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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서를 붙이다 【곤재 정개청】(附答書 【困齋】)
금성삼고(錦城三稿) / 금봉습고
답서를 붙이다 【곤재 정개청】
스승의 상례라는 일에 대해 논변한 것이 지극히 바르고 지극히 합당하니 그대의 군자다운 정직함에 탄복하였습니다. 주자께서는 연평에게 다만 수학했을 뿐입니다. '수학'이라는 것을 주자는 "종유(從遊)하다."라고 말하였으니, 대개 존경하지만 스승과 제자 관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저 사람이 이항에게 수학만 하였을 뿐이라면 지금의 처신이 오히려 혹 그럴 수 있겠다 싶습니다. 만약 스승주 62)이 어리석음을 깨우쳐준 은혜가 있는데도 그렇다면 나머지는 족히 볼 것도 없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친구 간에도 오히려 마땅히 복을 입고 마질(麻絰)까지 가하였는데, 하물며 은혜와 의리가 무거운 스승에 대해 어찌 슬픔을 표출하는 변화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황면재(黃勉齋), 왕백(王栢), 김이상(金履祥) 세 군자가 입은 조복이 같지 않은 것에 대해 나는 예에 정해진 복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은혜의 경중(輕重)과 슬픔의 심천(深淺)에 따라서 그것을 드러내 입은 것뿐이니, 이후에 스승을 위해 조복(弔服)을 입은 자는 마땅히 은혜와 슬픔의 얕고 깊음에 따라 정할 일입니다. 만약 이미 군주에게 몸을 맡겼다고 하여 심상(心喪) 삼년복을 입지 못한다고 한다면 신하된 자는 끝내 대공(大功)주 63)의 상례를 기약할 수 없을 것이니 그것이 괜찮겠습니까. 이른바 오직 있는 곳에 따라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군주 곁에 있으면 군주를 위해 죽고, 부모 곁에 있으면 부모를 위해 죽는다는 것이지 군주를 모시고 있어서 삼년의 상에 복을 입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아버지의 상을 당한 것처럼 하되 복은 입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관직을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우리들이 마땅히 뭇 사람들의 긍휼(矜恤)함을 포용하여 마음을 가눌 수 없어 지나치게 명백하고 곧은 성품으로 다툼의 빌미를 일으켜서는 안 될 듯합니다. 잘 모르겠으나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또 스승의 상례라는 한 가지 일에 대해 답해 보겠네. 《예기》를 상고해보면 "심상 삼 년주 64)"이라 하였고, 또 "아버지의 상을 치르는 듯이 하면서 복을 입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며, 또한 "공자의 상에 제자들이 모두 수질(首絰)을 하고 나갔다."고 하였고, 《의례(儀禮)》 〈상복(喪服)〉의 주석에서는 "모두 수질을 하고 나갔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스승을 위해 나간 것이며 떠날 때에도 역시 수질을 하였던 것입니다. 정자께서 "안연과 민자건은 공자에 대하여 비록 참최(斬衰)를 입고 삼년상을 지내더라도 괜찮다."라고 하셨고, 주자께서는 "스승에 대한 의리는 친구와는 구별되니 임금이나 아버지와 같은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만약 그 상복을 논한다면 마땅히 임금이나 아버지와 같아야 하므로 《예기》에서 아버지의 상을 치르는 것처럼 하면서도 복은 입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또 말씀하시길 "평소에 거처할 때에는 수질을 두른다."라고 하였고, 또 《의례》 〈상복(〉 기(記)에 붕우 간에 마(麻)를 한다는 주(註)에 "붕우는 비록 친족 관계는 아니나 도(道)를 함께 하는 은혜가 있어 시마복(緦麻服) 때에 쓰는 질대(絰帶) 차림을 한다.주 65)"라고 하였으니 그 복은 조복(弔服)이고, 그 관(冠)은 공경대부(公卿大夫)와 사(士)는 변질(弁絰)주 66)을 쓰고 서인은 소위모(素委貌)주 67)를 쓴다고 하였습니다.
