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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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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재선생에게 올림(上艮齋先生 戊午)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1.TXT.0023
간재선생에게 올림
일전에 올린 〈노화동이고(蘆華同異考)〉는 간간이 보셨는지요? 대체로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와 화서(華西 이항로(李恒)) 두 어른이 이처럼 서로 다른 부분이 있는데 두 문하의 문인들이 반드시 억지로 모아다 같게 하려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이는 반드시 그 까닭이 있습니다. 율곡(栗谷 이이(李珥))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이후로 도체(道體)는 형체(形體)가 없고 작위(作爲)가 없으며 리(理)는 정의(情意)와 조작(造作)이 없다는 취지가 우리나라에서 크게 밝혀져 학문(學問)하는 사람들의 다반사로 하는 상담(常談) 같이 되었습니다. 무릇 사람의 마음은 일상적인 것은 싫어하고 새로운 것을 찾습니다. 이때에 이르러 남쪽(기정진)에서는 리(理)에는 조종(操縱)과 적막(適莫)주 84)이 있다는 의론이 나왔고, 북쪽(이항로)에서는 태극(太極), 성정(性情), 공효(功效)의 설이 나와 당시 세상의 새로운 것을 찾는 이들의 이목을 자극시켰습니다. 이에 사람들이 그쪽으로 휩쓸려 기뻐 따르면서 두 어른이 성학이 전해오지 않던 비밀을 터득하여 남현(南賢 기정진)과 북현(北賢 이항로)이 천 리나 떨어져 있어도 그 논조(論調)가 똑같다고 하면서 두 어른의 명덕(明德), 심성(心性) 등에 관한 설이 연(燕)나라와 월(越)나라의 거리만큼 서로 어긋나 있음을 미처 자세히 살피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두 어른의 평소의 의론을 총괄하여 논해 보면, 노사의 이른바 리와 태극이라는 것은 외려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잃지는 않았지만 리가 기의 주재가 된다고 보는 것이 너무 심하여 〈외필(猥筆)〉주 85)의 실수를 빚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화서의 이른바 리와 태극이라는 것은 실로 심(心)이고 기(氣)이지 다시는 본래면목이 아닙니다. 대개 노사의 재주는 화서보다 뛰어나지만 공부는 화서에 미치지 못하고 화서의 의론은 노사보다 자세하지만 그 견해는 노사에 미치지 못합니다. 노사가 호도(糊塗)함은 얕아서 사람들에게 끼치는 해가 적고 화서가 호도함은 깊어서 사람들에게 끼치는 해가 크니 높고 낮음(高下), 크고 작음(大小), 얕고 깊음(淺深) 사이에서 또 두 어른을 알 수 있습니다. 망령된 의론이 이에 이르니 참으로 세인(世人)들에게 꺼려지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선생님 앞에 드러내 고하여 질정(質正)받지 않을 수 없으니 부디 헤아려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주석 84)적막(適莫)
적(適)은 어느 사물에 열중하는 것을 말하고 막(莫)은 그 반대로 싫어하는 것을 말한다.《논어(論語)》〈이인(里仁)〉에 다음과 같은 말이 수록되어 있다. "군자는 반드시 하려고 하는 것도 없고, 반드시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없다. 오로지 합리적인 것만을 따를 뿐이다〔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주석 85)외필(猥筆)
율곡의 이기론(理氣論)을 비판한 기정진의 글로,《노사집(蘆沙集)》卷16〈잡저(雜著)〉에 수록되어 있다.
上艮齋先生 戊午
日前所上〈蘆華同異攷〉, 間垂下覧否? 大抵二丈之相異, 有如此者, 而兩門門徒, 必欲牽合而同之者, 何也? 是必有其故也。 栗尤以降, 道體無形無爲, 理無情意造作之旨, 大明於我東。 有同學問家茶飯常談。 夫人之情, 常則厭之, 而思其新者矣。 迨是時也, 南有理有操縱適莫之論, 北有太極性情功效之說, 以砭起一世思新之耳目。 於是衆皆靡然喜而從之, 以爲二丈得聖學不傳之秘, 而南賢北賢, 相距千里, 其揆一也, 而不及細察其明德心性等說, 燕越相左也。 雖然, 總括二丈平生議論而論之, 蘆沙之所謂理與太極者, 却不失本來面目, 但看得理爲氣主太重, 而至有〈猥筆〉之失。 華西之所謂理與太極者, 實心也氣也, 而非復本來面目矣。 蓋蘆沙之才, 過於華西, 而用功不及華西, 華西之論, 詳於蘆沙, 而其見不及蘆沙。 蘆沙之惑淺, 而害之被人者小, 華西之惑深, 而害之被人者大, 高下大小淺深之間, 又可以知二丈矣。 妄論及此, 固知爲世所諱。 然先生之前, 不容不暴白取正, 幸賜裁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