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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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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재선생에게 올림(上艮齋先生 庚申)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2.TXT.0003
간재선생에게 올림
보내주신 편지를 가을에 받아보았는데, 심과 성의 선함을 따로 논한다면 손님과 주인으로 나눌 필요가 없다고 하신 것은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다만 《맹자》의 '풍년 든 해에는 젊은이들이 대부분 게으르다.[富歲子弟多賴]'는 장주 10)을 근거로 보면, 본지(本旨)는 성선(性善)을 주로 논하고 그것을 심선(心善)으로 증명하고자 한 것인데, 거기에서 '심이 선하다.'고 말한 것은 성선(性善)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그러함을 알 수 있을까요. 즉 제3절의《맹자집주》에 나오는 "사람의 성(性)이 선한 것은 성인과 같다."주 11)는 한 구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맹자》 〈고자편(告子篇)〉의 '기류단수(杞柳湍水)'로부터 이 장(章)에 이르기까지 모두 성선(性善)을 주로 말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이 장에서 논하지 않고, 심과 성의 선함을 따로 떼어 논한다면 참으로 손님과 주인으로 나누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만일 또 이 장에서 성선(性善)을 위주로 논한 것을 근거로 마음이 선하다 하여 후대에 끼친 맹자의 큰 공효를 말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 또한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일찍이 공자의 초상화를 보니, 그 원본은 대부분 서로 달랐습니다. 이것이 진짜이면 저것은 반드시 진짜가 아니고 저것이 진짜면 이것은 반드시 진짜가 아닌데도, 모두 똑같이 공경을 표하고 있으니 아마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 그것들을 가려서 취사선택하려 한다면, 2천 년 전 성인의 모습을 무엇을 근거로 알 수 있겠습니까? 공자의 초상만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요순과 기자로부터 안자, 증자, 자사, 맹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남아있는 초상화가 있지만, 그 그림이 하나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순수하고 질박한 상고(上古) 시대에는 이처럼 꾸며서 그린 일은 없었을 것이고, 하ㆍ은ㆍ주 이전의 경전(經傳)과 사책(史策)에서도 일찍이 후세의 화상찬(畵像賛)ㆍ사조명(寫照銘)과 같은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가령 참 모습을 그리는 풍속이 옛날부터 있었다고 하더라도 화가마다 취향이 같지 않고 장단점이 또한 달라 묘사할 것을 묘사하지 않거나 묘사하고 싶어도 그럴 겨를이 없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며, 혹은 후대에 그림에 헤아릴 수 없는 변고가 발생하여 이미 참 모습을 그렸다고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지켜 보호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진영(眞影)을 그리는 풍속이 우리나라에서도 성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퇴계(이황), 율곡(이이), 사계(김장생), 우암(송시열)과 기타 제현들의 초상이 혹은 있기도 하고 혹은 없기도 하며 전해지기도 하고 유실되기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요순 이하의 여러 성현들은 화가의 취향이나 장단점에 따라 다르게 그린 초상이 한 점도 없고 아울러 후대에 초상에 사고도 나지 않고서 수천 년의 오랜 세월 뒤에도 그 초상을 보존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저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상고 성현의 초상은 대부분이 후대의 호사가의 손에서 나왔으며 당시의 진짜 초상은 아니라고 여깁니다. 만약에 참 모습의 초상이 아닌데 공경을 표한다면 성현을 업신여기는 결과가 되지 않겠습니까.
