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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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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재선생에게 올림(上艮齋先生 乙卯)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1.TXT.0017
간재선생에게 올림
보낸 편지에서 성은 기의 성이요, 기는 성의 기라는 두 구절에 대해서 저는 아마 선생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이라는 것은 기질이 갖추고 있는 성리이고, 기라는 것은 성리를 싣고 있는 기질입니다. 이와 같다면 리에 장애가 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리기가 서로 떨어지지 않는 오묘한 이치에 대해서도 말이 더욱 절실할 것이니, 어찌 감히 이전의 현인이 말하지 않은 것이라고 의심할 것이 있겠습니까? 다만 이천(정이)의 '다만 사람이 품부받는 것을 풀이한 것이다'라는 한 구를 전적으로 성의 기를 말한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아마도 다시 상량해 보아야 할 듯 합니다. '다만 사람이 품부받는 것을 풀이한 것이다'라는 것은 바로 생지위성을 풀이한 것입니다. 생지위성과 천명지위성을 대비해보면 생지위성은 기질지성을 가리켜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품부 받았다는 것은 또 아래 문장의 강유(剛柔)와 완급(緩急)을 말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 이 성의 기라고 운운하였으니, 이는 다만 아직 병통에 이르지 않은 이 성이 실려 있는 기를 이르는 것입니다. 병통이 없는 성의 기로써 가지런하지 않은 품수를 해석한다면,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성(性)은 순수(純粹)하고 지선(至善)하여 애초에 한 점의 하자도 없습니다. 기질(氣質)이 구속하고 물욕이 가리우게 되면 이 성은 이로 인하여 함몰되고 손상됩니다. 그러나 그 함몰되고 손상된 것은 기욕(氣欲)이지 성이 아닙니다. 다만 기욕에 가로막혀 순선한 본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함몰되고 손상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지극히 밝은 해와 지극히 맑은 물이 구름과 안개에 가리고 모래와 진흙에 뒤섞여 밝고 맑은 체(體)가 이 때문에 혼탁해진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혼탁해진 것은 구름과 진흙이지 해와 물이 아닙니다. 다만 구름과 진흙에 구애되어 밝고 맑은 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혼탁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대개 성은 기욕을 제어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명령을 따르게 할 수 없기 때문에주 54) 함몰되고 손상될 우려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순선한 리는 끝내 기욕이 더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록 함몰되고 손상된다고 하더라도 그 본체(本體)는 본래 그대로 있습니다.
주석 54)성은……때문에
주자의 성리학에서 性과 理는 철저하게 無爲의 실체이며 원리이다. 간재는 주자의 이러한 성리의 특성을 계승하여 리는 無爲하고 기는 有爲하다고 한다. 주자와 간재에 있어 성과 리는 역동성과 활동성이 없는 원리와 실체일 뿐이다. 性과 理는 心이라는 지각작용과 格物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그래서 "성은 기욕을 제어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명령을 따르게 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上艮齋先生 乙卯
下示性者, 氣之性, 氣者, 性之氣二句, 竊恐先生之意。 蓋曰性者, 氣質所具之性理也, 氣者, 性理所載之氣質也。 如此則不惟無礙於理也, 其於理氣不相離之妙, 說得尤切, 豈敢以前賢之不言有所疑貳也。 但以伊川止訓所禀受一句, 專說性之氣, 則恐合更商。 蓋止訓所禀受, 是正釋生之謂性者。 而生之謂性與天命之性對擧, 則其以氣質性言者, 可知也。 然則其所禀受者, 又非下文剛柔緩急之謂乎? 今此性之氣之云, 是但謂此性所載之氣未及乎病痛者也。 以無病之性之氣, 釋不齊之所禀受, 似不相稱, 未知如何?
人之性, 純粹至善, 初無一點之疵。 及其氣質拘之, 物欲蔽之, 此性以之汨亂鑿喪矣。 然其所汨鑿者, 氣欲也, 非性也。 特爲氣欲之障, 而不見純善之體。 故謂之汨鑿也。 譬如至明之日, 至淸之水, 爲雲霧之掩, 沙泥之混, 明淸之體, 以之昏濁矣。 然其所昏濁者, 雲泥也, 非日水也。 特爲雲泥之礙, 而不見明淸之體, 故謂之昏濁也。 蓋性不能制氣欲, 而使之聽命。 故有汨鑿之累。 然其純善之理, 終非氣欲之所可汙衊者。 故雖曰汨鑿, 而其本體固自若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