조복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왕이 삼공육경(三公六卿)을 위해 입는 석최(錫衰)주 68), 제후를 위해 입는 시최(緦衰)주 69), 대부와 사를 위해 입는 의최(疑衰)주 70)가 있습니다. 제후와 경대부 또한 시최로 조복을 삼고, 친구 간에 서로 입는 복은 선비[士]의 조복이 됩니다. 의최와 소상(素裳)주 71)의 주에 "서인은 하얀 모시로 된 심의를 입는다. 석최라는 것은 석마(錫麻)중에서도 부드럽고 고운 것인데 15승(升) 중에서 그 절반을 제거하니 그 삼베[布]는 일삼음이 있고 그 올[縷]은 일삼음이 없는 것이다. 시최(緦衰)는 또한 15승 중에서 그 절반을 제거하니 그 올[縷]은 일삼음이 있고 그 삼베[布]는 일삼음이 없는 것이다. 의최(疑衰)는 14승이며 의(疑)라는 말은 비긴다[擬]는 말이니, 길(吉)에 비긴다는 것이다.주 72)"라고 하였습니다.
이 몇 가지 설을 가지고 살펴본다면 심상 삼년복은 조복의 제도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스승의 은혜와 의리는 임금과 아버지에 대한 것과 같으니, 그 조복은 아마 자최(齊衰)의 승과 그 수가 같을 것이고, 질대는 아마 기공(期功)·대공(大功)의 대소(大小)와 같을 것입니다. 그런데 황면재, 왕백, 김인산 세 현자가 스승을 위해 입은 복은 조복의 제도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으나 예의에 준하여 본다면 미흡한 부분이 있으니, 다만 은혜와 의리의 경중은 알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옛 예의의 올바름을 가지고 논의한 것일 뿐이니, 만약 말세에서 이른바 현자들이 행했던 일들을 가지고 살펴보면 앞의 세 현자들이 스승을 위해 입은 조복의 제도가 어찌 우뚝하게 높디높아 미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말세의 이른바 현자라는 이들은 반드시 모두 의리로 스승에게 구하는 것도 아니며, 더러는 공리(功利) 때문에 서로 따르는 경우가 있음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평소 사우(師友)들과 강론하는 것이 언어와 문자 사이에 그칠 뿐이며 기대하는 것도 남들에게 알려지기를 구하거나 얻을 것만 꾀하는 사사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그들은 격물치지(格物致知), 성의정심(誠意正心)의 실제와 만물을 밝히고 인륜을 고찰하는 근본에 대하여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일에 임하여 시행하고 조치할 때 공정하게 사리에 밝지 못하고 한결같이 이익을 도모하고 공리(功利)를 꾀하여 처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니 스승의 상에 복을 입지 않은 일이야 무슨 괴이할 것이 있겠습니까.
다만 이른바 스승이라는 것은 그 은혜와 의리가 가벼운지 중한지, 얕은지 깊은지에 따라 차등이 다르니 우선 그 한두 가지를 거론해보면, 구두(句讀)와 훈고(訓詁)의 스승이 있고, 문장(文章)과 공리(功利)의 스승이 있으며, 종유(從遊)와 수학(受學)의 스승이 있고, 수업(受業)과 전도(傳道)의 스승이 있습니다. 더러는 대성(大聖)이고 더러는 대현(大賢)이며 더러는 현인(賢人)에 버금가니, 도덕의 크고 작음과 은의(恩義)의 가벼움과 중함을 살펴보아 자신의 복(服)을 걸맞게 할 뿐이라네. 어떤 경우는 삼년복, 어떤 경우는 기년복, 대공복, 소공복, 시마복으로 저절로 등분(等分)이 없을 수가 없으니 이 또한 알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만약 살아계실 때는 스승을 섬겨서 자신의 욕망을 이루고, 돌아가신 뒤에는 마침내 배신하여 그 은혜와 의리를 잊어버리는 자라면 또 어찌 함께 도를 논의하기에 족하겠습니까.
