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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재선생에게 올림(上艮齋先生 已未)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2.TXT.0001
간재선생에게 올림
삼가 선생께서 창암(蒼巖, 김낙규)에게 보낸 편지를 보고 난 뒤, 〈면암연보(勉菴年譜)〉중에서 면암이 의병을 일으켰을 때 선생께 편지를 보내 일을 함께하자 했는데 선생께서 응하지 않았다는 말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충직한 기풍을 지닌 면옹(勉翁)이 죽은 지 10년이 채 안 되어 실상과 어긋나는 문장이 돌연 그의 문하에서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면암 어른이 편지를 쓰려고 했던 당시에 임씨가 그것을 막고 좨주(祭酒)를 도모했다는 설에 대해서는 이상래(李相來)가 직접 들은 것과 송정용(宋楨鏞), 김교윤(金教潤)이 전한 말이 뚜렷하여 차이가 없으니 참으로 창암이 편지에서 한 말과 같습니다. 또한 선생께서는 전일건(田鎰健)과 저(김택술(金澤述)를 보내 진중(陣中)에 있는 면암 어른에게 편지를 전하면서 했던 그 내용을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내용 중에 "면암 대감이 나이 80세에 군대를 이끌고 나라에 보답하기 위해 죽으려고 하니, 내가 비록 그 일을 함께할 재주는 없지만, 가까운 곳에 머문 것을 보고도 편지 한 장 써서 위문하지 않는다면 마음이 대단히 편치 못할 것입니다."주 1)라고 어찌 말하지 않았던가요. 창의소(倡義所)에 갔는데 만약 《명의록(名義錄)》에 이름을 올린다면, 저는 조부모님도 살아 계시니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전일건은 허락하지 않았겠습니까.
정말로 면암 어른이 먼저 편지를 보냈다면 선생의 답서에서 어찌 한 글자도 물음에 답하는 말이 없겠습니까. 사랑하는 손자로 하여금 《명의록》에 이름을 올리게 하였다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또한 얼마나 깊을까요. 면암 편지의 존재 여부와 선생의 마음을 이에서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선생께서 실제로 면암의 편지를 보고도 응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응하지 않은 것은 또한 재주와 형세를 헤아렸기 때문이며 한편으로 지키는 의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병을 일으킨 것이 전적으로 옳은 것이 아니며 의리를 지키는 것[守義]주 2)이 전적으로 그른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자신에 호응하지 않은 다른 사람을 지적하여 나의 스승만이 홀로 어진 것을 드러낸 것도 옳지 않은데, 더구나 애당초 선생에게 일을 함께 하자는 편지도 보낸 적이 없으니, 어찌 응답한 여부에 대해 논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런 상황인데 반드시 없었던 일을 있었다고 하며 거짓된 것을 사실이라고 우겨서 후대에 공적으로 전하려고 한다면 매우 괴이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주석 1)면암 대감이……것입니다
《추담별집(秋潭別集)》 권1 〈여최면암(與崔勉菴)〉의 편지를 요약한 내용이다.
주석 2)의리를 지키는 것[守義]
여기서는 의병을 일으키는 것과 상대되는 의미로 거병하지 않고 개인적인 의리를 지킨 것을 가리킨다.
上艮齋先生 已未
伏見先生抵蒼巖書, 知〈勉菴年譜〉中, 有起義時, 貽書先生共事不應之語。 不圖斯翁忠直之風, 不待身後十年而爽實之文, 遽出於其門下也。 當日勉丈之欲作書也, 林氏之沮之以方圖祭酒之說, 李相來之親聞, 宋楨鏞金教潤之所傳, 歷歷不差, 信有如蒼書中所云者。 且先生不記送鎰健與澤述致書勉丈陣中時訓辭乎? 豈不曰"勉台八耋, 從戎以死報國, 吾雖才之不能共事, 見留近地, 拜闕一書相問, 心甚未安"? 往至義所, 若使參名義錄, 則澤述有重堂在, 不可擅爲, 鎰健則許之也乎? 果勉丈有先施者, 書中胡無一句辭答之語乎? 而必令愛孫而參名, 則其欽祝冀成之意, 又何如也? 勉書有無先生心事, 此可知矣。 借使先生實見勉書而不應, 其不應者, 亦各有所度之材勢, 又不無所守之義理, 未必舉義之專美, 守義之全非。 初不宜表出別人之不應, 用彰吾師之獨賢, 况於先生初無共事之書, 又何應不應之可論也? 乃必欲以無有爲, 馮虛作實, 公傳道之於後世, 不亦異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