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역/표점
- 국역
- 금성삼고(錦城三稿)
- 금호유사
- 저술(著述)
- 만력 연간에 올린 글(萬曆中呈文)
금성삼고(錦城三稿) / 금호유사 / 저술(著述)
만력 연간에 올린 글
김응기(金應期)의 자는 언정(彦挺)으로 타고난 기질이 성실하고 훌륭하며 효성이 순수하여 어려서부터 맛있는 음식을 얻으면 곧장 부모님에게 올렸고 부모님께서 조금이라도 불편하시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였다. 병오년(1546)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양친에게 병이 있어 관사에서 거처하는 과거의 계책에 다시는 뜻을 두지 않았다. 정미년(1547)에 부친이 위독하자 곁에서 모시며 탕약을 올리고 대변을 맛보아 길흉을 살폈다. 부친이 돌아가시자 장례를 치름에 정성과 슬픔이 상례의 법도를 넘어 몸을 훼손할 정도였다. 삼 년 동안 죽을 먹고 채소와 과일은 먹지 않으며 몸소 묘소에 올리는 음식을 준비하였고 또한 맛있는 음식으로 모친을 봉양하였다. 겨우 부친의 상을 마치자, 모친 또한 오랜 지병이 있어 여러 해 동안 탕약 시중을 들며 밤에도 옷을 벗지 않고 엎드린 채 아침을 기다렸으며 흙 걸상에 무릎 닿는 곳이 움푹 패여 들어가 오목한 모양이 만들어지니 의원들이 그것을 보고 감탄하였다. 평생 사사로운 재산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모친이 아들들과 며느리들에게 따로 재산을 베풀어 주고자 하니 모친의 뜻에 앞서 이루게 하였다.
무진년(1568)에 모친께서 돌아가시자 갑자기 쓰러졌다가 곧 회복하여 삼일장을 치르는 동안 게으른 행동이 없었다. 장례를 치르던 날 밤새도록 많은 비가 내리자 슬프게 울부짖으며 하늘에 비니 하늘이 갑자기 맑아졌다. 조문하는 사람들은 매우 기뻐하면서 모두가 효성에 감복한 것이라고 여겼다. 아침저녁으로 묘를 살펴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도 거르는 날이 없었다. 제수를 깨끗하게 하여 반드시 평소 좋아하던 것을 생각하여 공판을 지극히 힘썼다. 또 미음을 먹으며 삼년상을 마치니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들리지 않았으며 몸은 가시처럼 말랐기에 그를 본 사람들 중에 슬퍼하고 안타까워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상을 마친 후 반드시 묘를 향하여 앉았고 부모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눈물부터 먼저 줄줄 떨어졌다. 그 효행의 독실함이 대개 이와 같았다. 명종 때 그의 행동을 가상히 여겨 두 차례 참봉을 제수하였지만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우리 선조는 김공과 더불어 한 고을 【고을은 노곡(蘆谷)이다.】 에 살면서 함께 지극한 행실이 있어 송서교[宋贊]의 추천을 함께 받았으니, 생각건대 반드시 서로 미루어 인정해 주는 것이 마치 지초와 난초의 향취가 서로 꼭 부합함과 같다. 일찍이 창강(槍江) 조장령(趙掌令)주 33)이 손수 쓴 글을 보니 김공의 효성에 관한 사적을 책 앞에 두고 〈만력중정문〉을 그 아래에 둔 다음 또 나공 이산 현감이 기록한 것에 적었는데 우리 선조가 이 글을 지어 포장하여 올린 것이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이 지은 글을 우리 선조가 취하여 기록하신 것일까? 우선은 우리 선조가 지은 조목을 끝에 덧붙여 사정을 아는 사람을 기다린다.
현손 나두동(羅斗冬)이 삼가 쓰다.
- 주석 33)창강(滄江) 조장령(趙掌令)
- 조속(趙涑, 1595~1668)을 말한다.
萬曆中呈文
金應期字彦挺, 氣賦愿懿, 孝誠純至, 自在髫齔, 遇異味, 輒獻父母. 父母有微蛘, 涕泣憂悴. 丙午中司馬, 以雙親有疾, 不復有居館赴擧之計. 丁未, 父病沈綿, 侍側湯藥, 嘗糞以驗吉凶. 及歿喪葬, 以誠哀毁踰禮. 啜粥三年, 不食菜果, 躬執奠具, 且供甘旨, 以奉慈親. 服闋, 母又有宿疾, 積年侍藥, 衣不解帶, 俯伏待朝, 土床當膝處, 坎入成窠, 醫師見之, 嗟歎. 平生不營私財, 母嘗於子婦中欲別有施給, 先意導成. 戊辰, 遭母憂, 頓絶方蘇, 三日不怠. 及葬之日, 終夜大雨, 哀號禱天, 天忽開霽. 吊者大悅, 皆以爲孝感. 朝夕省墓, 雨雪不廢, 奠羞蠲潔, 必思平日所嗜, 極力供辦. 又啜糜粥, 終三年, 眼昏聽重, 紫毁骨立, 見者莫不哀慘. 終喪之後, 坐必向墓, 語及父母, 涕淚先零. 其孝行之篤, 大槪如此. 明廟朝, 嘉其行, 再授參奉, 而皆不赴.
吾先祖與金公, 同居一鄕 【蘆谷】, 同有至行, 同被選於宋西郊薦啓, 想必互相推許, 有如芝蘭臭味之相符耶. 曾見滄江趙掌令凁手筆文字, 卽金公誠孝事蹟, 而起頭書, 以萬曆中呈文其下, 又書以出羅尼山所記云, 無乃吾先祖製此文褒呈之耶, 抑或他人所製而吾先祖取而記之耶? 姑附于先祖著述條末端, 以俟知者. 玄孫斗冬, 謹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