주석 10)《맹자(孟子)》……장
《맹자(孟子)》 〈고자상(告子上)〉 7장을 말한다. 맹자는 "풍년에는 자제들이 의뢰함이 많고, 흉년에는 자제들이 포악함이 많으니, 하늘이 재주를 내림이 이와 같이 다른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빠뜨리는 것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 모맥을 파종하고 씨앗을 덮되 그 땅이 똑같으며 심는 시기가 똑같으면, 발연히 싹이 나와서 일지의 때에 이르러 모두 익으니, 비록 똑같이 않음이 있지만 이것은 땅에 비옥함과 척박함의 차이가 있으며, 우로의 배양과 사람이 경작하는 일에 똑같지 않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류인 것은 대부분 서로 같으니, 어찌 홀로 사람에 이르러서만 의심하겠는가? 성인도 나와 동류이다. 그러므로 용자는 발을 알지 못하고 신을 만들더라도 내가 그 삼태기를 만들지 않을 줄은 안다고 하였으니, 신이 서로 비슷함은 천하의 발이 같기 때문이다. 입이 맛에 있어서 즐김을 똑같이 함이 있으니, 역아는 먼저 우리 입이 즐기는 것을 안 자이다. 가령 입이 맛에 있어서 그 성이 남과 다름이 마치 개와 말이 우리와 동류가 아닌 것처럼 다르다면, 천하가 어찌 맛을 즐기기를 모두 역아가 조리한 맛을 따르듯이 하겠는가? 맛에 이르러서는 천하가 역아가 되기를 기약하니, 이것은 천하의 입이 서로 같기 때문이다. 귀에 있어서도 그러하니, 소리에 있어서는 천하가 사광이 되기를 기약하니, 이것은 천하의 귀가 서로 같기 때문이다. 눈에 있어서도 그러하니, 자도에 있어서 천하가 그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이가 없으니, 자도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자는 눈이 없는 자이다. 그러므로 입이 맛에 있어서 똑같이 즐김이 있고, 귀가 소리에 있어서 똑같이 들음이 있으며, 눈이 색에 있어서 똑같이 아름답게 여김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 마음에 이르러서만 홀로 똑같이 옳게 여기는 것이 없겠는가? 마음에 똑같이 옮게 여기는 것은 어떤 것인가? 리이며 의이다. 성인은 우리 마음이 똑같이 옳게 여기는 것을 먼저 아셨다. 그러므로 리와 의가 우리 마음에 기쁨은 추환이 우리 입에 좋은 것과 같다.〔孟子曰, "富歲, 子弟多賴, 凶歲, 子弟多暴, 非天之降才爾殊也, 其所以陷溺其心者然也. 今夫麰麥, 播種而耰之, 其地同, 樹之時又同, 浡然而生, 至於日至之時, 皆熟矣. 雖有不同, 則地有肥磽, 雨露之養·人事之不齊也. 故凡同類者, 擧相似也, 何獨至於人而疑之? 聖人, 與我同類者. 故龍子曰, '不知足而爲屨, 我知其不爲簣也.' 屨之相似, 天下之足同也. 口之於味, 有同耆也, 易牙先得我口之所耆者也. 如使口之於味也, 其性與人殊, 若犬馬之與我不同類也, 則天下何耆皆從易牙之於味也. 至於味, 天下期於易牙, 是天下之口相似也. 惟耳亦然. 至於聲, 天下期於師曠, 是天下之耳相似也. 惟目亦然. 至於子都, 天下莫不知其姣也. 不知子都之姣者, 無目者也. 故曰, 口之於味也, 有同耆焉, 耳之於聲也, 有同聽焉, 目之於色也, 有同美焉. 至於心, 獨無所同然乎? 心之所同然者何也? 謂理也, 義也. 聖人先得我心之所同然耳. 故理義之悅我心, 猶芻豢之悅我口.〕"라 했다.
주석 11)사람의……같다
《맹자(孟子)》 〈고자상(告子上)〉의 "성인도 나와 동류이다.〔聖人, 與我同類者.〕"에 대해 《맹자집주(孟子集註)》에서 "성인 또한 사람이니, 그 성의 선함이 같지 않음이 없다.〔聖人亦人耳, 其性之善, 無不同也.〕"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上艮齋先生 庚申
秋聞下誨, 各論心性之善, 不須分賓主, 謹聞命矣。 但據《孟子》富歲子弟多賴章, 本旨是主論性善, 而證之以心善。 其言心善者, 乃所以明性善也。 何以知其然也? 觀於第三節《集註》"人性之善, 與聖人同一"句, 已可知矣。 又以《孟子》此篇自杞柳湍水以至此章, 皆主言性善故也。 若不就論於此章, 而各論心性之善, 則固當不分賓主矣。 若又必以此章之主性善, 禁不言孟子心善大功, 則大不然矣。 嘗見孔聖畵像, 其本多各異。 此眞則必彼非, 彼眞則必此非, 而均爲致敬, 恐爲未安。 欲揀別取舍, 則二千年前聖人狀貌, 何從而知之? 非惟孔聖之像爲然, 自堯舜箕子, 以及顏曾思孟, 皆有遺像, 而亦各非一本。 蓋上古淳質之時, 未必其有此等彌飾之事, 且於三代前經傳史策, 未見有如後世畵像賛寫照銘之類矣。 借令寫眞之俗, 從古有之, 或人之趣味不同, 修短亦異, 可寫而不寫, 欲寫而未暇者有之, 或事故莫測, 已寫而未克保守者有之。 故摹影之俗, 在我東不爲不盛, 而如退栗沙尤其他諸賢之肖像, 或有或無, 或傳或佚, 夫何堯舜以下諸聖賢, 一無趣味修短之不同, 幷無後世之事故, 而保其遺像於數千載之久乎? 故妄意以爲上古聖賢之像, 多出於後世好事者之手, 而非當日之眞像也。 如果致敬於非眞之像, 則不幾乎慢聖賢之歸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