- 주석 62)스승
- 원문의 '함장(函丈)'은 스승이나 장자(長者)가 앉는 자리를 뜻하는 말로, 함연(函筵)이라고도 한다. 제자가 스승의 자리와 한 길[一丈]의 거리를 둔 것에서 유래하였다.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 "만일 음식 대접이나 하려고 청한 손이 아니거든, 자리를 펼 때에 자리와 자리의 사이를 한 길 정도가 되게 한다.[若非飮食之客, 則布席, 席間函丈.]"라고 하였다.
- 주석 63)대공(大功)
- 다섯 등급의 복 중 하나로 굵은 베로 지었으며 대공친의 상사에 9개월 동안 입는 복제(服制)이다. 다섯 등급의 상복(喪服)으로, 참최(斬衰) 3년, 자최(齊衰) 1년, 대공(大功) 9개월, 소공(小功) 5개월, 시마(緦麻)는 3개월을 가리킨다.
- 주석 64)심상 삼 년
- 《예기》 〈단궁 상(檀弓上)〉의 '심상삼년(心喪三年)'에 대한 정현(鄭玄)의 주(註)에 "심상은 슬퍼하는 모습이 부친상을 당한 것과 같은데, 복이 없는 것이다.[心喪戚容如父而無服也]"라고 하였다. 심상은 스승의 상을 당했을 때, 비록 상복은 입지 않더라도 슬퍼하는 마음만은 상복을 입고 있을 때처럼 하는 것을 말한다.
- 주석 65)붕우는 …… 한다.
- 《의례(儀禮)》 〈상복(喪服)〉에 "붕우를 위해서는 마를 한다.〔朋友麻〕"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의례주소(儀禮注疏)》 정현(鄭玄) 주에서 이르기를 "붕우는 비록 친족 관계는 아니나 도(道)를 같이하는 은혜가 있으므로 서로를 위하여 시마복(緦麻服) 때에 쓰는 질대(絰帶) 차림을 한다. 《예기(禮記)》 〈단궁(檀弓)〉에 이르기를 '여럿이 함께 있을 때에는 질을 두르고, 밖으로 나갈 때에는 두르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옷은 조복을 입는다.〔朋友雖無親, 有同道之恩, 相為服緦之絰帶. 檀弓曰羣居則絰, 出則否, 其服弔服也.〕"라고 하였다.
- 주석 66)변질(弁絰)
- 상복 제도에서 변(弁 고깔) 위에 삼으로 꼰 끈을 더하여 두르는 것이다. 환질(環絰)이라고도 한다.
- 주석 67)소위모(素委貌)
- 원문의 '위모(委貌)'란 주(周)나라의 관(冠)으로, 후대의 진현관(進賢冠)과 비슷한 모양이다. 원문의 '소위모(素委貌)'는 흰색 비단으로 만든 위모를 말한다. 《의례》 〈사관례(士冠禮)〉에 "위모는 주나라의 도이다.[委貌, 周道也.]"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정현의 주에 "위(委)는 편안함과 같으니, 이 관을 써서 용모를 편안하고 바르게 함을 말한 것이다.[委, 猶安也, 言所以安正容貌.]"라고 설명하였다. 위모는 보통 검은 비단으로 만드는데, '소위모'는 흰색 비단으로 만든 것이다.
- 주석 68)석최(錫衰)
- 세마포(細麻布)로 지은 상복, 석(錫)은 석(緆)과 통한다. 고대에 왕이 삼공(三公)과 육경(六卿)을 위해서 입었던 상복인데, 후대에는 대부끼리 서로 조문할 때에도 입었다.
- 주석 69)시최(緦衰)
- 시최(緦衰)는 천은 빨지 않고 베를 짤 때에 실을 가늘게 뽑아서 만든다. 왕이 제후의 상에 조문할 때 입었다.
- 주석 70)의최(疑衰)
- 길(吉)에 견주는 상복이라는 뜻으로 고대에 왕이 대부(大夫)와 사(士)를 위해서 입었던 상복인데, 후대에는 사끼리 서로 조문할 때에도 입었다.
