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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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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재선생에게 올려 박창현의 편지를 논함(上艮齊先生論朴昌鉉書 乙卯)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1.TXT.0016
간재선생에게 올려 박창현의 편지를 논함
박창현의 편지에 성현(聖賢)이 기질지성(氣質之性)을 발명했다고 운운한 것에 대하여-1
기질지성이라는 명칭은 장자(張子 장재(張載))로부터 비롯되었는데, 그는 "잘 돌이키면 천지지성(天地之性)이 있게 된다."라고 하였습니다.주 53) 이미 잘 돌이키라고 말했다면 이미 기(氣)와 섞인 좋지 않은 사물인 것인데, 지금 애당초 이른바 잘 돌이키는 공부 없이 곧바로 그 섞이지 않은 체(體)를 보라고 하니, 그 섞이지 않은 체가 바로 천지지성입니다. 잘 돌이키는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천지지성이 저절로 있게 된다면 역시 순선(純善)한 성이니 어찌 굳이 '기질지성은 군자가 성으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


박창현의 편지에 총명예지(聰明睿知)를 운운한 것에 대하여-2
기질은 비록 청명(淸明)하고 순수(純粹)하더라도 도리어 지각(知覺)과 정의(情意)가 없는 것입니다. 무릇 지각과 정의가 있는 것은 바로 심(心)의 능력입니다. 대개 총명예지는 지각, 정의가 있는 것과 관계되니 심이라고 할 수 있지 기질이라고 할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다만 성인(聖人)의 기질은 청명하고 순수하기 때문에 그 심이 이로 인해 총명예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대학》의 서문에서 기품(氣稟)이 같지 않음에 대하여 말하고,《중용장구》에서는 나면서부터 아는[生知] 자질로 말하였던 것입니다.


박창현의 편지에 품부받은 곳에 통함과 가려짐, 열림과 막힘[通蔽開塞]이 있다고 운운한 것에 대하여-3
통함과 가려짐, 열림과 막힘은 바로 발용(發用)한 뒤의 일인데, 지금 이것을 가지고 품부받은 곳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품부받은 곳에서 이 성(性)이 이미 기(氣)를 따라서 통함과 가려짐, 열림과 막힘이 있다면 이른바 모든 선의 근본이 되는 본연지성(本然之性)은 어느 곳에다 안배한단 말입니까? 만약 '단독으로 가리키면 본연지성인 것'이라고 말한다면, 저는 이미 가리고 막힌 성이 어떻게 갑자기 형체를 바꾸어 순선(純善)하게 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인용한 농암(農巖)의 설 운운한 것은 '생지위성(生之謂性)'장에서, 성을 말하는 순간 바로 이미 성이 아니라고 한 말을 풀이한 듯합니다. 그리고 '리(理)는 본래 선하지 않음이 없다[理固無不善]'는 한 구절로 맨앞에 문장을 만든 것은 아마도 기질지성으로 간주한 듯합니다. 그리고 기질에 부여되는 순간 바로 형기(形氣)를 겸한다고 한 것은 문제가 있는 설이라고 하였습니다만, 저의 얕은 견해로는 기질을 품부받고 형기를 겸했다는 것을 가지고 대번에 문제가 있는 설이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박창현의 편지에 정자(程子)가 '성(性)은 서로 비슷하다[性相近]'는 말을 논한 데 대해 운운한 것에 대하여-4
정자가 '성은 서로 비슷하다'는 말을 논할 때 개와 소 그리고 사람의 성이 어찌 각각 서로 다른 성을 품수(稟受)하였다고 한 적이 있습니까? 대개 상지(上知)와 하우(下愚), 개와 소 그리고 사람은 서로 다른 기질(氣質)을 품수하였기 때문에 그 성이 운용(運用)하는 데에 드러나는 모습이 그 기질에 따라 각각 다르게 되니, 이것이 이른바 기질지성(氣質之性)이라는 것입니다. 성인(聖人)과 범인(凡人)을 통괄하여 말한 것인 천명(天命)의 성과 성선(性善)의 성의 경우에는 또 기질에 있는 이 리(理)로 말한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는 것입니다. 어찌 이 편지의 뜻처럼 기품(氣稟)에 따라 리가 다르게 나타나는 측면에 입각하여 본연지성 하나만 가리킨 것이겠습니까?


