로서 비유하면 기(氣) 자는 단지 그릇만을 가리키는 것이고, 명덕은 물이 담겨 있는 그릇을 가리키는 것이다.'〔明德單屬氣分乎? 曰 : '以器物譬之,則氣字單指盤盂,明德指儲水之盤盂.'〕"ㆍ"생각건대 본심은 이름하면 명덕이니, 이것에는 반드시 그 까닭이 있다. 내가 일찍이 밥그릇으로 비유하였는데, 둥근 주발에 쌀밥이 가득 담긴 것이 명덕이다.〔惟人之本心,乃名明德,是必有其故矣. 愚嘗譬之食器,一圓鉢盂滿載玉食者,是明德也.〕" 《답문류편(答問類編)》 권6 대학삼지이(大學三之二)〉
주석 13)명덕은……어째서입니까?
기정진은 "명덕은 오직 기를 가리킨다'는 설이 요즘 세상에 파다하지만 내 귀에는 거슬리는 말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내 견해로 배척하면서 "명덕이 기라면 명명덕은 기를 밝히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明德單氣"之說,近日頗行於世,而礙於淺者之耳,卽嘗妄闢之曰:"明德是氣,則明明德是明氣也.〕"라고 하였다. 《노사집(蘆沙集)》 권6 〈답박형수(答朴瑩壽)〉
주석 14)호흡의 보리이다
기정진은 "이제 한 가지 비근한 일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감로는 술에서 생기지 않습니까? 술은 누룩에서 생기지 않습니까? 누룩은 보리에서 생기지 않습니까? 이제 어떤 사람이 '감로가 보리이다'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반드시 말이 되지 않는다고 여길 것입니다. '명덕이 기이다'라는 설이 어찌 이것과 다르겠습니까.〔今請以一淺事喩之. 甘露不生於酒耶?酒不生於麴糱耶?麴糱不生於來麰耶?今有言者曰:"甘露來麰也",則人必以爲不成說話. "明德是氣"之說,何以異此?〕"라고 하였다. 《노사집(蘆沙集)》 권6 〈답박형수(答朴瑩壽)〉.
上艮齋先生 庚申
蘆沙之論明德, 以本心定其名, 以儲水之盤載食之鉢取譬, 而曰"氣之精爽," 曰"分明是以氣言者。" 其屬明德於氣分也, 不啻明白, 而其斥明德是氣, 爲明氣之學者, 何也? 此則蓋斥單氣之說也。 然單氣之說, 亦有兩般。 其以噓吸之出入榮衛之升降爲明德, 如甘露來牟之說者, 其見斥也, 固宜矣。 若以其所主之名目, 但可屬心之氣, 而不宜幷屬性之理者, 勒加單氣之罪而斥之, 蘆沙之所必不爲也。 今見〈蘆沙年譜〉, 云答朴瑩壽書, "驳明德單氣之說。" 此則按其本書而可知。 其所斥者在彼而不在此也。 但以明德爲直是理爲理氣合, 卽心指性, 亦蘆沙之所深斥, 而一邊之所喙喙者也。 蘆沙之爲世道憂不獨在彼而不在此。 此則年譜中, 一不槩及, 使其先師之公眼, 終歸於偏見, 何也? 然年譜之失, 但在於一舉而一遺, 猶爲無傷也。 至其墓銘, 則不分氣之精粗, 直以爲明德是氣, 喚鐵作銀。 未知其《全集》中, "氣之精爽分明是氣"等句, 將何以區處耶。 其門人子孫之心, 誠莫之知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