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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성삼고(錦城三稿)
- 부록보유 【경신년 추가 간행】
- 장계 초 【농포 정문부】(狀啓抄 【農圃 鄭文孚】)
금성삼고(錦城三稿) / 부록보유 【경신년 추가 간행】
장계 초 【농포 정문부】
장계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병조 좌랑(兵曹佐郎) 서성(徐渻)과 정배인(定配人) 나덕명(羅德明)이 외촌(外村)에서 마을에 사는 군정(軍丁)들을 잘 타이른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모두 성 【즉 경성(鏡城)이다.】 으로 들어갔습니다. 【만력 20년인 임진년 10월 14일이다.】
신이 대장에서 체직된 뒤에 회령 부사(會寧府使) 정현룡(鄭見龍)을 대신 대장(大將)으로 삼았습니다. 지난해 12월 그믐께 정현룡이 겸절도사(兼節度使)에 차임되어 육진(六鎭)을 순하였고 다시 경원 부사(慶源府使) 오응태(吳應台)로 대장을 개정(改定)하였습니다. 금년 정월 13일에 도착한 순찰사(巡察使)의 관문(關文)에 오응태를 대장에서 체차(遞差)하고 전처럼 평사(評事)를 다시 대장으로 정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달 10일에 도착한 전 대장 오응태의 첩정(牒呈)에, 겸 절도사 정현룡이 대장에서 체차되어 북쪽으로 들어갈 때 육진의 정예병 1백여 명을 모두 거느리고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절도사가 왜적을 토벌하는 정예병을 자기가 거느리기는 하지만 마음대로 거느리고 가서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져 왜적의 세력이 점점 커지는 이러한 때 왜적을 토벌하는 일이 지극히 염려되므로 신도 관문을 보내어 병사를 모아야 합니다. 조정에서는 각별히 사목(事目)을 주어 그 숫자대로 병사를 모으게 하는 일로 누군가를 방어사(防禦使)라 칭하여 정현룡에게 내려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언뜻 들으니 팔도 중 남도(南道)에서는 이미 과거가 시행되었다고 하는데 유독 이 북도(北道)에서는 과거를 보러 갈 수 없으니 진작시키려는 본래의 뜻에 어긋나는 듯합니다. 그러나 순찰사가 임금께 아뢰어 처치해 달라고 청하지 않은 일에 대하여 변변찮은 소관(小官)이 임금께 아뢰어 청하기는 어렵습니다. 도내(道內)에서 의병을 일으킨 우두머리인 경성에 사는 전 훈도(訓導) 이붕수(李鵬壽), 좌수(座首) 서수(徐遂)와 이기수(李驥秀), 경성에 정배(定配)되었다가 풀려난 전 도사(都事) 나덕명(羅德明), 부령(富寧) 좌수 김전(金銓) 등이 온 힘을 다하여 내달려 어리석고 완악한 사람들을 잘 타일렀으니 지금까지 일을 거행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그들의 공에 힘입은 바입니다.
지난번에 상(賞)을 논할 때 과거(科學)에 응시하려고 준비하던 유생들 가운데 금위(禁衛)를 임명한 일을 원통하게 여기는 듯하여 감히 알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경성 판관(鏡城判官)에 송안정(宋安廷)을 임명했다고 하는데 어느 곳에 머물러 있는지 아직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본부 역시 큰 도회지라서 적을 토벌하는 여러 도구를 태반이나 마련하는데 진에 머물고 있는 가장(假將)인 전 감찰(監察) 오명수(吳命壽)만은 책응(策應)하는 데 협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송안정을 재촉하여 부임하게 하거나 조정에서 따로 처치해 주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잘 아뢰어 주소서. 만력(萬歷) 21년 계사(1593), 1월 16일."
狀啓抄 【農圃 鄭文孚】
略曰 兵曹佐郞 徐渻 定配人 羅德明 在外村, 曉喩村居軍丁爲白如乎, 節段竝只入城 【卽境城】 爲白有齊云云. 【萬曆二十年壬辰十月十四日】 自臣遆大將後, 會寧府使鄭見龍乙用良, 代爲大將爲白有如可. 前年十二月晦間, 鄭見龍差兼節度使, 巡行六鎭亦爲白遣, 更以慶源府使吳應台, 改定大將爲白有如乎. 今年正月十三日, 到付爲白在巡察使關內, 吳應台大將遆改, 依前評事, 以還定大將, 亦爲白臥乎在亦. 本月初十日, 到付爲白, 在前大將吳應台牒呈內, 兼節度使鄭見龍, 遆將入北之時, 盡率六鎭精兵百餘名, 入歸是如爲有臥乎所, 節度使稱云, 討倭精兵乙, 自己所率是如, 任意率去, 不爲出送爲白在如中. 當此日氣向暖, 倭勢漸張之時, 討賊之事, 極爲加慮爲白昆, 臣段置, 通關徵兵爲良音可爲白在果, 朝廷以各別授事目依數徵兵事, 防禦使稱號爲白在. 鄭見龍處下送爲白乎去望良白乎旀節. 仄聞爲白乎矣, 八道南道, 至亦已爲科擧是如爲白去等, 獨此北道未得赴擧, 似乖聳動之本意爲白良置, 巡察使不爲啓請處置事良中, 幺麽小官, 啓請爲難爲白齊. 道內倡義首人鏡城居前訓導李鵬壽, 座首徐遂 李麒壽, 鏡城定配蒙宥前都事羅德明, 富寧座首金銓等, 極力奔走, 曉喩愚頑, 到今擧事, 實賴其功. 前日論賞之時, 擧業儒生內, 禁衛差下, 似爲冤悶, 不敢不聞爲白乎旀. 鏡城判官段置, 宋安廷差下是如爲白乎矣, 某處留在爲白有臥乎喩, 迄未赴任, 本府亦都會大處, 以討賊諸具太半辦出爲白去等, 留鎭假將前監察吳命壽叱分, 以策應齟齬爲白昆, 同宋安廷乙, 催促赴任敎是去乃, 朝廷以別樣處置爲白乎去望良臥乎事是良厼, 詮次以善啓向敎是事. 萬曆二十一年癸巳, 正月十六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