- 주석 71)소상(素裳)
- 흰색의 하상(下裳)으로, 길복(吉服)과 흉복(凶服)에 모두 착용한다.
- 주석 72)서인은 …… 것이다.
- 《주례주소(周禮註疏)》 정현(鄭玄)의 주석에 나온다.
附答書 【困齋】
師喪一事, 言論至正至當, 歎服其君子之正直也. 朱子之於延平, 但受學而已. 受學云者, 朱子曰: "從遊", 盖所尊敬, 而不爲師弟子之辭也. 彼於李丈受學而已, 則今之所處, 猶或可矣. 若有發蒙函丈之恩, 則餘無足可觀, 更何言哉. 朋友猶當吊服加麻, 況於重恩義之師, 豈可無表哀之變也. 黃王金三君子之所服不同者, 愚以爲禮無定服, 故特以恩之輕重哀之深淺, 而表之以所服爾, 後之服師服者, 當以恩哀淺深爲定爾. 若曰旣委質於君而不服三年之心喪, 則爲臣者, 終無期大功之喪, 其可乎. 所謂唯其所在則致死者, 謂如在君傍則爲君死, 在父傍則爲父死云爾, 非謂在君而不服三年之喪也. 禮曰: "若喪父而無服." 則解官可知. 但當今之時, 吾輩當以容衆矜不能爲心, 似不可太白直以起爭端也, 不審, 尊侍以爲如何.
又答師喪一事. 考於禮曰: "心喪三年." 又曰: "若喪父而無服." 又曰: "孔子之喪, 二三子皆絰而出." 儀禮喪服疏曰: "皆絰而出." 是爲師出, 行亦絰也. 程子曰: "若顔閔之於孔子, 則雖斬衰三年, 可也." 朱子曰: "師之爲義, 卽朋友而分, 則與君父等." 若論其服, 則當與君父等, 故禮謂"若喪父而無服." 又曰: "平居則絰." 又按儀禮喪服記朋友麻註曰: "朋友雖無親, 有同道之恩, 相爲服緦之絰帶." 其服則吊服也, 其冠則卿大夫士弁絰, 庶人素委貌也. 吊服有三, 王爲三公六卿錫衰, 爲諸侯緦衰, 爲大夫士疑衰. 諸侯及卿大夫, 亦以緦衰爲吊服, 朋友之相爲服, 卽士吊服. 疑衰素裳疏曰: "庶人則白布深衣. 錫衰者, 錫麻之滑易者也, 十五升去其半, 有事其布, 無事其縷.緦亦十五升去其半, 有事其縷, 無事其布. 疑衰十四升, 疑之言擬也, 擬於吉也." 將此數說而觀之, 則心喪三年之服, 不可擬於吊服之制. 愚謂師之恩義, 有類於君父, 則其服疑與齊衰之升數同, 而絰帶則疑與期大功之大小同也, 而黃,王,金三賢之師服, 皆未免於吊服之制, 準禮義則有未洽, 但未知恩義之輕重爾. 然此特論其古禮義之正而已, 若以末世所謂賢者所行之事觀之, 則三賢師服之制, 豈不巍巍然高不可及哉. 嗚呼! 末世之所謂賢者, 未必皆以義理求於師, 而或未免有以功利相從者. 故其平日所與師友講論者, 不過言語文字之間, 而期望者又不出乎求聞計獲之私, 其於格致誠正之實, 明物察倫之本, 亦未知其爲何事也. 是以, 當其臨事施措之際, 未能正誼明理, 而一以謀利計功爲處之當, 其不服師喪, 尙何怪哉. 但所謂師者, 其恩義之輕重淺深, 差等不一, 姑擧其一二, 則有句讀訓誥之師, 有文章功利之師, 有從遊受學之師, 有受業傳道之師. 或大聖, 或大賢, 或次賢, 觀其道德之大小恩義之輕重, 而權其服而已. 或三年, 或期功緦, 自不能無等分矣, 此亦不可不知. 至若生而師事之, 以濟其所欲, 死而遂背之, 以忘其恩義者, 則又何足與論哉.