박창현의 편지에 '오행이 각각 하나의 성을 갖는다[五行各一其性]'라고 운운한 것에 대하여-5
오행(五行)이 각각 하나의 성을 갖는다는 말은 사람과 사물이 태어나기 이전 천지의 조화(造化)가 만물을 생육(生育)하는 도구로써 말한 것입니다. 그 기질에 따라 품수받았다고 말한 것은 금(金)ㆍ목(木)ㆍ수(水)ㆍ화(火)ㆍ토(土) 본연(本然)의 기질에 따라 각각 하나의 성을 갖춘 것을 말한 것으로, 이것이 이른바 리(理)의 분수(分殊)라는 것이니 선악(善惡)과 편전(偏全)이 있는 사람과 사물의 기질지성을 논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이를 인용하여 기품에 따라 리가 같지 않다는 설을 증명하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박창현의 편지에 단지 기질지성만 논했다고 운운한 것에 대하여-6
기질지성을 품수한 곳으로부터 말하자면, 저 또한 어찌 그렇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품수한 자가 기질이 같지 않으므로 성이 발현하는 것이 또한 기질에 따라 같지 않게 됩니다. 다만 이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 최초에 서로 같지 않은 리를 품수하였다고 곧바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쟁론(爭論)하는 부분은 품수와 발용의 측면이 같지 않다는 데 있지 않고, 바로 서로 다른 리를 품수하고 서로 다른 기를 품수하는 차이에 있습니다. 게다가 그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리가 기질 속에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이유로 기질지성이라고 간주하고 있습니다. 대개 하늘에 있는 리가 사람의 기질 속에 있으면서 애초에 말할 만한 편전(偏全)과 선악(善惡)이 있은 적이 없으면 이것이 바로 이른바 본연지성이고, 그 기질에 따라 자체로 편전과 선악이 있는 하나의 성이 되는 데 이르른 뒤에야 기질지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자체로 하나의 성이 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기질에 막 떨어진 것을 가지고 곧바로 기질지성이라고 한다면 이른바 본연지성이라는 것은 그저 하늘에 있는 리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고 사람의 측면에서는 영원히 말할 때가 없을 것입니다.
주석 53)기질지성이라는……하였습니다
장재(張載)가 말하기를, "형체가 있게 된 뒤에 기질지성이 있으니, 이를 잘 돌이키면 천지지성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기질지성은 군자가 성으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있다.〔形而後, 有氣質之性, 善反之, 則天地之性存焉. 故氣質之性, 君子有弗性者焉〕"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 권2 〈위학(爲學)〉
上艮齊先生論朴昌鉉書 乙卯
朴書聖賢發明氣質之性云云
氣質性之名, 肇自張子而其言曰: "善反之則天地之性存焉。" 旣曰善反之, 則已是雜氣不好底物事, 而今初無所謂善反之功, 而直曰見其不雜之體, 不雜之體, 卽天地之性也。 不加善反之功, 而天地之性自存, 則亦是純善之性, 何必曰'氣質之性, 君子有不性者'乎?

朴書聰明睿知云云
氣質雖淸粹, 却無知覺情意者也。 凡有知覺情意者, 乃心之能也。 蓋聰明睿知, 係是有知覺情意者, 則可謂之心, 而不可謂之氣質也明矣。 特以聖人之氣質, 淸明純粹, 而其心因此而能聰明睿知。 故《大學》序對氣稟不齊而言,《中庸章句》以生知之質言歟!

朴書稟受處, 有通蔽開塞云云
通蔽開塞, 正是發用以後事, 而今以之言於稟受處。 若於稟受處, 此性已隨氣而有通蔽開塞, 則所謂萬善一源之本然性, 何所安頓乎? 若曰單指則本然性云, 則吾未知旣蔽旣塞之性, 安能驀地幻形純善乎?【所引農巌說云云, 似是解'生之謂性'章'纔說性時便已不是性'之語。 而其以理固無不善一句, 劈頭立文者, 似以氣質性看做。 而其曰'纔賦於氣質, 便兼形氣'之云, 是病痛說。 然淺見恐未可以賦氣質兼形氣, 遽做病痛說也。 未知如何?】

朴書程子論性相近云云
程子論性相近, 犬牛人性, 何嘗言禀受各異之性耶? 蓋曰上知下愚犬牛人之氣質禀受各異, 故其性之發於運用者, 隨其氣質而各異, 此所謂氣質性云爾。 至於天命性性善, 通聖凡而言者, 則又以此理之在氣質者言, 而此所謂本然性云爾。 何嘗就隨氣禀異理之中, 單指本然性, 如此書之意乎?

朴書五行各一其性云云
'五行各一其性', 此以人物未生前, 造化發育之具言。 其曰'隨其氣質所禀'云者, 謂隨其金木水火土本然之氣質, 而各具一性, 此卽所謂理之分殊也, 非所以論有善惡偏全底人物氣質性也。 今引此以證隨氣稟理不同之說, 不亦異乎?

朴書但論氣質性云云
氣質性之從稟受處說, 吾亦何嘗謂之不然? 然其所禀受者, 氣質之不同也。 故性之發見者, 亦隨氣質而不同。 但不直謂原初禀得不同之理, 如此書之說也。 然則今此所爭, 不在於從禀受從發用之不同, 正在於禀異理禀異氣之不同也。 且詳其意, 以此理墮在氣質中者, 認做氣質之性。 蓋在天之理, 在人氣質之中, 初未嘗有偏全善惡之可言, 則此卽所謂本然性也。 至於隨其氣質, 而自爲偏全善惡之一性, 然後乃可謂氣質性也。 若不待自爲一性, 而直以才墮氣質者, 做氣質性, 則所謂本然性者, 只可言於在天之理, 而永無就人上說時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