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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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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재선생에게 올림(上艮齋先生 甲寅)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1.TXT.0013
간재선생에게 올림
근래에 《가례증해(家禮增解)》를 보다가 〈성복(成服)〉의 '참최(斬衰)' 조목에 이르러서 경호(鏡湖 이의조(李宜朝))의 안설(按說)을 보니 논의할 만한 곳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는 부친이 상중(喪中)에 돌아가신 경우라면, 그 자식이 (부친이 치르던 상에) 대신 복상(服喪)하지 않는다는 설을 주장하였고, 부친의 후사(後嗣)가 된 양자(養子)에 대해서는 참최복(斬衰服)을 입지 않는다는 설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손(玄孫)주 48)으로 승중(承重)주 49)한 자가 그 모친이나 조모(祖母)를 위해 입는 상복에 대해서는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가 말한 4대(代)에 대해 모두 삼년복을 입는다는 의론을 어기고, 그녀들의 남편이 승중을 했느냐의 여부를 살펴서 삼년복을 입기도 하고 본복을 입기도 한다는 설을 주장했습니다. 대개 부친이 상중에 돌아가셨는데 그 자식이 대신 복상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부친이 미처 마치지 못한 효를 이룰 수 없어 아버지로 하여금 지하에서 한을 품도록 하는 것이니, 이는 효성스럽지 못한 것입니다. 부친의 후사가 된 양자로서 참최복을 입지 않는다면 저 사람은 이미 그 천륜(天倫)을 옮겨 나를 마치 낳아주신 것처럼 대하는데 나는 도리어 저 사람을 친자식과 차이 나게 대하는 꼴이니, 이 어찌 천지간에 커다란 원통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자애롭지 못한 것입니다. 현손이 승중했는데 손자의 아내와 증손자의 아내가 삼년복을 입지 못한다면 중간에 세대(世代)가 끊기고 이어지지 못하여 위로는 이어올 바가 없게 되고 아래로는 전해 줄 바가 없게 되니 이는 더욱 자애롭지 못하고 효성스럽지 못한 데 비할 수 있습니다. 무릇 예(禮)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윤상(倫常)의 도리를 밝히고자 해서입니다. 그런데 만약 예를 논하면서 사람으로 하여금 자애롭지 못하게 하고 효도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른바 윤상(倫常)을 밝힌다는 것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대저 예를 논하는 자들이 천리(天理)와 인정(人情)에 나아가 몸소 체험하여 말하지 않고 한갓 주소(註疏)에만 천착하면서 시비를 말하기 때문에 정의(正義)를 보지 못하고서 결국 이러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 예설(禮說)을 논변하는 일은 성리설처럼 쉽게 잘못되는 데 이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지금 살펴보니 진실로 두 가지 가운데 쉽고 어려움을 따질 수가 없습니다. 성리(性理)의 큰 근원은 한 번 어긋나면 곧바로 이단(異端)과 사설(邪說)에 빠지게 되고, 변례(變禮)주 50)의 큰 원칙은 한 번 어긋나면주 51) 마침내 윤상을 어그러뜨리는 데 이르게 되니 신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석 48)현손(玄孫)
증손의 아들이니, 손자의 손자로서 고손에 해당한다.
주석 49)승중(承重)
장손으로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조부모의 상을 당하면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상제 노릇을 한다.
주석 50)변례(變禮)
經禮가 불변의 예법이라면, 變禮의 비상시에 응변할 수 있는 예법을 지칭한다.
주석 51)한 번 어긋나면
원문은 '日一差'로 되어 있는데 '日'은 연문으로 보아 번역하지 않았다.
上艮齋先生 甲寅
比看《家禮增解》, 至成服斬衰條, 見鏡湖按說, 往往有可議處。 其於父在喪中而死者, 則主其子不代服之說, 其於爲所後子, 則主不服斬之說, 其於玄孫承重者, 其母及祖母之服, 則違沙翁四世皆服三年之論, 而主視其夫之承重與否, 而或三年或本服之說焉。 蓋父死喪中而子不代服, 則無以遂亡父未終之孝, 而使父抱恨於地下, 是爲不孝也。 爲所後子而不服斬, 則彼已移其天倫, 而視我如所生, 我乃視彼有間於己子, 豈非天地間一大冤枉乎? 是爲不慈也。 玄孫承重, 而孫妻曾孫妻不服三年, 則中間代序斷而不續, 上無所繼, 下無所傳, 此又可比之於不慈不孝也。 夫所貴乎禮者, 欲其講明倫常也。 若論禮而至於使人不慈不孝, 則烏在其所謂明倫哉? 大抵論禮者, 不就天理人情上體驗說出, 徒屑屑於註疏腳下, 說是說非, 所以未見得正義, 而終至於如此也。 小子昔嘗謂講辨禮說, 不至如性理說之易差, 以今觀之, 誠不可較難易於二者之間也。 性理大源頭, 一差則便陷異端邪說, 變禮大節, 日一差則竟至於悖倫乖常, 可不愼哉? 可不戒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